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⑪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
미친 듯 뜨거운 열정을 내뿜던 공간
태릉선수촌이 배경인 첫 국내 드라마
유도·양궁·체조·수영 네 선수 주인공
⑪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
미친 듯 뜨거운 열정을 내뿜던 공간
태릉선수촌이 배경인 첫 국내 드라마
유도·양궁·체조·수영 네 선수 주인공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은 뜨거운 열정을 내뿜으며 청춘을 살았던 국가대표 선수 홍민기(이민기), 방수아(최정윤), 정마루(김별), 이동경(이선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윤정 피디는 “우리 나름의 태릉선수촌은 다 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를 읽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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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 갈무리
“누구나 ‘태릉선수촌’ 같은 때 있어
그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 읽을 것” 문만 열어도 열기 내뿜는 선수촌 그 감흥을 그대로 옮긴 것이 2005년 방영한 8부작(1회 2개씩) 드라마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문화방송)이다. 2008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열정과 사랑을 다뤘다. 태릉선수촌이 배경인 드라마도 처음이었고, 뚜렷한 기승전결을 벗어나 일상의 어느 시점에서 끝나는 구성도 당시에는 참신했다. 이윤정 피디는 “그때 좋아했던 미국 드라마 <케빈은 12살>처럼 주인공이 내레이션으로 끌고 가는 형식을 취했다”며 “<태릉선수촌>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들었던, (내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태릉선수촌>은 유도·양궁·체조·수영 선수 4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제작진은 한달간 최대한 많은 선수를 만나 취재한 이후에 주인공과 종목을 정했다. 유도와 양궁은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을 땄던 효자 종목이다. 이 피디는 “유도는 역동적이면서도 재미와 사연 등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특히 양궁은 국내 선수끼리 치르는 국가대표 선발전 경쟁이 올림픽 본선만큼 치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체조와 수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면 메달권에 들기 힘든 격차에서 오는 혼란이 흥미로웠어요.” 수영 이동경(이선균)과 유도 홍민기(이민기)가 만나는 고깃집과 양궁 방수아(최정윤)가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찾은 한강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이야기는 대부분 선수촌 안에서 벌어진다. 연인 이동경과 방수아는 트랙을 돌면서 데이트를 하고, 수영장에서 영화도 본다. 홍민기는 좋아하는 방수아의 기숙사 창문을 두드려 그를 불러내고, 수영팀과 유도팀이 축구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선수들의 훈련 모습, 기숙사 생활 등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현실의 공간을 드라마로 엿보는 재미가 컸다. 지금 다시 보면 4인방을 통해 느껴지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현실과 고민이 청춘의 낭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동경은 우리나라 1위이지만 점점 기록이 떨어져 은퇴를 고민한다. 체육대학 교수, 국가대표·실업팀 지도자 자리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선수들의 은퇴 이후를 이동경이 비춘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도 금방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게 밀린 뒤 슬럼프를 겪고(방수아), 올림픽만 바라보며 달려왔지만 부상으로 하루아침에 운동을 관두게 되기도 한다.(정마루) 홍민기는? 그야말로 ‘신예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이다. 홍민기는 여느 유도 선수들처럼 2진(올림픽 출전 선수 파트너)으로 선수촌에 들어와 갖가지 징크스를 깨고 국가대표가 된 뒤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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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되지 않은 공간 엿보는 재미도
“실제 연애는 선수촌 밖에서, 하하” 그래도 낭만 있던 그 시절 청춘들 <태릉선수촌>이 최근 만들어졌다면 요즘 드라마 흐름상 분위기는 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요즘 청춘의 이야기는 연애보단 취업, 미래에 더 관심이 있으니까. 선수들의 애환에 더 비중을 두고 힘든 현실을 더 깊게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2005년이 담은 태릉선수촌의 청춘은 그래도 낭만이 느껴지는데, 2021년의 청춘은 막막함만이 그려졌을 것만 같다. 2005년 태릉선수촌에서 청춘을 보냈던 선수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판승의 사나이’로 유명한 이원희 용인대 교수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다른 선수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는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훈련만 했다”고 강조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감동의 주인공이었던 송대남(당시 유도 90㎏급 금메달) 현 남자대표팀 코치도 “훈련에 집중하느라 선수촌 안에서 연애할 틈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제작진이 꼼꼼한 취재를 통해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그럼 연애는 언제 하고 결혼은 어떻게 했나. 이구동성 “연애는 태릉선수촌 밖에서!” 아하! 어쨌든 2005년 <태릉선수촌>이 청춘의 사랑에 비중을 뒀다 하더라도 대사나 에피소드 등에서 현실을 꽤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유도 선수들이 산 정상에 오르다 구토하는 장면이나, 홍민기가 이종격투기 선수 제안을 받는 장면 등이 그렇다. 실제로 여러 종목 중에서도 유도 훈련은 강도 높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은퇴한 김재범 선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1등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 달리기를 할 때는 구토가 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원희 교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이종격투기 선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여러 개 따도 연금이 한정되어 있는 등 비인기 종목은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없는 현실 등도 드라마는 슬쩍 보여준다. 이윤정 피디는 “뜨거운 실재감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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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문화부 기자. 언제든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 세대 불문 되감기하면 좋을 대중문화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연출, 연기, 이야기 기본 3박자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옛 작품들이 콘텐츠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금 시선에서 새 해석이 등장할지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도 담아보겠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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