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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2020 문화계 결산] 오스카의 선 넘은 ‘기생충’ 한줄기 빛으로

등록 2020-12-28 04:59수정 2021-01-04 16:04

[봉준호 감독 ‘기생충’ 오스카 4관왕]

“사실 노래라는 건 쓸모없는 것에 가깝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쓸모있는 것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여전히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곳엔 많다”(김제형 ‘노래의 의미’ 중에서)

‘노래’를 ‘문화’로 바꿔도 좋겠다. 코로나19 사태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문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문화 덕분에 우린 버티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새삼 절감하게 한 2020년 문화계의 명암을 결산했다.

지난 2월9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지난 2월9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의 선을 가뿐히 넘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인 지난해 한국 영화 최초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던 <기생충>은 올해 세계 상업영화를 대표하는 시상식인 오스카까지 석권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지난 2월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무려 4개 부문 트로피를 싹쓸이한 것이다.

이는 한국 영화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쓴 성과다.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한 사람이 한 작품으로 4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도 최초다. 월트 디즈니가 1954년 4개의 트로피를 받은 적이 있지만, 장편 애니, 단편 다큐, 장편 다큐, 단편 영화 등 각기 다른 작품을 통해서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1956년 <마티> 이후 두번째다.

미국이나 유럽 영화가 아닌, 세계 영화계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 영화가 칸과 오스카를 석권한 걸 두고 세계 영화 흐름의 물꼬를 새로 텄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자국 중심이고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가 <기생충> 수상을 계기로 지역 영화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미래로 나아갔다는 해석도 나왔다. 소수 언어 영화도 작품만 좋다면 아카데미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도 <기생충>이 일궈낸 성과다. 앞으로 세계 영화사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도 모를 일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BTS엔 최고의 해…빌보드 점령하고 그래미 후보 올라

2020년은 사실상 방탄소년단(BTS)의 해였다.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핫100)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석 달 동안 무려 세 곡으로 이 차트 정상을 밟았다. 팝스타 비지스가 두 달 3주에 걸쳐 세 곡으로 ‘핫100’ 1위를 한 이래 42년 만의 최단 기록이다. 방탄소년단이 ‘핫100’ 1위를 한 곡은 지난 8월 발표한 영어 노래 ‘다이너마이트’와 피처링으로 참여한 제이슨 데룰로의 ‘새비지 러브’, 그리고 지난달 발표한 미니 앨범 <비>(BE)의 타이틀곡이자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즈 온’이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세계인에게 활력과 위로를 주는 노래로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 ‘다이너마이트’와 ‘라이프 고즈 온’은 모두 코로나19 와중에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이너마이트’가 밝고 경쾌한 톤으로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라이프 고즈 온’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며 듣는 이를 보듬는다.

이들은 한국 대중가수로선 처음으로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도 올랐다. 다음달 31일(현지시각) 열리는 시상식에서 이들은 ‘다이너마이트’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수상을 노린다. 그래미 어워즈가 변화에 둔감하고 나이 든 백인 남성 중심이어서 보수적이란 지적이 일지만, 많은 전문가와 주요 외신은 방탄소년단의 수상을 점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올 한 해 성과는 병역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국회는 지난 1일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방탄소년단 병역 연기법’(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처리했다. 개정된 법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한민국의 위상과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해 추천한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의 병역을 만 30살까지 늦출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lt;내일은 미스터트롯&gt; 참가자들이 신청곡을 불러주는 예능 프로그램 &lt;사랑의 콜센터&gt;. 티브이조선 제공
<내일은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이 신청곡을 불러주는 예능 프로그램 <사랑의 콜센터>. 티브이조선 제공

경연 프로서 시작된 ‘트로트 열풍’…예능·광고 휩쓸어

올해 가요계에서 가장 폭발적인 성장을 보인 장르는 트로트다. 한물간 노래로 평가받던 트로트는 티브이 경연 프로그램의 흥행으로 단숨에 주류로 떠올랐다. 특히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등 <내일은 미스터트롯>(티브이조선) 출신 가수들은 방송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시장을 접수했다.

트로트의 인기는 포털사이트 인물검색 결과로도 엿볼 수 있다. 네이버가 지난 14일 공개한 ‘2020년 네이버 검색어 결산’을 보면, 올해 포털 이용자가 가장 많이 찾아본 인물 1위는 <미스터트롯> 우승자인 임영웅이었다. 올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핫100) 1위라는 대기록을 쓴 방탄소년단(BTS)을 제친 기록이다. 방탄소년단은 2위에 올랐다.

트로트 열풍은 예능 프로그램의 변화를 불러왔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가릴 것 없이 이른바 ‘트로트 예능’ 제작에 뛰어들면서 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그 결과 프로그램 베끼기, 동시간 편성, 출연진 겹치기 등 잡음도 일었다.

정상급 가수의 활약 역시 트로트 열풍을 부채질한 요소다. 그 중심에는 나훈아가 있다. 그는 지난 9월30일 <한국방송>(KBS)이 추석특집으로 마련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15년 만에 티브이에 출연해,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시청자를 위로하며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줬다. 특히 그가 공연에서 선보인 신곡 ‘테스형!’이 화제를 모으면서 ‘테스형 열풍’이 일기도 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경매 전 공개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들. 앞에 놓인 불상이 7세기 전기의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이며 뒤쪽이 7세기 중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이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경매 전 공개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들. 앞에 놓인 불상이 7세기 전기의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이며 뒤쪽이 7세기 중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이다.

소장 명품 경매…‘간송재단’의 추락

“15억…15억…없습니까?…(쾅!) 유찰입니다!”

경매사가 짧게 외친 한마디는 선고처럼 들렸다. 지난 5월27일 열린 케이옥션 미술품 정기경매는 ‘국민 문화재’로 추앙받아온 간송 컬렉션의 추락을 드러낸 현장이 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국가지정 보물인 삼국시대 금동보살입상과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을 내놓았지만, 단 한 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 유출 위기에 놓인 전통서화와 불교유산 등을 거금을 들여 지켜냈다. 그의 ‘문화 독립’ 유지를 잇기 위해 후손이 2013년 세운 재단이 설립 7년 만에 소장 명품 경매에 나서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세금 납부 등으로 인한 재정난을 내세우며 불상 한 점당 기준가 15억원을 붙여 출품을 강행했으나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기지 못했다.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간송미술관)을 지어 ‘문화유산의 수호성인’이 된 간송의 업적과 간송미술관 연구자들이 40여년간 공들여 쌓은 컬렉션의 권위를 한꺼번에 허물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재단은 7월 국립박물관에 경매 출품가보다 낮은 값에 두 불상을 팔았고, 간송가의 명품 거래는 상처와 구설만을 남겼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 &lt;한겨레&gt; 자료사진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 <한겨레> 자료사진

‘코로나 확산 진원’ 눈총 받은 종교계

올 한 해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가장 눈총을 받은 곳은 종교계였다.

코로나 발생 초기인 지난 2월엔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확진자가 쏟아졌다. 개신교계는 새 신자로 가장해 기존 교회에 잠입해 신자를 꾀어내는 ‘추수꾼 전략’을 쓰는 신천지를 가장 경계하며 이단시해온 터였다. 이에 “신천지는 해산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00만명을 넘는 등 신천지는 단숨에 ‘국민 밉상’으로 떠올랐고, 이만희 총회장은 공권력을 무시하고 방역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뒤를 이어 파동의 중심에 선 주인공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전광훈(64) 목사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극우파인 전 목사는 정부의 방역 지침을 무시하고 ‘광화문 8·15 광복절 집회’를 개최해 코로나 확산에 불을 질렀고, 그 자신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로 꼽히면서 각종 모임이 제한되자 종교계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교회가 방역에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교단에 소속되지 않거나 개별 특성을 내세운 일부 교회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잇따르면서 국민적 비판이 거셌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신인 작가 이신화가 극본을 쓴 &lt;스토브리그&gt;. &lt;한겨레&gt; 자료사진
신인 작가 이신화가 극본을 쓴 <스토브리그>. <한겨레> 자료사진

‘스토브리그’·‘인간수업’…방송 신인 작가 빛났다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드는 프로덕션이 많아지면서 신인 작가가 활약할 기회도 늘었다. 김은숙 작가의 <더 킹: 영원의 군주>가 혹평을 받고, 황정민을 내세운 <허쉬>가 시청률 2%대에 머물면서 유명 작가·배우가 시청률을 보증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2020년엔 어림잡아 드라마의 3분의 1가량이 신인 작가의 작품이었다. <스토브리그> 이신화 작가, <하이에나> 김루리 작가, <아무도 모른다> 김은향 작가, <블랙독> 박주연 작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류보리 작가 등이 활약했다.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참신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운영팀을, <머니게임>(이영미 작가)은 금융비리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을 소재로 했다. 오티티까지 눈을 넓히면, 10대들의 성매매를 앞세워 논란과 함께 화제를 불러온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도 주목받았다. 신인들이 활약하면서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졌다고 방송가에서는 말한다. 한 드라마 피디는 “신인 작가들은 실패 가능성 때문에 기성 작가는 잘 시도하지 않는 이야기도 겁 없이 달려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신한 소재에 견줘 내공이 부족하고, 후속작이 오래 걸리는 등 활약이 꾸준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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