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2020 한국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제공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19 사태로 영화산업의 최전선인 극장이 무너지고 있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극장-배급사-제작사 순으로 위기가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극장과 배급사가 입장권 수익을 나눠 갖는 비율인 부율을 조정하는 등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멀티플렉스 1위 업체인 씨지브이(CGV)는 지난달 26일 대학로·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광주금남로·연수역·등촌·대구아카데미·홍성 등 지점 7곳의 문을 닫았다. 씨지브이는 3년 안에 전국 직영점 119곳 가운데 30% 수준인 35~40곳을 줄이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객이 전년 대비 70%나 감소한 탓에 임원 임금 반납, 상영 회차 축소, 일부 상영관 임시 운영 중단, 인원 감축 등 비상수단을 줄줄이 꺼내고도 가중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대형 멀티플렉스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독립예술영화의 전초기지 구실을 해온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 시네마가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케이티앤지 배급을 통해 영화를 개봉했던 김종관, 신연식, 연상호, 이길보라 감독 등 18명은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시네마와 영화사업부를 지켜달라”고 호소하며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러자 케이티앤지 사회공헌실은 지난달 27일 “상상마당 시네마는 문을 닫지 않는다. 더 좋은 공간과 콘텐츠로 지원할 방안을 고민하며 재정비 차원에서 공간(운영)을 임시 중단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상상마당 시네마는 지난 2월 이후 두달만 빼고 내내 임시 휴관 상태다. 상상마당 영화사업부 관계자는 “최근 ‘연말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라’는 통지를 직원 8명 전원이 받았다. 재정비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들은 바 없다”고 전했다. 케이티앤지의 해명과 달리 사실상 영화사업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화제작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조성진 씨지브이 전략지원담당은 “극장에 안 오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불안감’이 절반,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가 절반”이라고 전했다. 관객이 크게 준 상황에서 대작들은 개봉을 미루고, 볼만한 영화가 없으니 관객은 더더욱 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부율을 조정해 영화를 개봉하는 배급사의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열린 ‘2020 한국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에서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지금은 관객 1명당 배급사·제작사에 돌아오는 객단가가 4천원이 채 안 된다. 손해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봉을 강요할 수 없다. 부율 조정으로 객단가를 높이면 배급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봉할 테고, 그러면 극장 관객도 느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영화관에만 한정된 영화발전기금 징수 대상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아이피티브이(IPTV) 등으로 넓히고, 늘어난 재원을 위기 극복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제작자는 “영화 소비 행태 변화에 맞게 새로운 플랫폼에도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하고, 이를 영화 제작뿐 아니라 극장 개봉 지원 등 여러 위기 타개책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