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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박학기, BTS 노래로 통하듯 ‘아침이슬’이 그랬다

등록 2021-06-03 04:59수정 2021-06-03 18:25

‘아침이슬 50돌’ 기념사업 총감독 박학기 인터뷰
‘아침이슬 50년’기념사업 총감독을 맡은 가수 박학기. 에이치케이 엔터프로(HK Enterpro) 제공
‘아침이슬 50년’기념사업 총감독을 맡은 가수 박학기. 에이치케이 엔터프로(HK Enterpro) 제공

시작은 2019년 4월 어느 날 저녁, 가수 박학기가 선배 한영애로부터 받은 전화 한통이었다. “학기씨, 잘 지내? 할 얘기가 있어. 곧 있으면 ‘아침이슬’ 50주년인 거 알지? 우리 세대는 김민기에게 빚을 졌잖니? 이젠 갚아야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잖아. 맡아서 끝까지 밀고 나가 봐.”

전화를 끊은 박학기는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김민기’는 그저 가요계의 선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혹했던 한 시대, 1970~80년대를 관통했던 청년 문화의 원형이자 걸출한 한국 예술가들이 잉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산파였다. 황정민, 조승우, 방은진, 김광석 등 그의 극단 학전을 거쳐간 예술가가 한둘이 아니다. 엄혹한 한국사의 고비마다 그의 노래는 노동자, 농민, 학생 할 것 없이 시대의 큰 위로였다.

그해 8월 서울 인사동의 허름한 식당에 박학기,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한영애가 모였다. 상에 막걸리를 놓고 ‘아침이슬 50돌’ 기념사업 얘기를 했다.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민기 빚 갚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일단 당사자인 민기 형 생각을 들어야 했죠.”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난 박학기가 말했다. 그는 ‘아침이슬 50돌’ 기념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다.

첫번째 난관은 김민기였다. 나서기 싫어하는 그가 반길 리 없었다. 요란한 행사도 달가워하지 않는 그다. 그를 만나 얘기를 꺼내자 “쓸데없는 일 하지 마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뒤 강헌 대표와 박학기가 막걸리 10병을 사 들고 김민기가 운영하는 대학로 학전 소극장으로 찾아가 ‘취기 반 애원 반’으로 설득해 ‘반승낙’을 얻어냈다.

박학기는 김민기와 어떤 인연으로 총지휘를 맡게 됐을까? “제가 1989년 데뷔한 뒤 학전에서 콘서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 (김)광석이와 함께 공연하면서 민기 형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학전 식구’가 됐죠.”

두번째 난관은 코로나였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나온 게 기념 공연이었다. 애초 지난해 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공연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강헌 대표가 헌정 음반을 내자고 제안했다. 경기문화재단이 제작을 맡아 재정 문제까지 해결되면서 헌정 음반은 급물살을 탔다.

김민기. 학전 제공
김민기. 학전 제공

참여할 가수를 모은 결과 17개팀이 김민기 노래를 부르게 됐다. 배우 황정민부터 아이돌 레드벨벳 웬디까지, 앨범에 참여한 가수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배우 황정민은 가수 권진원과 함께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이 세상 어딘가에’를 불렀다. “사실 민기 형은 뛰어난 뮤지션이기도 했지만,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 같은 뮤지컬을 만든 걸출한 제작자이기도 했죠.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인 황정민·설경구·김윤석·장현성·조승우도 다 학전 출신이에요. 이들을 대표해 황정민이 노래를 부른 거죠.”

웬디가 부른 노래는 김민기의 ‘그 사이’다. “민기 형 노래는 ‘멜로디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 많은데, 그 노래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역사 이야기로 의미 전환되기도 했어요. 민기 형이 정말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드는 위대한 뮤지션이란 걸 알리고 싶어 하던 중 아이돌이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예기획사 에스엠(SM)에 요청했어요. 웬디가 세대를 넘어 서정적인 ‘그 사이’를 잘 불렀어요.”

박학기도 ‘친구’를 부른다. “민기 형 목소리는 어마어마한 심연에서 나오는데, 나는 그 반대예요. 처음엔 나한테 맞는 노래로 ‘아름다운 사람’이나 ‘가을편지’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회의를 거치면서 ‘친구’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어요. 참여 가수 모두 민기 형의 노래에 담긴 한 시대의 아픔과 그 의미, 감성을 자신만의 색깔로 담아내기 위해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어요. 2021년 감성으로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봐줬으면 좋겠어요.”

1971년 발매된 김민기 1집 표지. 매니아디비 제공
1971년 발매된 김민기 1집 표지. 매니아디비 제공

그는 기념사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려는 걸까? “김민기를 알고, ‘아침이슬’을 아는 사람만을 위한 앨범이나 공연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50년 전 ‘아침이슬’이 힘든 이에게 위로를 줬듯이,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이에게 위로를 주는 노래,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세대를 뛰어넘는 앨범과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게 꿈입니다.” 그에게 ‘왜 지금 이때 김민기와 아침이슬인가’라고 물었다. “방탄소년단 노래는 다 같이 좋아하고, 음악으로 하나 되게 만들죠. 50년 전 ‘아침이슬’이 그랬어요. 하지만 그때 ‘아침이슬’은 노래였지만, 이젠 하나의 문화가 됐어요. 그런 문화는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해요.” 박학기는 “이번에 새로 나오는 ‘아침이슬’은 김형석의 편곡으로 기념사업에 참여한 뮤지션 모두가 함께 부르고, 뮤직비디오로도 공개된다. 조동익, 윤일상 등 쟁쟁한 분들도 참여해 수고해주셨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옆 대기실에 있던 가수 이은미가 박학기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가 나갔다. 선배 가수 김민기를 위해 무거운 일을 맡은 그에게 후배 가수 이은미가 전하는 소박한 격려였다. 이은미는 이번 앨범에서 김민기와 한영애가 함께 불렀던 ‘기지촌’을 부른다. 박학기, 한영애, 장필순, 이은미 등 가수들이 이날 <한국방송>(KBS)에서 녹화한 <열린음악회> 김민기 특집편은 오는 20일 방송된다. 오는 9월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엔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아침이슬 50주년 기념 헌정 콘서트-김민기 트리뷰트’ 공연도 열린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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