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된 23살 여성을 추모하고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 현상을 비판하며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써서 남긴 글들이 서울여성플라자에 전시돼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제공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교수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펴냄, 2012)의 저자이자, 저명한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2일 저녁 서울 성북동의 한 식당에서 우에노 교수를 만났다. 그는 3일 서울시립대에서 ‘도시적 감정의 양식’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6회 도시인문학 국제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서울 강남역 사건에서 시작됐다. 우에노 교수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도쿄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피의자는 ‘여자친구만 있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면 남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남역 사건 뒤) 여성들이 현장에 남긴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한 것은 여성들이 ‘레이프 컬처’(강간 문화)의 생존자라는 얘기다. 역시, 오키나와 미군부대의 해병대 군인이 20살 여성을 살해한 일이 떠올랐다. 그 일본 여성도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우에노 교수는 ‘비틀린 동맹’이라는 표현을 통해 여성혐오 현상이 쇼비니즘과 뒤엉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민족주의’에 기대려 한다. 민족주의의 단순한 방법은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으로, (일본에선) ‘혐한’과 ‘혐중’으로 이어진다. (이를 부추기는) 고이즈미도, 아베도 굉장히 위험한 정치가”라고 했다.
강남역 사건을 비롯해 여러 사회적 문제는 ‘강자 대 약자’의 성격을 갖는다. 우에노 교수는 자신이 최근 ‘케어’(돌봄)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면서 “고령사회에선 강자가 약자가 된다. 특히 강자였을수록 노후에 힘들다. 남성들은 약자가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에 남성의 노후는 더욱 비참하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공통된 현상인데, 강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저는 초고령사회를 아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두 예외 없이 약자가 되는 사회”라고 덧붙여, 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혼자 집에서 어떻게 죽을까’ 하는 문제를 다룬 <혼자 오신 분의 최후>라는 책을 썼고, 조만간 한국에 번역돼 출판될 예정이다.
약자 문제를 얘기하면서 화제는 서울 구의역 사고로 넘어갔다. “사고 소식을 듣는 즉시 일본의 원전 노동자들이 연상됐다. 위험한 일은 임금이 높게 설정되지만, 아웃소싱(하청)을 거듭하면서 실제 일하는 사람은 낮은 임금을 받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선 현재 수천명이 매일 일하는데, 그야말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이어 우에노 교수는 “아웃소싱이 거듭될수록 책임이 하나씩 없어지고, 마지막엔 사람한테 모두 전가된다.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무책임하다”고 덧붙였다.
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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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교수. 사진 김성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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