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으로 9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 께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까지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으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어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싹쓸이하며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1956년 <마티> 이후 두번째다. <마티>는 미국 영화였다.
미국이나 유럽 영화가 아닌, 세계 영화계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상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상을 동시에 차지한 건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단순히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쓴 것만이 아니라 세계 영화 흐름의 물꼬를 새로 텄다는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다 받았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 없이 그해 최고의 영화라는 뜻이다. 자막을 읽기 싫어하는 미국에서 비영어권 영화가 이런 성과를 냈다는 건 한국 영화의 경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기념비적 ‘사건’이다”라고 풀이했다.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변화를 상징하는 단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필립 평론가는 “<기생충>의 주요 부문 수상에서 불평등이 기저에 깔릴 수밖에 없는 지역 영화상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도 “올해 아카데미는 수상작 투표에서 ‘다양성’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백인들이 만들어온 ‘화이트 스토리’와 전통 영화문법에 대한 숭배와 편향에서 벗어나 8천여명의 투표자가 ‘미래’를 포용했다는 뜻이다.
<기생충>의 수상은 한국 영화가 그동안 쌓아온 저력을 상징한다. 김형석 평론가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이후 한국 영화들은 세계 영화제에서 꾸준히 상을 타왔다. 한국 영화산업 규모도 세계 5~6위권이다. 산업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무시 못 할 토대를 쌓아온 상황에서 <기생충>이 확실한 인증샷을 찍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봉 감독 말고도 다른 여러 감독의 작품들이 꾸준히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계에 희망을 줬다는 의미도 있다.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가 마지막 빗장으로 여겨졌던 언어의 장벽마저 허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김형석 평론가는 “<기생충>의 수상 이후 소수 언어로 영화를 만드는 나라에서도 작품만 좋다면 아카데미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아카데미로서도 더 다양한 작품을 품어 안을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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