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함에 따라 극장마다 방역에 한창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문화예술계 전반이 ‘올스톱’ 상태가 되면서 업계 종사자를 비롯한 문화계 전체가 끝 모를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예술인 저금리 대출, 창작금 지원 등 관련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 때에 견주면 더 적극적이고 발 빠른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때보다 피해가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탓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의 문화계 지원책에 대한 현장 각계의 목소리를 모아봤다.
■ “분야별 맞춤형 대책 내놔야”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복지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산하기관을 통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단체와 개인을 지원하기로 했다. ‘긴급생활안정자금’(예산 30억원)으로 예술인 개인에게 저금리(1.2%)로 대출해주고, ‘창작디딤돌’로 창작을 준비하는 예술인 1만2000명에게 1인당 300만원씩 지급한다. 매년 해오던 지원 규모를 갑절 이상 늘린 것이다. 서울문화재단도 서울시로부터 받은 45억원의 추가예산을 긴급 지원한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당장의 허기만 채워주는 일시적인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연극 연출가는 “계속해서 공연을 중단할 수만은 없어 공연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국공립기관의 지방 투어가 모두 취소됐으니 여기에 책정됐던 예산을 민간 공연장 대관료를 할인해주는 데 활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실태조사로 분야별 대비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공연 제작사 대표는 “실태조사 없이 가요, 공연, 영화 등 전체를 뭉뚱그려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최근 서울시는 객석 2m 거리 유지 등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는데, 소극장에선 현실적으로 이를 지키는 게 불가능해 연극인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 사태 대비 단계별 매뉴얼을 만들어 언제까지 문을 닫고 언제부터 재개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은 이매리 작가의 '시 배달-Poetry Delivery 2020'전을 온라인 초대전으로 연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대관 취소 수수료 지원했으면”
정부는 지난달 ‘코로나19 예술인 특별융자’를 신설해 피해를 본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 중소 레이블 이사는 “당장 대관 취소 수수료를 내기도 쉽지 않아 폐업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융자를 받을 처지가 못 된다”며 “차라리 정부가 취소 수수료를 일부라도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중음악업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지원책은 지난달부터 신청받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코로나 피해를 본 예술단체(개인)의 창작활동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다.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모금하면, 모인 금액의 50%까지 최대 500만원 한도로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을 두차례 연기한 한 기획사 대표는 “목표 금액을 500만원 이상으로 해야 하고, 달성하지 못하면 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지원해보려 한다”며 “1천만원 이상 모여도 500만원까지만 지원해주기 때문에 규모가 큰 공연 기획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무관객 온라인 공연에 대한 정부 지원 요구도 나왔다. 44개 중소 레이블과 유통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문체부에 최근 ‘랜선라이브’ 사업을 제안했다. 공연장 대관료와 촬영비 등 제작비를 문체부가 일부 지원하고, 인디 뮤지션들이 평일 실시간 온라인 콘서트를 열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난이 심화된 시지브이(CGV)가 지난달 28일부터 직영 극장 116개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전국 35개 극장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영업이 중단된 서울 중구 명동 시지브이가 텅 비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지역 단위 지원사업이 더 효과적”
미술판 작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정부 지원책은 ‘창작디딤돌’로 명명된 창작지원금이다. 그러나 현장 작가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래 있던 정기지원사업인 창작지원금과 생활안정자금은 위기 국면에서 유연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작가촌에서 대안공간 ‘스페이스 엑스엑스’를 운영 중인 최두수 기획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지원자들이 늘면서 경쟁만 더 치열해진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대구 도심에 작업실을 둔 신경철 작가는 “공공 지원 공모는 서류 양식도 복잡하고 증빙도 까다로워 생각도 못 한다”고 했다.
작가들은 전국보다 지역 단위 지원사업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최두수 기획자는 “국가가 지자체나 지역 작가 공동체 등에 한시 특별예산을 배분해 심사·대출 요건을 완화한 상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사례도 있다. 문래동 창작촌을 포함한 영등포 지역 작가들이 지난주 영등포구청 영등포문화재단과 논의한 끝에 구 예산 2억5천만원을 확보해 지역 작가 긴급지원책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술계 한쪽에선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의 공공예술가 프로젝트처럼 정부가 대단위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영화발전기금 쓰게 해달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계를 아우르는 단체 20여곳이 참여한 ‘코로나19대책영화인연대회의’는 지난달 25일 ‘코로나19로 영화산업 붕괴 위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가 지난달 9일 여행업·관광숙박업·관광운송업·공연업 4개 업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으나, 영화산업은 빠졌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지난 1일 영화발전기금 부과금 한시 감면 등 대책을 내놨다.
현장에선 무엇보다도 영화발전기금을 즉각 긴급지원자금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인 최정화 피디는 “세금으로 도와달라는 게 아니다. 영화계 내부에서 모은 영화발전기금이 2000억원 가까이 쌓여 있는데, 이걸 당장 쓸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영화인들의 소외감은 더하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정부 지원책에는 독립영화인에게 해당하는 게 없다. 가장 밑바닥에서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처지에 내몰린 독립영화인들을 위해 조건 없는 생계지원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화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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