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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박수는 경적으로 환호는 깜빡이로’…드라이브 인 공연의 무한 진화

등록 2020-07-15 18:27수정 2020-07-16 10:03

[경복궁 주차장 고궁음악회 직접 가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빈 주차장 활용
코로나19 침체된 문화계 대안으로
공연 넘어 팬미팅·팬사인회로 확산
12일 서울 경복궁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2020 차 안에서 즐기는 고궁음악회’ 풍경 남지은 기자
12일 서울 경복궁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2020 차 안에서 즐기는 고궁음악회’ 풍경 남지은 기자
“걱정 말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다~. 아아 별일 아냐. 아아 괜찮아 다아 지나간다.”

국악 밴드 고래야의 곡 ‘큰일’이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자동차 경적 소리가 커진다. “빵빵~” “빠아아아앙~!” 비상 깜빡이도 덩달아 춤을 춘다. 지금 이 순간 경적 소리는 박수, 비상 깜빡이는 환호를 대신한다. “클랙슨(경적) 소리, 헤드라이트가 저희를 흥분시킵니다. 자 가즈아~!”(고래야) 지난 12일 서울 경복궁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2020 차 안에서 즐기는 고궁음악회’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무대를 잃은 대중문화예술계는 나름의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나는 무관중 라이브 공연과 함께 자동차 극장의 개념을 도입한 ‘드라이브 인~’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고궁음악회’를 기획한 한국문화재재단 마케팅기획팀 이상훤 부팀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어 있는 주차장을 활용해 관객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궁음악회’는 지난 9~12일에 이어 오는 16일(소울소스 미츠 김율희), 17일(김주홍과 노름마치), 18일(이드 & 촘촘, 궁예찬), 19일(이희문의 한국남자) 저녁 8시에 찾아온다. 무료로 배포한 표가 일찌감치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

12일 서울 경복궁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2020 차 안에서 즐기는 고궁음악회’ 풍경 남지은 기자
12일 서울 경복궁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2020 차 안에서 즐기는 고궁음악회’ 풍경 남지은 기자
지난 4월25일 용인문화재단이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시도한 이후 ‘드라이브 인 공연’은 코로나 시대에 문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급부상했다. 진주시립교향악단이 드라이브 인 콘서트 형식을 빌려 정기연주회를 여는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콘서트나 공연을 넘어 팬미팅이나 사인회 등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가수 양준일과 김호중이 ‘드라이브스루 사인회’를 연 데 이어, 아이돌그룹 온리원오브는 지난 6월 경기 양주의 한 자동차극장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팬 100여명이 소속사에서 준비한 택시로 순서대로 이동해 역시 다른 차 안에 대기하던 아이돌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개최가 불투명했던 축제의 대안으로도 떠오른다. 22일 시작하는 ‘평창대관령음악제’는 29일 손열음의 공연을 강원도 강릉 자동차극장에서 열고, 8월 개막하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도 일부 작품에 한해 자동차에서 개그를 즐기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돌그룹 온리원오브가 지난 6월 경기 양주의 한 자동차극장에서 연 팬미팅. 소속사 제공
아이돌그룹 온리원오브가 지난 6월 경기 양주의 한 자동차극장에서 연 팬미팅. 소속사 제공
이런 시도는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검사’의 성공에서 착안한 것이다. 반응도 좋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디엠제트(DMZ) 평화이음 드라이브 인 콘서트’는 유료임에도 예매 일주일 만에 500대 분량이 매진됐다. 양준일 사인회는 많은 이들이 몰려 애초 2시간을 넘겨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양준일 사인회에 다녀온 40대 팬은 “코로나19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날 기회가 사라졌는데 차에서 즐기는 방식이 그 갈증을 해소해줬다”고 말했다. 12일 ‘고궁콘서트’를 즐긴 70대 관객은 “집에만 있어 답답했는데 바람도 쐬고 좋다”고 말했다.

예능에도 소개됐던 가수 김호중의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 현장. 문화방송 제공
예능에도 소개됐던 가수 김호중의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 현장. 문화방송 제공
하지만 이런 행사가 호응을 얻는 것은 단지 갈 곳, 볼 곳 줄어든 이들의 갈증을 채워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나름의 재미와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찾은 ‘고궁음악회’는 차 안에서 듣는 우리 음악이 과연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듣고 보는 영화와 달리 공연은 경적을 누르고 비상 깜빡이를 켜는 등 다양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 함께 즐기는 느낌이 강했다. 창문을 열 수도 있어 굳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지 않고도 그대로 전달돼 생생한 느낌을 준다. 한국문화재재단 이치헌 홍보팀장은 “‘고궁음악회’는 라디오를 켜지 않아도 즐길 수 있도록 스피커 사운드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고래야는 “데뷔 이후 이런 공연은 처음이다. 차 안에서 즐기는 방식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준일의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 현장.  소셜미디어 갈무리
양준일의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 현장. 소셜미디어 갈무리
‘드라이브 인~’ 방식이 코로나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국 자동차극장은 22곳(30개 스크린)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쪽은 “자동차극장 관객 수는 별도로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없다”고 밝혔지만, 최근 포털에 ‘갈 만한 자동차극장’을 묻는 글이 다수 눈에 띄는 등 관심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한번의 경험은 이후 사람들의 관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2일 공연의 끝자락, 고래야의 마지막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아쉬움을 경적으로 대신했다. ‘빠~아아앙.’ 신기하게 경적 소리가 “어~” 하는 탄성처럼 들린다. 이어 “빵빵~” “빵빵~”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소리를 맞춘다. “아 앵콜(앙코르)요? 네! 마지막으로 ‘물속으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다 통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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