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관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알파벳 약칭을 딴 유튜브 채널 ‘엠엠시에이 티브이’(MMCA TV)를 통해 주요 전시 현장을 학예사의 해설로 소개하는 ‘학예사 전시 투어’ 상영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일상을 바꾸었다… 미술관 휴관은 전시의 풍요로움을, 확산하는 감염증 소식은 죽음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런데 전시를 보고 싶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미술사가이자 기획자인 조은정씨는 최근 미술계 지인들에게 카카오톡과 전자우편으로 ‘전시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최근 개설한 온라인 전시 ‘미술관에서 만나는 평화의 전사’(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이 전시는 태블릿과 피시는 물론 모바일로도 관람할 수 있다. 누리집(sixshop.com/bluecs) 오른쪽 상단 차림표를 열어 거기에 나온 서울·뉴욕·런던·파리 등 도시 이름을 클릭하면 4개 도시에 살며 작업 중인 김홍식, 박유아, 신미경, 윤애영 작가의 근작이 설명과 함께 나타난다.
코로나 감염 사태로 휴면에 들어간 미술판에서 온라인 전시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일반 전시장의 딸림 기능이나 홍보 수단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미술관, 화랑 전시장이 문을 닫으면서 유튜브, 포털 플랫폼 등의 전시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전시장 방명록처럼 이름과 감상을 남길 수도 있다. 조 기획자는 “기획자와 작가 4명이 고립감 가득한 코로나 시국에 무언가 만들어 보여주자고 뭉친 뭉클한 연대감이 전시를 이끌었다”며 “웹프로그램 사용료가 부담되지 않을 때까지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의 주요 전시 브이아르(VR) 영상 체험.
■ “집 밖은 위험해”…대세가 된 온라인 전시들
가장 돋보이게 온라인 전시 콘텐츠를 내놓은 곳은 국내 최대의 전시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다. 휴관 기간에도 주요 전시의 현장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지난주 초 누리집(museum.go.kr)을 개편했다. 초기화면에서 바로 뜨는 가상현실(VR)과 동영상을 통해 박물관의 지난해와 올해 주요 기획전 현장을 고른 뒤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지난주 끝난 ‘가야본성’전의 경우, 토기가 가득 들어찬 유리 타워 진열장 사이를 홀로 돌아보는 듯한 실감을 안겨준다. 또 다른 화제 전시였던 ‘핀란드 디자인 1만년’은 동영상 유시시(UCC)로 공개했다. 새로 단장한 세계문화관 ‘이집트관’의 전시 내용과 미라를 배치하는 전시 준비 과정도 동영상으로 엿볼 수 있다. 박물관 쪽은 네이버티브이와 손잡고 이달에 ‘핀란드 디자인 1만년’ ‘세계문화관 이집트관’을 인터넷 방송으로 소개하는 일정도 잡아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튜브 전용 페이지(MMCA TV)에서 ‘학예사 전시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한 ‘광장’전 등 10개 주요 기획전의 학예사 전시투어 내용을 한자리에 모아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지난달 20~23일 열린 한국화랑협회 주최 미술품 장터인 화랑미술제는 네이버와 협력해 방문하지 않고도 부스별 출품작을 감상·구매할 수 있는 ‘네이버쇼핑 아트윈도’ 채널을 개설해 현장 관람객 1만3천명보다 많은 1만5천명이 접속하는 성과를 올렸다. 행사는 끝났지만 협회 쪽은 이 채널을 이달 31일까지 계속 운영한다.
3월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 최대의 미술품 장터 아트바젤 홍콩이 취소되자, 아트바젤 쪽은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온라인 전시·판매 플랫폼을 개설해 다음달 18~25일 운영한다. 애초 장터에 참여하기로 했던 갤러리들이 전세계 후원자·컬렉터 및 바이어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국내에선 학고재 등 참여 화랑들이 출품작을 플랫폼에 내보일 계획이다.
이는 한국 미술판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 1월 말부터 모든 공공 전시기관이 휴업하면서 정부 지침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시장을 옮겼다. 상하이박물관, 베이징 고궁박물관 등은 과거 전시나 소장품을 3D 가상현실로 전시 중이다. 일본 쪽도 도쿄·나라 등 주요 국립박물관, 미술관이 휴관하면서 온라인 콘텐츠 노출을 대폭 늘렸다. 동아시아권 미술판이 모두 온라인 전시로 굴러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화랑협회 누리집에 운영 중인 회원업체의 온라인 전시창 ‘네이버아트윈도’.
■ 코로나19로 인한 궁여지책? 성찰과 담론도 있다
온라인 전시의 의도는 밖에 못 나가는 사람들에게 힘들이지 않고 작품 세부를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궁여지책 같지만 기존의 고비용 저효율의 물량식 전시에 대한 성찰과 디지털 시대 전시의 혁신에 대한 담론을 모색하는 계기로도 다가온다. 실제로 요즘 미술판에서는 온라인 전시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관심과 함께 앞으로 대형 전시나 미술 프로젝트의 형식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전시는 지난 수년간 국내외 미술판에서 대중 기획전의 한 형식이자 실험적인 얼개로 계속 시도됐다. 소장 청년 작가를 중심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전시나 에스엔에스(SNS)상에서 예술품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 등이 고안되면서, 디지털 미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이 다양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대중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대형 기획전까지 모두 멈춰 서면서, 기존 전시의 대형화·물량화라는 전반적 관행을 벗어난 디지털 전시가 얼마나 대체효과가 있는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공공미술관에 대한 접근성을 관객 수치로만 환산하는 기존의 관행 대신 사무실과 안방까지 파고드는 디지털 전시 환경의 전달력을 새로운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박물관의 평가 지표를 산정할 때 영국 테이트 미술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처럼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인터페이스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팀장을 지낸 임근혜 기획자는 “서구 미술관의 사례로 보면 온라인 전시는 콘텐츠 세부에 대한 접근성과 소통의 폭, 지식 전달력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확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분명한 효용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베엠베(BMW) 자동차와의 협업 프로그램인 테이트 라이브(TATE Live)는 2012년 퍼포먼스 전용공간 오픈 이후 현재까지 15개의 신작을 선보였고, 90개국 16만5천명의 관객이 관람하는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말 루브르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획전의 일부로 제작한 명화 <모나리자> 가상현실 전시는 전시장 버전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홈 버전이 서비스돼 실제 전시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기존 전시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그림 세부를 첨단 방식으로 보여줘 호평이 이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의 ‘불온한 데이터’전 투어 안내창.
■ 그래도 실물 보는 전시장 감상 문화가 본질
하지만 바깥에 나가 현상과 사물을 보고 겪으며 감성적으로 고양되는 인간 본연의 인문적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실물을 보는 전시장 위주 감상 문화는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바깥을 돌아다니며 자연환경에서 이미지를 얻는 인간 유전자는 수십만년 유지됐지만, 가상 디지털의 역사는 수십년에 불과하다. 디지털 전시가 실물 전시틀 자체를 완전히 뒤엎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온라인 전용의 전시 형식이 인간의 미의식과 감상 행태에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하다. 바이러스 감염의 회오리가 지나간 뒤 미술판의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행정가들이 어떤 화두를 내세워 전시 콘텐츠와 형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진화시켜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마침 올해는 미술 담론의 잔치인 국내 비엔날레들이 일제히 개막하는 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