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새삼 주목받은 단편영화가 있다. 봉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만든 첫 영화 <지리멸렬>(1994)이다. ‘사회지도층’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이후 펼쳐진 봉 감독 영화 세계의 특징이 집약돼 있다.
이처럼 많은 영화인이 상영시간 40분 이내의 단편영화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 흥행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도전과 파격적 실험을 할 수 있어 유망주의 산실 구실을 한다. 이런 단편영화를 전문으로 배급하는 회사도 있다. 인디스토리, 씨앗, 센트럴파크, 퍼니콘, 포스트 핀, 필름다빈, 호우주의보 등 7개 회사는 단편영화 생태계를 활성화하고자 지난해 한국단편영화배급사네트워크를 결성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주요 통로인 국내외 영화제들이 줄줄이 연기·취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는 보통 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다.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입소문을 타면 기획전 등을 통한 극장 상영이나 독립서점, 카페 등에서 열리는 대안 상영으로 이어진다. 감독은 장편 제작 기회를 얻기도 한다. <라라랜드>로 세계적 감독이 된 데이미언 셔젤은 2013년 단편영화 <위플래쉬>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뒤 제작비를 지원받아 <위플래쉬>를 장편화했다.
영화제뿐 아니라 다른 상영 기회도 막혔다. 10년간 단편영화만 전문으로 배급해온 센트럴파크의 홍성윤 대표는 “영화제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상영 창구가 사라진 것도 큰 문제다. 최근 몇년 새 복합문화공간, 독립서점, 카페 등 대안 상영 창구가 확장되는 흐름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멈췄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영화제는 원래대로 돌아올 테지만, 늘어나던 상영 창구가 복구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편영화 배급사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꾸준히 단편영화를 서비스해온 네이버 인디극장뿐 아니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오티티) 왓챠플레이와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있다. 백선우 호우주의보 대표는 “최근 오티티가 보편화하면서 왓챠플레이, 무비블록, 여성영화 전문 플랫폼 퍼플레이 등에서 단편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온다. 평소 단편영화를 보지 못하던 일반 대중과 접점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스토리 이나현씨는 “감독이 먼저 온라인 공개를 희망하는가 하면, 인기 영화 유튜버가 단편을 소개하고 싶다고 문의해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왓챠플레이는 현재 271편의 한국 단편영화를 서비스하고 있다. ‘단편’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로맨스, 판타지 등 장르별 단편영화를 볼 수 있다. 왓챠플레이의 허승 매니저는 “코로나19 사태로 전체 시청 시간이 늘면서 단편영화도 3월 이용량이 전달보다 40%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매달 5~10%씩 늘어나는 추세였다”고 전했다. 왓챠플레이는 콘텐츠 다양화를 위해 올해부터 단편영화를 강화하기로 하고, 배급사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우선 다음달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단편 애니 50여편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배급팀 씨앗의 정소영 팀장은 “요즘은 창작자들도 온라인 공개를 적극적으로 원해 처음으로 단편 애니를 왓챠플레이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온라인이 근본적 대안이 될 순 없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홍성윤 센트럴파크 대표는 “단편도 장편과 마찬가지로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장편은 개봉을 연기하면 되지만, 단편은 해를 넘기면 극장 상영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조건 온라인으로 돌리기보단 단편영화 상영 극장에 혜택을 주는 등 정부의 단편영화 상영·배급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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