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요? 당연히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야죠!”
송재정 드라마 작가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는 이동건 웹툰 작가의 ‘불안 세포’를 단숨에 진정시켰다. 이 작가가 집필한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2015년부터 5년 동안 수요 웹툰 1위를 차지할 만큼 사랑받았다. 웹툰의 드라마화는 오래됐지만, 이 작가는 “<유미의 세포들>은 세포 구현이 쉽지 않아 실사 영상화는 어렵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유미의 세포들>은 김유미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는 세포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세포들이 지난 17일부터 금·토요일 밤마다 <티브이엔>(티브이)과 티빙(오티티) 속 화면에서 3D로 살아 움직이며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유미가 일할 때면 세포들은 모여 맷돌을 굴리고, 유미가 남자친구 집에 가면 ‘응큼 세포’가 야릇한 표정으로 실눈을 뜬다. ‘출출 세포’는 먹을 생각에 엉덩이를 실룩~실룩~댄다. 이 작가는 “막연하게 실사와 3D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세포의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드라마에서 구현된 걸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연재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들이 움직이는 기분이어서 (첫 방송을) 푹 빠져서 봤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세포가 나오는 부분만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대사와 입 모양이 잘 맞고, 웹툰 속 세포의 개성을 잘 살린 애니메이션이 실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동건 작가는 “제작 중간에 감독님이 애니메이션 스틸컷 3장을 보내주셨다. 각 캐릭터의 성격이 반영된 동작과 표정, 뒤로 펼쳐지는 디테일한 세포 마을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웹툰에는 80~90여가지 세포가 등장하는데, 드라마에는 약 38만개가 산다. 짜증과 화를 담당하는 ‘히스테리우스’, 과거를 들추기 위한 ‘상처기록 세포’, ‘본심 세포’, ‘세수 세포’ 등 신통한 세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는 세포가 없었다. “유미와 남 과장이 주인공인 스파이 만화를 준비했었어요. 아내한테 보여줬더니 ‘재미없다’더라고요. 고민하는데, 아내가 ‘안 돌아가는 맷돌 그만 좀 굴려’라더군요. 그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 준비한 것이 <유미의 세포들>이었어요.”
<유미의 세포들>은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점도 인기 비결이다. 이 작가한테는 늘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11년 데뷔작인 네이버 웹툰 <달콤한 인생>도 20·30대 직장인 여성들의 일상을 그렸다. 작가는 단순히 설레는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 나오는 소소한 행동을 잡아낸다. 예를 들어 상대가 보낸 메시지 하나하나에 온갖 의미를 부여한다든지, 데이트를 앞두고 새 옷을 사서 옷가게에서 바로 입고 간다든지 하는 별것 아니지만 마음을 듬뿍 담은 행동들. 그는 “영화는 물론, 책이나 노래 가사에서 많은 힌트를 얻는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귀여운 세포에 눈이 가지만, 보다 보면 유미의 성장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늘 상대가 1순위였던 유미는 여러번의 연애 끝에 점점 내가 1순위가 되고, 일이 1순위가 되며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2015년보다 감수성이 더 예민해진 2021년에 다시 만나는 <유미의 세포들>은 그래서 더 많은 시청자와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더해진다.
“여성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고민이고 공감이라 생각해요. 나는 대체 뭐 하려고 태어난 것일까. 젊은 시절의 우울한 고민과 연애를 통해 스스로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은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메시지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만화적인 표현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작품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공감대 형성”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웹툰과 비슷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이 작가는 드라마 작업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웹툰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줄 기회가 되지 않을까. <유미의 세포들>은 ‘본의 아니게’ 연재가 장기화하면서 불필요한 장면도 등장했다. 특히 후반부에 세포들의 활약이 줄어 팬들을 아쉽게 했다. 작가도 “세포들이 많아서 연재할 때 각각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드라마에서는 세포 마을과 세포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잘 보이기를” 바랐다.
웹툰과 배우의 닮기는 100%에 가깝다. 이 작가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의 차분함과 <치즈인더트랩>에서의 발랄함은 김유미 캐릭터가 가진 특징이라 (김고은씨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두 장면이 먼저 떠오르며 유미와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웅과 안보현은 말할 것도 없다. 웹툰 팬들 사이에서는 이후 남자 캐릭터를 맡을 배우에 대한 의견도 뜨겁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따뜻하게 온도가 오르고 있다. 시청률 2%(닐슨코리아 집계)대로 웹툰 인기에 견주면 높지 않다. 하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혼자가 익숙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우리를 어루만진다. 그게 꼭 애인이 아니면 어떤가. 이 작가는 “나를 움직이고 있는 세포들이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나 자신이 특별하고 다르게 느껴지지 않느냐”며 “특별히 활동을 많이 하는 프라임 세포가 무엇일지, 어떤 세포가 나에겐 없는지, 이 작품이 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1년 데뷔한 이 작가는 세번째 작품인 <유미의 세포들 >로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그림체가 <유미의 세포들 >을 연재하면서 조금 더 성숙해진 느낌으로 달라지기도 했다. 지난해 연재를 마무리했지만 그는 “작품을 끝내면 전작에 대한 미련도 함께 사라지는 편이라서 새 작품을 준비할 때는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더 많이 작용한다”며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후의 유미처럼 말했다.
직장인 유미가 꿈을 이루듯, 이 작가의 세포들도 끊임없이 맷돌을 돌리고 있다. 그는 드라마화된 <유미의 세포들>을 감상하는 한편으로, 새 웹툰 <조조 코믹스>로 창작 작업에 빠져 있다. “변덕이 심한 편이라 계획했던 걸 한순간에 뒤엎기도 하고, 애써 만든 원고를 다 뜯어고치기도 해요. 좋은 점이라면 새로운 콘텐츠를 자꾸 찾아보게 된다는 것.” 지금 그의 프라임 세포는 ‘변덕 세포’인 것일까? 그는 오늘도 작업실에서 재미있는 웹툰을 위해 ‘변덕’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응원 세포’도 열심히 활동 중이니,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도 응원해주세요!”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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