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독립영화 비영리단체 ‘세손가락’을 운영하는 김준기씨는 요즘 수입이 전혀 없다. 학교나 지역 미디어센터에서 영화·미디어 강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강의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피시방마저 문을 닫았다. 그는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책은 나와 관계없는 딴 세상 얘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독립영화 감독 ㅇ씨는 3월부터 고등학교 방과 후 실기 교사로 일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개학이 연기되면서 근로계약 자체가 보류됐다. 전에는 영화제 심사위원이나 스태프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올해는 영화제 자체가 사라졌다. 요즘은 식당에서 일하며 월 20만원 버는 게 수입의 전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특별 융자’를 신청하려 했지만, 이전에 재단에서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해 지원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 사람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최소비용이라도 정부가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독립영화 관련 단체 27곳과 독립영화인 52명이 결성한 ‘코로나19 독립영화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22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독립예술영화 분야 피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12일 단체 23곳과 개인 52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영화인의 42%가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수입이 전혀 없어 기초 생계를 꾸리기도 벅찬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영화 단체와 독립영화 제작사·배급사·극장은 매출이 50~100% 줄었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영화 제작만으로 수익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독립영화인들은 주로 영화 교육 관련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교육 프로그램이 연기·취소되면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의 피해 유형 중 교육 분야가 34%로 제작 분야(35%) 다음으로 많았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지원책엔 프리랜서와 비영리 활동 위주의 독립예술영화계가 철저히 배제돼 있다”며 답답해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정부는 코로나19 영화 지원을 가장 긴급한 곳에 직접적이고 차별 없이 집행하라’라는 제목의 의견문을 내어 독립영화계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영화산업 피해 긴급 지원 대책은 한계가 분명하다. 영화발전기금의 용도를 변경해 확보한 예산 170억원의 70%를 투입하는 200개 영화관 특별전 개최(30억원)와 할인권 제공(90억원)은 코로나19 극복 이후 사업으로, 긴급하고 직접적인 지원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가장 취약하고 어려운 조건에 있는 개인(프리랜서)과 정부 지원제도에서 소외된 중소 단체·기업, 독립예술영화관 등에 대한 긴급한 지원을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이에 비해 한국의 지원책은 원칙과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독립예술영화인(프리랜서) 긴급 지원, 영화 관련 비영리 법인·단체 고용 유지 지원, 영화기업 긴급 정책자금 초저금리 대출, 독립·예술 영화 전용상영관 긴급 지원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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