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마스크 착용 신논현역 집결
2천여명, 성차별·성폭력 끝장 집회
강남역으로 구호 외치며 거리 행진
부산·전주 등 6곳서 동시다발 집회
“여성에 침묵 강요하는 세상 끝나”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를 맞은 1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열린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비옷을 입은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피해자를 추모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쏟아지는 빗속에서 검은색 옷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17일 저녁 7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서울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 모였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2016년 5월17일 당시 23살이던 한 여성이 강남역 인근 상가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2주기를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60여개 여성시민단체가 모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은 이날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이름으로 제4차 성차별·성폭력 끝장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성폭력 성차별 반드시 끝장내자”고 외쳤다. 집회 전 갑자기 굵어진 빗줄기에 스피커가 종종 꺼졌지만, 그때마다 시민들은 환호로 응원했다.
흰 우비와 검은색 옷,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 2000명은(주최 쪽 추산)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묵념한 뒤, “불법촬영 처벌하라, 사법정의 실현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강남역 방향으로 약 600m를 행진했다. 이들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다시 한번 묵념을 한 뒤 손바닥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추모의 마음이 피해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집회를 찾은 대학생 김아무개(21)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로 평소 잠재했던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며 “집회 참석은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홍아무개(24)씨는 “강남역 사건 1주기엔 한국에 없어서 참여하지 못했다”며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했다. 홍씨의 남자친구 강아무개(23)씨는 “원래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는데 여자친구 덕에 책도 찾아보면서 여성 차별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도 남자친구인 강씨가 먼저 참석을 권했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서 공연한 뮤지션 오지은씨는 비 때문에 꺼진 스피커를 재정비하는 동안 “여러분의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는 살아 있고 싸우고 있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오씨는 모든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작은 자유’라는 노래를 불렀다.
시민행동은 이날 집회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1만인 선언문’도 낭독했다. “미투 운동이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며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지만,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이날 강남역 살해사건 2주기를 맞아 성차별·성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국동시다발 집회는 서울을 비롯해 대구·부산·창원·전주·진주 등에서도 이어졌다.
장수경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