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누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는 그림, 만화, 인형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
지난해 여름, 인천 동구 화수동 골목 어귀 작은 공간을 얻어 ‘문화예술 창작 공간 도르리’를 열었다. 첫 손님은 ‘도르리’가 있는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였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와서 대뜸 “물 좀 주세요” 했다. 그 모습이 너무 당당해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학교가 파하면 ‘도르리’에 들러 “화장실 좀 쓸게요” 하거나 물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친구가 없는 그 아이에게 ‘도르리’가 친구가 되었고, ‘도르리’에는 귀한 손님이 되었다.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의 ‘꼬마 목수전’을 열고 나서부터는 토요일에 화수동이나 송현동에 사는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덕분에 토요일이 시끌벅적해져 좋았다.
기차길옆작은학교에 다니는 유정이는 평일에는 공부방에 가야 하니 ‘도르리’에 못 오다가 토요일이면 친구 미란이를 데리고 왔다. 마땅히 갈 곳도, 돌봐줄 사람도 따로 없는 아이들은 휴일을 ‘도르리’에서 보냈다. 작업하는 우리에게 종알종알 수다를 떨고, 자기들끼리 그림도 그렸다. 언제부턴가 미란이는 학교를 마치면 ‘도르리’에서 시간을 때우다 엄마가 퇴근할 무렵 집으로 돌아갔다. 기차길옆작은학교가 그랬듯이 ‘도르리’도 동네 아이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 되는 게 좋다.
12월 들어 ‘도르리’도 겨울 분위기를 내보기로 했다. 유리문에 한지를 오려 눈꽃을 만들어 붙이고, 글라스 마커로 성탄 축하 메시지도 써놓았다. 그러자 도르리에 오는 아이들이 자기들도 그림을 그리겠다며 펜을 달라 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어둠이 내려 캄캄해진 골목을 화판 삼아 꽃, 구름, 무지개, 무당벌레 등 귀여운 그림들로 유리문을 채워나갔다. 그 그림 덕분에 유난히 추웠던 2018년의 세밑을 따뜻하게 보냈다.
새해에는 우리의 ‘도르리’ 공간이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에게도 좀 더 편하고 따뜻한 곳이 되면 좋겠다. ‘강화 쌀 상회’ 할아버지나 간판 없는 구멍가게 할머니, 건재상, 세탁소 아저씨들이 동네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주실 수 있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노동자들이 ‘도르리’ 문을 스스럼없이 열고 들어와 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르리’ 안에 쌓이면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글·그림 김성수, 만화 오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