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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새벽 빨간밥차, 약에 취한 아줌마가 밥통을 내밀면…

등록 2012-01-20 15:25수정 2012-05-26 22:50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새벽3시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하루 일자리를 구하러 새벽부터 사무실에 등록을 하고 6시를 넘기면 일거리 배정은 모두 끝난다.  5번 출구 앞이 붐비는 날은 빨간 밥차가 오는 수·목요일이다. 조소영피디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새벽3시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하루 일자리를 구하러 새벽부터 사무실에 등록을 하고 6시를 넘기면 일거리 배정은 모두 끝난다. 5번 출구 앞이 붐비는 날은 빨간 밥차가 오는 수·목요일이다. 조소영피디
설 앞둔 남구로역 ‘새벽 무상 밥차’ 풍경
세상 ‘호구’들이 모여 차리는 뜨거운 ‘빨간밥차’
택시운전사는 새벽 3시반 밥차 운전대를 잡고
백리길을 달려온 아줌마는 일등으로 밥차에 도착
밥 푸는 할매는 이층집 총각 생각에 밥을 덜고…

 “여기, 밥차 있는 데로!” “와, 오랜만이다. 어디 갔었어!”

 지난 19일 새벽 3시30분 7호선 남구로역 앞. 거리에 여전히 찬 기운이 감돈다. 빼곡히 들어찬 낮은 건물 꼭대기층은 깊은 밤인데도 불 켜진 곳이 많다. 간판을 보니 인력사무소다. 하루치 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인력사무소에 이름을 올리려고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연두색 조끼를 입은 마른 남자가 5번 출구 앞 광장을 빗자루로 쓸었다. 그 길 앞에 ‘빨간 밥차’가 섰다. 언뜻 보면 무서운 형사 같은 아저씨는 전혀 안 어울리게도 흰 앞치마를 두른 채 떡 하니 앉아 있다. 그 반대쪽 문 닫힌 휴대전화 가게 앞엔 한 할머니가 가만히 밥차를 보며 쪼그려 앉아 있었다.

 누군가 빨간 가스난로를 가져와 길에 세웠다. 수십명이 그 앞으로 우르르 모였다. 아는 얼굴들을 만난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누군가는 휴대전화에 대고, 밥차로 친구를 호출했다. 광장엔 어느새 파란색 탁자와 의자들이 차려졌다. 밥차가 오는 목요일 새벽 남구로역은 특별히 더 활기가 넘쳤다.  

한겨울 칼바람을 뚫고 일감을 찾아 서울 남구로역 앞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노동자들이 뜨끈한 육개장 국물로 한기를 달래고 있다. 이 육개장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빨간 밥차’에서 나눠준 것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매주 수·목요일 새벽 4시50분부터 6시20분까지 500~1000여명의 일용직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새벽 6시께 이날 나온 일거리 배정이 모두 끝났지만, 마지막까지도 일감을 찾지 못한 200여명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새해에는 경제가 되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나, 빨간 밥차의 육개장이 노동자들의 몸을 데워준 것처럼, 이들 노동자의 마음과 가정에 따스함이 퍼지기를 바란다. 김명진 기자
한겨울 칼바람을 뚫고 일감을 찾아 서울 남구로역 앞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노동자들이 뜨끈한 육개장 국물로 한기를 달래고 있다. 이 육개장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빨간 밥차’에서 나눠준 것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매주 수·목요일 새벽 4시50분부터 6시20분까지 500~1000여명의 일용직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새벽 6시께 이날 나온 일거리 배정이 모두 끝났지만, 마지막까지도 일감을 찾지 못한 200여명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새해에는 경제가 되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나, 빨간 밥차의 육개장이 노동자들의 몸을 데워준 것처럼, 이들 노동자의 마음과 가정에 따스함이 퍼지기를 바란다. 김명진 기자

 사람 1. “정신 차려 호구야”… 국 푸는 아저씨는 택시 운전사다  

정병건(48)씨가 밥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장맛비가 매섭게 쏟아지던 지난 여름이었다. 야간 택시를 운전하는 정씨는 수, 목요일 새벽 3시반에 ‘사랑의 밥차’로 운전대를 바꿔 잡는다. 구로 공영주차장서 밥차를 몰고와 아침 7시까지 국을 데워 낸다. 육개장이 밥차 단골 메뉴고, 한 달에 한 번은 갈비탕이 나올 때도 있다. 여름엔 무국도 내놓는다. 설을 앞둔 그날, 그는 떡국을 끓였다.

 정씨는 택시회사에서 충주로 단체 회식을 가던 날도 밥차를 운전하려고 수요일 밤 12시에 혼자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주야 교대로 운전대를 잡지 않는 날엔 새벽에 못 깰까봐 혼자 밥차 안에서 쪼그려 자기도 한다. 동료는 그를 보고 “정신 차려, 호구야”라고 놀린다. 정씨는 그런 놀림도 일 끝나고 먹는 해장술에 모두 털어 버린다. 회사에서도 소문 난 술꾼인 그는 “새벽 밥차를 몰면서는 술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게 신기하다”고 웃었다. 그는 “내가 안 오면 200명 국을 덥힐 사람이 없으니께”라며 말갛게 국물이 올라 온 떡국을 저었다.

사람 2. 일등 아줌마는 백리길을 걷는다

‘빨간 밥차’에서 국밥을 끓이는 봉사자 정병건씨다. 장맛비 쏟아지던 작년 여름. 먼저 봉사를 해오던 택시회사 동료가 대신 해줄 수 있냐 부탁했다.   ‘땜방’으로 시작한 봉사가 겨울까지 이어졌다.   ‘겨우 간을 맞추는 수준’이라는데, 조미료를 넣는 손짓이 예사롭지 않다. 조소영피디
‘빨간 밥차’에서 국밥을 끓이는 봉사자 정병건씨다. 장맛비 쏟아지던 작년 여름. 먼저 봉사를 해오던 택시회사 동료가 대신 해줄 수 있냐 부탁했다. ‘땜방’으로 시작한 봉사가 겨울까지 이어졌다. ‘겨우 간을 맞추는 수준’이라는데, 조미료를 넣는 손짓이 예사롭지 않다. 조소영피디
밥차를 보고 맨 먼저 달려오는 아줌마다. 일등으로 나와서 ‘일등 아줌마’다. 김점순(가명·60대)씨는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독거노인이라고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온다”며 “아가씨는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고 대뜸 말했다. 그 말에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직감할 뿐이다. 겨울이라 발등이 쫙쫙 갈라져서 양말을 덧신었는데 별로 효과가 신통찮아 배식을 기다리면서 수없이 발등을 어루만졌다.

 전라도 완도가 고향이라는 김씨는 “보통 땐 김하고 멸치를 세 보따리씩 들고 백리길을 걸어 팔러 다닌다”며 “시장에는 우리 같은 사람한테 자리를 안 내준다”고 말했다. 하루 백리길을 걸어 누구보다 바쁠 김씨는 오직 밥을 얻으러 남구로역에 나온다.

 배식이 시작되면 김씨는 분홍색 보자기를 풀어 냄비에 밥이랑 국을 가득 담고 돌아간다. 김씨는 밥을 퍼주는 사람들에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사람 3. “맛있게 드세용”
밥 푸는 창선이 할매는 곱다
 

 창선이 할매는 밥차에서 ‘자매님’으로 통했다. 갈색 파마머리에 얼굴이 곱다. 창선이 할매는 국그릇을 사람들에게 건네면서 “맛있게 드세용” 콧소리 들어간 인사를 날린다. 입도 곱다. 밥차에 나온 지 한 달째. 성당에서 알려줬다. 남구로역 빌라에서 손자도, 손녀도, 남편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데 “오늘 밥이 남으면 꼭 2층에 사는 우울증 걸린 총각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2층 총각에게 줄 밥을 쌀 위생 비닐이 연두색 조끼 주머니에 살포시 꽂혀 있었다. 창선이 할매는 마음도 곱다.

사람 4. 염색할 돈도 없는 은발 할머니 

  냄비 채로 떡국을 받고 붉은 털이 달린 외투를 껴입은 조혜자(가명·74) 할머니는 고등학생처럼 머리를 묶었다. 묶은 머리가 하얗다. 염색할 돈이 없어 다른 아줌마들처럼 갈색으로 바꿀 엄두도 못 낸다. 지하도를 내려가며 말을 붙였다. “만날 나오세요?” “그럼. 밥 얻어먹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해. 안 그러면 밥이 모자라서 없어.” 할머니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열살 때 올라왔는데, 이후에 한번도 다시 고향에 가지 못했다. 젊었을 땐 미싱을 탔다. “단아해 보이세요”라고 슬쩍 비행기를 태웠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잘 가. 또 봐” 은발 머리가 지하철역으로 빨려들어간다.

“고맙습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빨간 밥차’에서 주는 뜨끈한 국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같은 인사를 건넨다. 공사판 일자리가 드물어지는 혹한기에는 밥을 굶어야하는 날이 많다. 새벽부터 기다리다 ‘헛탕’ 치는 쓴 속을 국물이 달래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고맙습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빨간 밥차’에서 주는 뜨끈한 국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같은 인사를 건넨다. 공사판 일자리가 드물어지는 혹한기에는 밥을 굶어야하는 날이 많다. 새벽부터 기다리다 ‘헛탕’ 치는 쓴 속을 국물이 달래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사람 5. “밥 굶는 마음을 내가 잘 알지”…밥차 차리는 최씨

 밥차를 차리는 당번인 최순구(가명·50대)씨는 가장 일찍 남구로역으로 나온다. 밥 차를 운전하는 전병건씨 보다, 망우리서 음식을 가져오는 김형주씨보다도 그는 30분쯤 일찍 나온다. 바닥을 쓸고, 수저를 놓고, 탁자를 세워 간이식당을 차린다. 최씨는 밥차가 없을 때부터 리어커에 먹을 걸 싣고 봉사를 해왔다. 왜 힘든 일을 하느냐고 최씨에게 물었다. “밥 굶고 일 찾아다니는 허전한 마음을 아니까”라고 말한다. 최씨는 젊을 땐 막노동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두운 지하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손을 다쳤다. 인력사무실에서 자주 퇴짜를 맞는 그는 지금은 전철역에서 무가지를 돌린다. 최씨는 5시30분에 ‘봉사’라고 적힌 연두색 조끼를 벗었다. 동료들을 향해 “설 잘 보내”라고 손을 흔들고 지하철역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사람 6. 수면제에 취한 아줌마, 술 팔고 몸 팔아서? 

   “아이참. 약이 안 깨네….” 여전히 해롱해롱한 조선희(가명·50대)씨가 밥통을 내밀었다. 잠에 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었는데, 그 약에 취해 비몽사몽이다. 밥통 안에 가득 담아달라는 뜻으로 밥주걱만 멍하니 바라본다. 주변 사람들은 “저 아줌마, 사실은 되게 부자”라고 귀띔 한다. (술을 팔고, 몸도 팔고 해서 그렇다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이는 오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빨간 머리띠를 하고, 귀걸이를 하고, 흔들흔들 걸어다닌다.

사람 7. 봉사팀장 김형주 할배는 “행복한 사람”  

  봉사팀장 김형주씨는 벌써 예순이 넘었다. 봉사자지만 한달에 50만원의 유급수당을 가톨릭사회복지회서 받는다. 새벽 1시부터 중랑구 망우리에서 음식을 준비해 승합차에 싣고 남구로역까지 온다. 밥을 푸기 전에 꾹꾹 담은 밥 상자에 주걱으로 십자가를 슬며시 그었다. (이것이 ‘빨간 밥차’가 카톨릭재단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유일한 흔적이다.)

 조선족 청년이 밥을 제 통에다 담아가고, 김치도 더 담아가겠다고 말할 때는 “혼자만 많이 가지고 가면 다른 사람들 못 먹는다”고 돌려보낸다. 또 한 일용직 노동자가 검은 비닐봉지 두 장에 국물을 담아달라고 했더니 비닐봉지 한 장에만 담아준다. 봉지 한 장이라도 주인이 누군지 금방 알아본다. 사람들 다루는 솜씨도 밥차 물건 챙기는 솜씨도 팀장답다.

 끝나고 망우리로 다시 승합차를 몰고 갈 때는 “졸리고, 힘들다”고 했다. 공짜 밥 준다며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뺨도 맞고, 폭행 시비에 휘말려서 경찰서 간 일도 있었다. 없는 처지에 벌금 내면 어떻게 하나 싶어 자존심을 구겨가며 합의하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는 넋두리처럼 “나는 60평생이 아이엠에프여”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단호하게 “행복하다”고 했다. “누가 행복한 사람 손들라고 하면 나는 들 수 있어요. 돈이 많다거나 아는 게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 나처럼 망설임 없이 손들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니까요.”

 사람 8. 밥차가 싫다, 조씨 아저씨  

 “난 이 밥차가 진짜 맘에 안 들어. 일 나가면 밥 세끼 다 주는데 뭣 하러 바쁜 시간에 밥을 줘. 일 갈 시간 말고, 점심때나 나오면 좋겠어. 지금 저기서 밥 먹는 사람은 다 일도 못 구해 술 먹는 거지.” 밥차가 보이는 골목길 안쪽에서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시끄럽다. 조상철(가명·49)씨는 밥차가 싫다고 말했다. 조씨는 인력 사무소에서 “6시30분까지 여의나루로 가라”고 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초등학교만 나와 배운 게 없고, 평생을 막일로 살았다. 밥차에서 나온 떡국을 본 조씨는 “설이라고 다들 고향에 가는데 돈을 못 벌어 고향에 가긴 틀렸다”며 “저 밥차는 나한테 돈도 밥도 안 주니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사람 9. 일주일째 일거리 못 잡은 조선족 박씨 

 국통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파란색 큰 물통을 들고 박동만(가명·40대)씨가 밥차 앞에 섰다. 국이 다 떨어졌으니, 물통에 밥을 가득 담아달라고 한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8명인데, 좀 많이 줘요” 말투가 낯설다. 조선족이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는데, 일자리를 못 구하니 이렇게 밥을 얻어먹어야 할 신세다. 벌써 일주일째다. 국 퍼주는 정씨는 일주일이면 밥이 쉴 텐데, 내일은 떡국이 나오니까 꼭 나오시라고 박씨를 챙긴다.

 사람 10. 이준혁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빨간밥차 담당자 

 이준혁씨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빨간밥차를 담당한다. 그는 전화로 밥차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줬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서울역과 을지로 등에서 밥차를 운영하다가 지난 2009년 6월부터 구로동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 막노동자 등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수, 목요일 새벽 무료급식 때만 움직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구로구청에 협조를 얻어서 공영주차장에 쭉 쉰다. 봉사자들은 구로지역 인근 성당에서 알음알음 오고, 보수는 없다. 다만, 밥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정도만 수고비 조로 유급봉사료(50만원)를 받는다. 이씨는 “점점 새벽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며 “수년째 해오는 것이고, 딱히 힘든 건 없지만 일거리가 늘어나서 더 이상 우리가 이 밥차를 몰지 않아도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밥 퍼 주는 사람도, 얻어먹는 사람도 ‘오직 밥을 위해’ 

 5시부터 시작한 배식은 5시30분에 가장 긴 줄을 만들고. 6시쯤 드문드문하다. 먹성이 좋은 젊은이들은 국밥을 두 그릇, 세 그릇씩 타가고, 아저씨들은 국물만 더 받아 안주 삼아 ‘새벽 술’을 마신다. 밥을 남긴 아저씨는 “비닐에 싸주면 가져가서 더 먹겠다”고 밥을 퍼주는 김씨에게 부탁하고, 어떤 사람들은 들통째 밥을 달라며 떼를 쓴다.

 파리한 얼굴에 회색 외투를 거친 고시생 느낌의 젊은이가 말없이 밥숟가락을 놀릴 동안 나이 든 사람들은 가스등 난로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번 주도 로또를 샀다. 이 중에서 내 인생이 젤 가능성이 커 보여. 히히.” “헛소리 그만하란 말이야. 이 XXX야.” 가끔은 술 취한 사람의 고성도 들린다.

 6시30분, 국통도 밥통도 바닥을 드러낸다. 봉사팀은 음식 찌꺼기를 정리해 승합차에 싣고, 테이블 의자를 밥차에 옮기고 나면 철수준비가 끝난다. 오늘의 밥 봉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밥을 퍼 주는 사람도, 그 밥을 얻어먹는 사람도 어김없이 수요일과 목요일 새벽, 남구로역 광장에 모인다. 오직 ‘밥을 위해.’

  글·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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