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스틸컷. 대우시네마 제공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22살 청년 전태일은 제 몸을 불사르며 이렇게 외쳤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였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995년 11월, 아름다운 청년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났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배우 홍경인이 연기한 청년은 또 한번 제 몸을 불살랐다. 영화는 비평적 찬사와 함께 그해 한국 영화 흥행 5위(서울 관객 23만여명)에 올랐다. 또 25년이 흘렀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이번에는 아름다운 청년이 애니메이션과 판소리 무대로 되살아난다.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포스터. 명필름 제공
명필름은 9일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의 온라인 제작보고회를 연다.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 <마당을 나온 암탉>(220만명)을 제작한 명필름과 스튜디오 루머, 전태일재단이 손잡고 내년 상반기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이은 명필름 대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태일 정신을 더욱 친숙하게 관객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며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전작을 뛰어넘는 완성도와 대중성을 두루 섭렵한 작품으로 완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출을 맡은 홍준표 감독은 “세대의 벽을 허물고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애니메이션의 힘을 잘 살리겠다”고 말했다. 목소리 연기는 장동윤(전태일), 염혜란(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진선규(전태일 아버지), 박철민(재단사 신씨), 권해효(한미사 사장) 등이 맡는다.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포스터. 명필름 제공
<태일이>의 완성과 개봉을 위한 ‘1970인 제작위원’ 참여운동도 시작한다. 1970명은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1970년을 상징한다. 먼저 사회 각계각층의 166명이 마중물 제안자로 나선다. <전태일 평전>을 썼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뜻을 잇는 김도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김민문정 여성민우회 대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 문정현 신부, 명진 스님, 가수 정태춘, 배우 문성근, 시인 송경동,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씨,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70인 제작위원은 소액 투자와 홍보를 돕는 방법 등으로 참여하며,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명단이 올라간다.
서울 동대문시장 인근 청계천 전태일다리에 설치된 전태일 열사 흉상. 창작판소리연구원 제공
창작판소리연구원은 오는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창작판소리 <전태일>을 초연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임진택 명창이 <전태일 평전>을 바탕으로 열사의 일기와 수기, 친구·동료들의 증언을 참고해 만든 작품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삶의 태도와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인식을 판소리의 풍자와 해학에 담아 전한다. 임진택 명창은 “짧았던 삶에도 여전히 깊고 굵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절규한 피의 목소리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라며 “약자에 대한 배려, 인간 존엄의 추구, 따뜻한 공동체를 희망했던 전태일의 정신으로 현재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바랐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찾아 창작판소리 <전태일> 한 대목을 창하는 임진택 명창. 창작판소리연구원 제공
전태일의 삶과 뜻을 판소리로 올리기까지 노동자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 9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 창작판소리연구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제작비 지원을 위해 후원 물품을 판매하는 등 힘을 보탰다. 청계피복, 원풍모방, 동일방직 등에서 일했던 노동자 소리꾼들은 목격자로 극에 참여해 전태일 시대를 증언한다. 본공연에 앞서 오는 13일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 전태일 묘역에서 전태일 50주기 추모 공연의 하나로 판소리 중 열사의 마지막 편지 부분인 상여소리 대목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