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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 5등분…” 매너도 유머도 최고‘봉’

등록 2020-02-10 19:38수정 2020-02-11 09:10

[‘참으로 시의적절한 소감’]
달변가로 소문난 봉준호 감독
“한국 최초 오스카상” “취할 준비됐다”
의미+재치 멘트에 영화인들 환호
감독상 수상 땐 후보 감독들에 경의

[‘무계획이 계획”? 예상 못한 반전]
한국 영화사 정점 찍은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객석 술렁
아카데미상 최대 반전 이끌어내며
세계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2월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미국 개봉 이후 줄곧 통역을 맡아 활약해온 통역사 샤론 최에게 트로피를 건네며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2월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미국 개봉 이후 줄곧 통역을 맡아 활약해온 통역사 샤론 최에게 트로피를 건네며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모든 예술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오늘 밤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좌표를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 쓴 봉준호 감독. ‘달변가’로 유명한 그의 수상 소감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또 한 편의 극적인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트로피 4개를 들어올리는 내내 그가 쏟아낸 재치 있고 알맹이 꽉 찬 소감은 돌비극장에 모인 참석자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이날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각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첫 시상 무대에 올라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다”라는 한국어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한국 영화 101년 역사를 바꿔 쓴 당사자다운 소감이었다. 이어 오스카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린 봉 감독은 가족과 배우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두 번째 국제영화상 수상을 위해 봉 감독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봉 감독은 이 상의 의미를 아카데미상의 변화에 연결한 소감을 내놓아 감동을 안겼다. 그는 “이 부문 이름이 올해부터 바뀌었다.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첫 번째 상을 받게 돼 더더욱 의미가 깊다”며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바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해다. 이어 국제영화상이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받는 마지막 트로피라는 듯 촬영감독 홍경표·미술감독 이하준·편집감독 양진모 등 스태프는 물론 “사랑하는 송강호 배우”를 비롯한 모든 출연진의 이름을 일일이 소개했다. 봉 감독의 호명에 맞춰 객석에 앉아 있던 배우들이 전원 일어서 인사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줄곧 한국어 소감을 이어가던 봉 감독은 마지막으로 “오늘 밤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라는 재치 있는 영어 소감으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기생충>의 수상 레이스가 여기서 멈출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골드더비 등에서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을 일찌감치 가장 강력한 감독상 후보로 점찍었기 때문에 봉 감독은 “수상 소감조차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감독상 확률을 높게 보지 않았던 터다. 하지만 시상자로 나선 스파이크 리 감독이 감독상 수상자로 “봉준호”라는 이름 석 자를 호명하자 돌비극장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봉 감독은 예상치 못한 호명에 “좀 전 국제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함께 후보에 오른 거장 감독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 봉 감독은 “정말 감사하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카메라가 감독상 후보로 함께 오른 노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비추자 객석에선 “브라보”라는 외침과 함께 기립박수가 터졌다. 봉 감독은 또 “제 영화를 아직 미국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셨던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도 계신데, 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외쳐 객석의 폭소를 자아냈다. ‘달변가 봉준호’의 진가를 보여주는 소감도 뒤를 이었다.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필립스(<조커>)나 샘 멘데스(<1917>) 등 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다.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5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기생충>의 수상 행진의 정점이자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발표된 작품상. 기라성 같은 작품을 제치고 기생충이 호명되자 객석에서는 잠시 웅성거림이 퍼졌다. 그만큼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최대 반전’이었다. 배우·스태프와 함께 무대에 선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E&A) 대표는 “말이 안 나온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지니까 너무 기쁘다. 지금, 이 순간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이는 기분이 든다. 아카데미 회원분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카데미 역사는 물론, 전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렇게 한 편의 거대한 반전 영화처럼 놀라움과 흥분을 머금은 채 막을 내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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