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드라마가 끝나고 이렇게까지 찝찝했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 3일 <스물다섯 스물하나>(티브이엔) 마지막 장면과 동시에 온라인 채팅방에는 수많은 질문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래서 남편은 누구냐!” 16회 내내 장면마다 “왜?”를 담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신나게 달려왔던 앞선 내용으로는 짐작할 수 없던 결말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를 앞두고 14회부터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심지어 앵커가 된 백이진이 금메달을 딴 나희도와 영상 인터뷰를 하면서 눈썹을 치켜든 걸 두고 이런 추측도 나돌았다. “이진이 희도한테 ‘결혼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한 건 남편이 아내한테 장난친 거야!”
아이엠에프 시대, 꿈은 빼앗겼지만 사랑과 우정이 넘쳤던 청춘들은 2022년을 사는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지만, 16회에서 그 행복은 한 번에 빼앗겼다. 드라마는 가상의 세계, 작가의 권한이다.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뜨겁게 사랑했기에, 결말을 두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그래서 ‘평가단’이 <수요드라마톡 볼까말까> 처음으로 엔딩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회 하나로 백이진도 드라마도 작가도 이미지가 달라져 버렸으니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와 남지은 방송연예담당 기자, 그리고 이번에는 괜히 백이진에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왜?) 유선희 경제부 기자가 함께했다.
유선희 = 내가 백이진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완전 뒤통수 맞은 느낌이야. 911 취재까지야 그럴 수 있다 쳐. 회사에서 가라면 가는 거니까. 근데 어떻게 곧바로 뉴욕 특파원을 신청할 수가 있어. 나희도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전의 백이진이라면 상의를 먼저 했을 거야. “될 줄 몰랐다”라고? 그리고 어떻게 희도가 그 사실을 엄마한테서 먼저 듣게 해? 이건 그동안 나오던 백이진의 모습이 아니야! 마지막 회에서 백이진 캐릭터가 완전히 붕괴해 버렸어. 이게 말이 돼?
남지은 = 백이진 캐릭터 붕괴. 이게 이 드라마가 무너진 결정적인 문제 같아. 14회까지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만든 백이진의 모습이 있는데, 그걸 완벽하게 깨버렸어. 백이진은 키다리 아저씨처럼 철없던 희도를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고, 자신도 희도한테서 힘을 받았어. 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 사이가 너무 좋았어. 둘이 있을 때는 무조건 행복해지는 사이.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백이진은 이기적인 남자가 돼버렸어. 자기가 힘들 땐 “넌 나를 일어서게 한다”는 등 온갖 말로 희도를 헷갈리게 하더니, 떠나고 싶으니 가버리잖아. 자기가 기대고 싶을 땐 기대고, 떠나고 싶을 땐 떠나고.
유선희 = 맞아. 전형적인 나쁜 남자야. 희도를 외롭게 해놓고는 희도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처럼 됐어. 아 화나. 그리고 다이어리 읽었으면 다시 만나야지. 희도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속상했는지 알았으면 달려가서 다시 만나자고 해야지 왜 헤어지는데!
정덕현 = 전 좀 점잖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음음. 작가가 시작부터 나희도와 백이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걸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쓴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드라마 중반까지 달달하고 아름답게 판타지를 자극했던 둘의 사랑이 후반부에 이르러 엇나가기 시작하는 과정을 충분히 납득시켰는가 하는 점입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남지은, 유선희 = 맞아요. 납득이 안돼요!
정덕현 = 작가가 백이진의 일(기자)이 나희도와의 연애 관계에 장애로 작용한다는 걸 너무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취재원과 기자가 사랑에 골인하는 사례는 실제로 많습니다. 게다가 일에 있어서 승승장구하면서 두 사람이 만날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상황이 강조되고, 그것으로는 어딘가 부족할 것 같아 911 테러를 소재로 끌고 와 백이진을 그곳에 보냄으로써 나희도와 소원해지게 되는 것을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로 제시한 점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남지은 = 이별 상황이 특히 억지스러워. 연락이 안 되던 4년도 서로 믿고 각자 잘 지냈는데. 러시아에 간 고유림과 문지웅도 결혼하는데. 차라리 나희도가 결혼하지 않은 걸로 설정했다면 반응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봐. 결혼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닌데, 작가가 나서서 시작부터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어놓고는 너무 싱겁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잖아. 그럴 거면 대체 그런 상황은 왜 만든 거야? 뭔가 시청률에 이용된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과한가?
유선희 = 과하지 않아. 작가가 시청자와 밀당한 느낌이야? 결말에 전혀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잖아. 나희도 남편이 누군가로 낚은 느낌이야. 아름다웠던 청춘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같아.
남지은 = 물론 엄청 고민했겠지만, 개인적으로 911 사태를 두 사람이 헤어지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았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어. 나희도가 뉴스를 보며 테러 장면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것보다 백이진을 보며 좋아하는 부분이 더 강조됐다는 것.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두 사람의 애틋함을 표현하려는 거겠지만 좀 그랬어. 백이진도 희도한테 잘 보이려고 옷을 신경 쓴다고 하고. 911 사태는 사랑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니라고 봐.
정덕현 = 만일 이별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중요한 것이라면 훨씬 더 세밀하고 설득력이 있는 이별의 근거를 제시해줘야 했습니다. 또한 사전에 그 복선도 깔아둬야 했고. 갑작스러운 이별은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선희 = 아 진짜 생각할 수록 너무해. 둘이 헤어져놓고 근데 아틀리에 이름은 또 2521이고. 내가 나희도 남편이었으면 이혼각이야! 그리고 앵커석에서 나희도와 영상으로 인터뷰하면서 둘이 왜 그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다시한번 말하지만 내가 나희도 남편이었으면 이혼각이라고! 나희도 남편이 제일 불쌍해.
남지은 = 워워.
정덕현 = 작품을 통해 작가와 시청자가 소통되려면 설득과정이 충분해야 합니다. 작품 하나가 끝나고 나서 이토록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면 결국 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겼는지 숙고하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또다시 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유선희 = 애초에 이별을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백이진의 고민부터 소통에 실패한 거지. 고유림이 러시아에 귀화하는 걸 단독 보도하고 백이진은 괴로워하잖아. 또 그 일을 나희도와의 사이에서도 겪게 될까 봐 고민하고. 근데 그 자체가 너무 과장되어서 시청자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던 거야. 절친이어서, 사람 자체를 믿어서 보도 안 하는 기자도 많잖아.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갖고 왜 괴로워 해. 그리고 백이진이라면 일 보단 나희도여야 되는 거 아냐? 아 캐릭터 붕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자라는 직업은 절대 결혼하면 안 되는 직업군이더군. 보는 기자 기분 나뻐.
남지은 = 세상엔 단독보다 더 중요한 우정이라는 것도 있는데. 물론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아무튼 마지막 회가 개연성이 없어서 실컷 잘 달려와 놓고는 다 와서 넘어져 버렸어. 청춘 시절의 비중을 좀 줄이고,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과 이별을 좀 더 보여줬다면, 시청자들이 둘의 마음 변화를 이해할 시간을 줬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해.
유선희 = 백이진이 911 취재하러 가서 죽는다는 소문이 많았잖아. 남주혁이 영상으로 자신을 왜 자꾸 죽이려고 하느냐 하소연도 했고.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백이진은 죽는 게 나았겠다고.
정덕현 = 그래도 이런 몰입감이 생겼고 그래서 논란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그 밑바탕에는 작품이 그만큼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걸 말해줍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시대와 싸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어서 더더욱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유선희 = 제발 알기를요. 엔딩 하나만으로 앞의 이야기가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거. 드라마는 개연성이라는 것. 아 우리 무너진 백이진 어떡해.
<정덕현의 한마디>
인생드라마가 될 수 있었지만 시청자와의 소통에 실패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은 드라마.
<남지은의 한마디>
백이진을 16회 한편으로 이기적인 남자로 만든 드라마. 시청자가 좋아한다고 방심하지 말자.
<유선희의 한마디>
마지막 한편이 열다섯편의 설렘을 지워버렸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