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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시대의 명대사로 남은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등록 2021-09-12 09:22수정 2021-09-17 12:51

[한겨레S]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다모

여형사 소재, 장대한 무협신 더해
현대물 같은 시대극에 파격 결말
문화방송(MBC) 제공
문화방송(MBC) 제공
“꼭 그렇게 모두 죽여야만 했나요!” 지난 6일 늦은 오후 “이제야 틈이 난다”며 연락을 해온 이재규 감독한테 대뜸 물었다. 이제 와서, 18년이나 지난 드라마의 결말을 운운하다니. 그만큼 2003년 방영한 <다모>(문화방송)의 아픈 결말은 다시 봐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방영 당시에도 결말이 미리 알려지면서 ‘주인공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시청자 요청이 빗발쳤었어요. 비극적인 이야기였죠.” 연출 데뷔작 <다모>로 단번에 주목받은 이재규 피디가 말했다.

‘퓨전사극’ 새바람 부른 명작

파격적인 결말만큼 <다모>는 방영 이후 드라마사에 남을 여러 새 길을 닦았다. <다모>는 다모 채옥(하지원)과 포도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 혁명을 꿈꾸는 화적 두목 장성백(김민준)의 이야기로, 퓨전 사극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정형수 작가는 배경과 의상만 시대극이고 나머지는 현대물로 대체하더라도 무리 없는 극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여자 형사라는 채옥의 직업부터 그랬다. 남자 고수에게 뒤지지 않는 무공을 갖춘 채옥은 사극에 등장한 가장 역동적인 여성이었다. 다모는 관아에 소속되어 차를 끓이는 일을 하는 관비인데, 포도청 다모는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수사를 맡거나 수사 보조요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회부터 대나무밭을 가로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등장하고, 2회 황보윤과 채옥의 빗속 대결까지 무협 신이 장대하다. 이재규 감독은 “당시 드라마에서 이렇게 많은 와이어 액션을 소화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임꺽정> <바람의 파이터> 등을 그린 만화가 방학기의 무협만화가 원작이다.

<다모>는 보기 드문 사전 제작 드라마였다. 2002년 6월부터 대본 작업을 시작해 2003년 1월부터 7~8개월간 촬영했다. 트럭 25대와 제작진 100명 이상을 이끌고 전국 곳곳 두메를 찾아다니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문화방송>은 원작 판권을 사고 약 6년이 지난 뒤에야 드라마로 만들었다. 여러 피디가 시도했는데 드라마화하기에 난해한 점이 많아 중도 포기한 것을 패기 넘치는 신인에게 맡긴 것이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다모> 이후 왕, 사대부 양반 중심이었던 사극 주인공들이 바뀌었다. 채옥은 천민인 관비이고, 황보윤은 서자 출신의 종사관, 장성백은 역모를 꿈꾸는 화적패다.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시도였다. 다시 보면 신분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점이 뭉클하다. 역적으로 몰려 양반에서 관비가 된 채옥과 황보윤의 사랑만이 아니다. 좌포청 서원 안병택(신승환)의 채옥을 향한 마음은 심금을 울린다. “평생 웃고 살게 해주겠다. 혼인해서 소박하게 살자”며 따라다니는 모습이 지금 보면 그리 예쁠 수가 없다. 채옥을 향한 황보윤의 마음을 알면서도 투기하지 않고 채옥을 아껴줬던 난희(배영선)도 이전 사극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다모>는 무협극을 보는 것처럼 매회 화려한 액션이 등장했지만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더 강조된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하지원도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본을 읽으면서 “무협극이라기보다 순정만화를 읽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조금씩 감정이 폭발하는 여느 드라마와 달리 <다모>는 1회부터 황보윤과 채옥의 절제된 사랑이 화면을 뚫고 나왔기 때문이다. <다모> 하면 떠오르는 상징 같은 표현,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1회에 등장한다는 사실. 원래 이 장면은 개울가 낮신이었다. 이재규 감독은 “초고에는 없었는데, 작가와 카페에서 8시간 넘게 고민하다가 나온 대사”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사가 이렇게까지 화제를 모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서 촬영한, 매화꽃이 떨어지는 배경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은 제작진이 매화나무에 올라가 일일이 종잇조각을 뿌려 매화꽃이 떨어지는 효과를 낸 것이다.

문화방송(MBC) 제공
문화방송(MBC) 제공
방송 2주째 15만 시청소감 쏟아져
‘다모 폐인’ 유행시킨 역대급 작품

“20년 지나도 촌스러움 없는 드라마”

<다모>는 명대사 제조기였다. “나는 이미 너를 베었다”, “가거라. 그러나 반드시 살아 돌아오너라” 등 매회 화제를 모으는 대사들이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다모>의 대사를 ‘~하오’체라 부르며 이를 활용해 글을 쓰기도 했다. <네 멋대로 해라>와 함께 드라마 팬덤을 형성했다. 프로그램 누리집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 2주 만에 15만건이 넘는 시청 소감이 쏟아질 정도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될 정도로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뜻의 ‘다모 폐인’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이 드라마로 이서진은 강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스타가 됐다. 당시 황보윤과 채옥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팬과, 장성백과 채옥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팬으로 갈렸다는데, 다시 보면 장성백 역할이 굉장히 멋있다. 역모를 꾀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그 역시 결국 모두가 평등한 새 세상을 꿈꿨던 인물일 뿐이다. 당시 사극에서는 이례적으로 장발의 웨이브 스타일인 장성백은 가장 외로운 무사이기도 했다. 김민준은 이 드라마로 데뷔했다.

1회를 보면, 다친 동료를 대신해 격구를 한 채옥 때문에 좌포청이 곤경에 처한다. 황보윤은 그런 부하들을 보며 종사관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다. 작은 과실에도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는 현실에서, 18년 전 <다모> 속 이 장면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8부로 기획된 <다모>는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12부가 됐고, 편집을 하면서 14부가 됐다. “길이란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렸을 뿐이오. …언젠가는 반드시 새로운 길을, 새 세상을 열 것이오.” 마지막,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달려온 장성백의 이 대사는 <다모>가 드라마사에 남긴 업적이자,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재규 피디는 2003년 종영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20년이 지나 우리 아이들이 봐도 촌스럽지 않은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이뤄졌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문화부 기자. 언제든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 세대 불문 되감기하면 좋을 대중문화 작품을 소개한다. 연출, 연기, 이야기 기본 3박자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옛 작품들이 콘텐츠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금 시선에서 새 해석이 등장할지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도 담아보겠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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