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개봉을 연기한 영화 <서복>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가가 또다시 얼어붙으면서 12월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던 영화들이 잇따라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영화계의 가장 큰 대목 중 하나인 ‘겨울 시즌’마저 코로나에 밀려 완전히 쪼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개봉 연기를 선언한 영화는 올겨울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던 공유, 박보검 주연의 <서복>이다. 투자배급사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는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12월로 예정했던 <서복>의 개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인 <서복>은 복제인간을 다룬 에스에프(SF) 영화로, 순제작비 164억원을 들인 대작이다. 국외 선판매 등 부가판권 수익을 빼면 326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1년 중 가장 큰 시장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개봉 적기라고 판단했으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 개봉을 미루기로 했다. 추후 개봉 일정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개봉을 연기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도 8일 겨울 텐트폴(1년 라인업의 중심이 되는 대작) 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의 개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12월 말 개봉 예정이었던 <인생은 아름다워>는 염정아·류승룡 주연의 뮤지컬 영화로, 순제작비 89억원을 들여 관객 수 200만명대 후반을 넘겨야 손해 보지 않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8일부터 3주간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이 결정되면서 개봉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되면 영화관 자리 띄어 앉기는 물론 밤 9시 이후에는 아예 영화관 문을 닫아야 한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대작 영화뿐 아니라 독립영화와 외화도 개봉을 연기하고 있다. 10일 개봉 예정이던 독립 음악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는 개봉일을 23일로 연기했다. 극장 관객이 줄어든 상황을 고려하는 한편 대작들이 사라진 크리스마스 극장가를 겨냥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2018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등 4개 부문 수상작인 독일 영화 <걸>과 로버트 드니로, 우마 서먼 주연의 코미디 영화 <워 위드 그랜파>도 예정된 언론 시사회를 취소하고 개봉을 연기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개봉을 연기한 영화 <워 위드 그랜파> 스틸컷. 키다리이엔티 제공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도 9일로 예정했던 언론 시사회를 연기했다. <소울> 관계자는 “25일로 예정된 개봉일은 아직 변동이 없는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워너브러더스의 블록버스터 <원더우먼 1984>는 23일로 예정된 개봉일을 아직까진 고수하고 있다.
영화 시상식도 코로나19 장벽을 비켜 가지 못했다. 11일 열릴 예정이던 제4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도 내년 초로 밀렸다. 청룡영화상 사무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추가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영화인들의 안전을 위해 시상식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매트릭스4> <컨저링3> <수어사이드 스쿼드 2> <듄> 등 내년 라인업 17편 모두를 극장 개봉과 동시에 계열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오티티) ‘에이치비오(HBO) 맥스’로 공개하겠다고 지난 3일(현지시각) 발표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워너브러더스는 “내년 미국에만 한정된 궁여지책”이라고 강조하지만, 영화 시장의 중심축이 극장에서 오티티로 완전히 넘어가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국내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내년 이들 영화를 극장 개봉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극장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흐름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