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기차길옆작은학교 중등부·도르리, 사진 유동훈
내 어릴 적 성탄은 텔레비전 속에만 있었다. 커다랗고 화려한 트리와 화목한 가족. 착한 아이들만 받는다는 산타 선물까지, 내게는 없는 것들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산타 선물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산타가 아니라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다행히 가난한 내 친구들도 선물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기차길옆작은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따뜻한 성탄절을 맞이했다. 적은 용돈으로 서로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소박한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경험을 한 뒤, 나도 성탄절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다. 기차길옆작은학교는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2000년 전 예수가 태어났던 그 마구간이 오늘날은 어디인지를 생각하며 아이들과 함께 구유를 만든다. 그리고 예수가 이 땅의 낮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태어났던 것을 기억하며 이 시대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한 평화 기도를 드린다.(도르리 오정희)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형이 돌아가셨어요. 사장님들은 목숨보다 돈이 더 좋은가 봐요. 노동자가 죽으면 그 회사가 벌을 받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형의 죽음을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초5)
하느님, 우리 아빠가 일할 때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빠처럼 힘든 일을 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초3)
엄마가 자주 왔으면 좋겠어요.(초1)
엄마가 공부방에 다니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성적과 힘으로 서로 나누지 않으면 좋겠어요.(초6)
오늘 눈이 와서 굴뚝 위의 아저씨들이 걱정됐어요. 요즘 땅도 영하로 내려갔는데 굴뚝 위는 더 추울 거 같아요. 아저씨들이 계시는 곳은 폭이 80센티미터밖에 안 되니까 눈도 더 많이 쌓이고 얼지 않게 빨리 치워야 하니 더 힘들 것 같아요. 아저씨들이 굴뚝에 계신 지 1년이 넘어가고, 이제 2019년이 되니까 새해 전에 내려오시면 좋겠어요.(초5)
콜트콜텍 아저씨들이 11년 동안 복직이 안 되고 세상이 안 바뀌어서 슬프시겠어요. 어서 복직하시면 좋겠어요.(초2)
학교에서 저는 따돌림을 당하는 게 정말 싫어요. 저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저는 이제 따돌림을 안 당하면 좋겠어요. 또 내가 따돌림당하는 걸 보면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어요.(초4)
어렸을 때 살았던 보육시설에서는 주말마다 예배를 드렸다.
“조는 사람 나와.” “떠든 사람 나와.”
주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선배들은 후배들을 마음 놓고 때릴 핑계가 생겼다. 그런 예배에는 마음이 닫혔다. 대학에 다니면서 길 위에서 상처받아 분노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미사와 예배를 드리고 법회를 여는 신부님들과 목사님들, 그리고 스님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기도의 힘을 믿고 싶어졌다.
올해도 좁고 위험한 굴뚝에서 길 위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내 친구들과 이웃들의 삶도 점점 힘들어진다.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과 그들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간절하게 드린다. 한편으로는 나의 기도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평화기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슬픔과 분노로 힘겨운 겨울을 보내는 분들에게도 아기예수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도르리 김성수)
▶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누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는 그림, 만화, 인형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