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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블랙의 신부, 어땠어?] 캐릭터도 내용도 진부… 넷플릭스, 기획에서도 문제가?

등록 2022-07-21 18:44수정 2022-07-21 20:13

[드라마톡, 볼까말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8부작 드라마
상위 0.1% ‘블랙’ 등급 남자 둘러싼 욕망들
지상파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 왜?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블랙의 신부>는 상류층과의 결혼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지난 15일 총 8부가 한꺼번에 공개됐다. 가정에 헌신하며 살던 평범한 주부 서혜승(김희선)이 남편을 죽게 한 진유희(정유진)한테 복수하는 이야기다. 진유희는 서혜승의 남편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이용하다가 불륜이 드러나자 그를 성범죄자로 내몰았다. 몇 년이 흘러 우연히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무너뜨리려고 최고 등급인 ‘블랙’의 남자를 만나려고 한다. 넷플릭스 쪽은 “<블랙의 신부>는 욕망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고 사랑이라 포장하는 우리 사회와 인간의 본모습을 들여다보는 현실풍자극”이라고 설명했다. 연출 김정민, 극본 이근영.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남지은 기자 = ‘넷플릭스가 요즘 많이 답답한가 보다.’ <블랙의 신부>를 보자마자 이 생각부터 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화제성이 갈수록 떨어진다고는 해도, 넷플릭스 하면 참신함이지 않나. 그런데 이게 뭐지 싶었다. 몇년 전, 젊은 시청자들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이탈하자 <티브이엔>(tvN)에서 부부예능과 아침드라마를 방영했 때 받았던 충격보다 더하다.

김효실 기자 = 진짜 진부하긴 하다. 지금 이 시대에 언제의 가치관을 들이대는지. 이 꼭지(드라마톡)만 아니었다면 1회 보다가 하차할 뻔했다. <부부의 세계> 같은 ‘웰메이드 막장 드라마’를 생각한 것 같은데, ‘웰메이드’는 사라지고 복수와 멜로만 남았다. 그렇다고 복수와 멜로가 세련된 것도 아니고. 여기에 완벽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코드까지 넣어놨다.

남지은 기자 = ‘여적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드라마가 여자와 여자의 대결을 위해 깔아놓은 설정도 다소 위험해 보인다. 드라마는 서혜승과 진유희를 적으로 만들려고 서혜승의 남편을 활용한다. 서혜승의 남편은 진유희와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한테 이혼을 요구한다. 알고 보니 남편은 진유희한테 이용당한 것이고, 이후 진유희의 거짓말에 성범죄자로 몰려 자살한다. 이때부터 서혜승은 진유희한테 복수를 다짐한다. 진유희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진유희와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한 또한 사실이지 않나.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김효실 기자 = <블랙의 신부>는 드라마 전체적으로 여자 캐릭터를 다루는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선 여성을 물건 취급한다. 최유선(차지연)은 2조 자산가인 이형주(이현욱)에게 “모두의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눈부신 아내”를 맞이하라고 말한다. ‘트로피 아내’(trophy wife)를 구해주겠다는 의미다. 트로피 아내라는 말은 1989년 미국의 유명 경제지 <포춘>이 커버스토리에서 성공한 남성들이 엔(n)번째 결혼에서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우승컵(트로피) 받듯이 맞이하는 현상을 가리켜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인간인 여성을 사물인 트로피와 같다고 취급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상대 개념인 ‘트로피 남편’이란 말도 쓰인다는데, <블랙의 신부>은 주로 ‘트로피 아내’를 둘러싼 욕망들을 다뤘다. 그래서 진부하다.

남지은 기자 =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방식은 성적 매력이다. 진유희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앞세워 유부남을 꾀어 돈을 뜯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는다. 가면 파티에서 원하는 남자를 차지하려고 춤을 추는 듯 매력을 한껏 드러내려고 한다. 결혼정보업체 대표 최유선은 딸을 집안 좋은 남자와 연결해주고 싶어 하는 남자한테 “외모를 잘 가꿔두라”고 말한다. 결혼으로 삶을 바꾸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최유선은 “어떤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서혜승한테 “두려운 존재가 되어라. 부자가 돼라. 그런 능력이 없으면 당신의 욕망과 탐욕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재혼을 원하는 여성들한테 “재혼은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며 승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고 말한다.

정덕현 평론가 = 그래도 렉스라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가 등장하고, 자산 조건에 따라 블랙(1000억 이상), 시크릿(500억-1000억), 다이아몬드(500억 미만), 플래티넘(100억 미만), 골드(50억 미만)로 회원을 나눠 매칭해준다는 설정은 흥미로운 극성이다. 최근 우후죽순 생겨난 연애 매칭 프로그램의 드라마 버전처럼 보였다. 또 가면을 쓰고 하는 파티가 등장할 때는 <오징어 게임>의 연애 매칭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드라마 전개는 너무 뻔한 클리셰로 가득 차 있다. 아이를 가진 유부녀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또 사건에 휘말리면서 복수를 꿈꾸고, 결국에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들에게 구애받는다.

남지은 기자 = 모든 드라마가 시대에 발맞춰 앞선 캐릭터, 내용을 선보여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내용상 설득력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블랙의 신부>는 진부한 설정에 설득력도 없다. 차라리 엄청 재미있게 만들어서 보게 하던가. 전개도 심심하고 허술하다. 남편이 여자가 있다고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할 때 서혜승의 대사는 안봐도 알겠더라. “자식까지 버릴 거야?”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등등. 파티장에서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렸다고 상대를 못 알아보는 건 너무하지 않나. 목소리도 헤어스타일도 똑같은데 바로 눈앞에서 보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정덕현 평론가 = 직업적인 부분에서 디테일도 잘 살리지 못했다. 게임업체 사장 이형주, 변호사 진유희, 교수 차석진, 결혼 매칭 회사 대표 최유선 등. 직업은 설정되어 있지만 그저 배경으로만 쓰인 점은 이 작품이 충분한 사전 취재가 이뤄졌는가를 의심하게 한다. 그저 막연한 직업의 특징을 갖고 드라마를 쓰다 보니 틀에 박힌 스토리만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특정한 게임업계의 이야기나 법조계, 교수사회, 결혼 매칭 회사의 디테일한 스토리들이 전제되었다면 훨씬 신선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김효실 기자 = 배우들도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박훈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연기가 좋아서 이 드라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봤다. 배우들도 연기하기 어려웠겠구나 싶었다.

정덕현 평론가 = 과한 설정도 있어서 연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김희선은 자기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가정을 지키고 복수를 하려는 욕망을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 자신이 연민을 자아내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이를 보여주려는 모습이 보인다. 대결구도에 있는 진유희 역할의 정유진은 뻔한 악녀 캐릭터이지만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질깃하게 악행을 이어가는 연기를 잘 소화했다. 이형주 역할의 이현욱은 <마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는데, 이번 작품은 전형적인 캐릭터라 두드러진 매력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

김효실 기자 = <블랙의 신부>가 구축하는 공고한 가부장 남성 중심 서사에서 그나마 볼 만한 건, 15년 동안 나이 많은 부자 남편의 ‘트로피 아내’로 살아온 최유선이다. 최유선은 트로피라기엔 지나치게 열심히 살아왔다. <블랙의 신부>에서 핵심이 되는 결혼정보회사 렉스를 일궈놓은 사업가다. 자신보다 4살 어린 법적 아들과의 상속 분쟁에서도 승리한다. 차지연이 드라마 <모범택시>(에스비에스)의 백성미 같은 ‘빌런’을 맡은 줄 알았는데, <블랙의 신부>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최유선은 백성미와 다르다. 한층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다. 차지연을 보려고 8회까지 다 봤다.

정덕현 평론가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그간 국내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소재와 파격적인 형식, 내용들이 등장해 무언가 혁신적인 느낌을 줬던 게 사실. 조선시대 좀비 <킹덤>이나 청소년 성매매를 소재로 한 <인간수업>, 군 가혹행위를 소재로 한 <디피>(D.P.) 등이 그 사례들이다. <블랙의 신부>는 전형적인 지상파 막장드라마라 소재라는 점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퇴행처럼 보이는 작품이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블랙의 신부>를 보면 이것이 단지 투자를 위한 자금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에서도 문제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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