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비 소녀상’.
[영상에세이 이사람]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소녀’ 돌봄이들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소녀’ 돌봄이들
맨발 소녀상에 목도리 보고 모인 자원봉사자들
“저희라도 기억하고 있다가 사과를 요구해야죠” “누가 입을 거예요?” “….” 지난 3월초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 1층. 목도리와 스카프를 파는 가게 아주머니가 물었다. 재잘재잘 떠들던 희원(16)이와 소원(19)이는 웃음을 삼켰다. ‘동상 입히려고요’라고 말하면, ‘왜 동상에 옷을 입혀?’라고 물어올 게 뻔했다. 그래서 흰 망토를 집어든 소원이가 대충 “누구 해주려고요”라고 얼버무렸다. 주인은 만오천원을 불렀고, 소원이는 검은 봉지에 옷을 담았다. 다시 재잘재잘. 임무완료. 가게 문을 나선다. # “아, 이 남자 너무 감성적이네” “평화비가 추워 보인다고요?” 그러니까 칼바람 불던 지난해 12월의 일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수정씨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할머니 평화비가 세워진 다음날, 알고 지내던 오빠(학교 선배의 친구), 미디어몽구(김정환)씨에게 전화가 왔다. 동상의 소녀가 추워 보이니 같이 옷을 입혀주자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 너무 감성적이네. 동상이 춥다니? 마음이 되게 여린가?” 그러나, 이씨는 차마 동상에 옷을 입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저…. 혼자 하시면 안돼요?” 미디어몽구가 트위터에서 위안부 할머니 쉼터의 고물 승합차를 새 걸로 바꿔주는 모금을 한창 진행할 무렵이었다. 몽구는 자원봉사를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남자는 청소를 돕고, 여자는 할머니들과 말동무를 해주면 된다”고 했다. 고교시절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영화를 보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수정씨는 혼쾌하게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그 무렵 몽구는 수정씨에게 저녁을 사겠다며 불러냈다. “회는 비싼데, 부담스럽잖아요. 많이 먹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몽구 오빠가 우동을 시키려고 할 때, 한 개만 시켜서 나눠 먹자고 까지 했는데…”
# 누군가 목도리로 발을 감싸놓고 갔다
그날 ‘저렴한’ 저녁 밥상에서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돕는 자원봉사대의 주무가 수정씨로 결정이 났다. 그러다가 내키지 않던 평화비에 옷 입히는 일도 몽구에 이끌려 시작되었다. 감성이 예민한 몽구가 동상에 옷 입히러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수정씨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진짜, 12월에 평화시장을 도는데, 덜덜 떨리게 춥더라고요. 소녀 동상을 따뜻하게 해주려다가 내가 얼어죽을 판이었다니까요. 근데 어떤 분이 이미 맨발의 소녀상을 보고 목도리로 발을 감싸놓고 가셨어요. 춥게 보인다고 감정이입한 사람이 몽구 오빠 말고도 더 있었던 거죠.”
수정씨는 그때 이 일이 그냥 감성적인 남자가 혼자 좋아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트위터로 평화비에 옷 갈아입히는 자원봉사활동 할 사람을 공모했다. 호응은 뜨거웠다. 18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서를 냈다. 이 가운데 주부 언니, 회사원 오빠, 고등학생 막내까지 열여덟명이 자원봉사단에 뽑혔다. 봉사단은 1, 2조로 나눠서 일요일마다 할머니들의 쉼터에 청소도 하고, 세차도 했다. 함께 밥도 해먹고, 농구장도 갔다. 그리고 평화비에 옷을 갈아 입히고,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다.
옷을 입히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수정씨는 평화비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수정씨는 “그럼 안되겠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 안하고 정부에서도 해결 못하면 저희라도 기억하고 있다가 누군가는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면에서 평화비를 세운 건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기억한다는 뜻으로 소녀가 두눈 똑바로 뜨고 일본대사관 보고 있는 게 되게 마음에 든다”고 방실방실 웃었다.
# “위안부 문제를 마음에 담을 수 있었어요”
매번 옷을 사는 건 아니다. 모인 성금으로 발품 팔아서 팔천원짜리 목도리, 만원짜리 털모자를 산다. 한 번 사면 매주 목요일 오후에 막내 소원씨가 입김 불어가며 옷 빨래를 걷어서 집으로 왔다. 서울 풍문여고 3학년이었던 소원씨는 졸업하던 날 아침에도 평화비의 빨래를 걷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학교 마당에 타임캡슐을 묻으러 일찍 나왔는데, 그 길로 친구들과 평화비 옷을 갈아입히러 갔다. 친구들은 “너 천사냐?”고 놀렸다. 그날 찍은 기념사진이 트위터에서 퍼졌다. ‘평화비 돌봄이’ 소원이는 그때 예쁜 별명도 얻고, 뭇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소원씨가 평화비를 돌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오는 4월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일본으로 대학을 가게 됐는데, 일제강점기는 제대로 알고 떠나고 싶었어요. 일본 대사관에서 딱 보면 소녀비가 보이잖아요. 평화비 소녀상에 옷을 계속 갈아입히는 건, 우리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을 대신 전하는 거예요. 교과서로만 항상 배웠던 위안부 문제를 실천으로 옮겨서 역사 문제를 마음에 담을 수 있었어요.”
# 수요 집회가 1천번 더 열리더라도 누군가는…
1천회 수요 집회도 지나고 삼일절도 지났다. 옷을 갈아입는 평화비 동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신문과 방송국 카메라들은 이제 평화비를 조명하지 않는다. 덩달아 사람들의 관심도 평화비를 떠나고 있는지 모른다. 위안부 문제는 1천회 수요 집회를 했던 것처럼 더 많은 시간을 싸워야 할 긴 싸움일 것이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희원이는 “싸움이 길어지더라도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평화비에 옷을 갈아입힐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안 해요. 할머니들은 92년부터 하신 거잖아요. 언제까지 하면 될 거다. 기약도 없고, 이길 싸움이다 확신도 없고 이때까지 하셨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죠. 지금처럼 관심을 버리지 않으면, 평화비가 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새로운 게 또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희원이와 소원이는 평화시장에서 산 망토를 평화비 소녀에 입혔다. 노란 스카프도 목에 둘러줬다 .소녀가 한결 화사해졌다. 꽃샘 추위가 파고들던 소녀의 몸도 망토가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그날도 평화비 소녀가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본 대사관 창문의 커튼은 무심하게 내려진 채 소녀를 외면하고 있었다.
글·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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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는 털모자를 벗고, 노란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왼쪽부터 조희원.이수정.진소원)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희원이와 소원이는 평화비 봄 옷을 사려고 3월2일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을 빙빙 돌았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위안부 할머니의 소녀시절 모습을 한 는 늘 일본대사관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대사관은 창문의 커튼은 무심하게 내렸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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