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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개그, 형식을 우습게 여겨봐

등록 2006-03-29 22:44

이야기TV
양보다 질이라고 했다. 양으로만 보자면, 브라운관은 유래 없는 개그천국이다. 1주일에 이틀만 빼곤 개그프로그램이 나온다. 화요일엔 <개그1>, 수요일엔 <개그사냥>, 목요일엔 <웃찾사>, 금요일엔 <개그야>, 일요일엔 <개그콘서트>. “매일매일 웃으며 잠듭시다”던 고 김형곤씨의 말이 실감나는 편성이다. 한데 맛이 다 똑같다. 방송사들이 개그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 선보였다는 신인 중심 개그프로그램 <개그1> <개그야> <개그사냥>은 <웃찾사>와 <개그콘서트>를 그대로 잇는다. 삼삼오오 팀으로 나오는 형식은 물론, <웃찾사>에서 많이 보던 군인개그도 등장한다. 조폭개그, 연인개그도 그대로 담겨있다. 언제 어딜 틀어도 같은 설정, 같은 웃음이다.

콩트가 지겨워질 때쯤 등장했던 공개프로그램은 대학로 무대를 옮겨놓은 듯한 참신함으로 주목받았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형식 덕분에 개그맨들의 등용문이 됐다. 수년을 무명으로 지냈던 개그맨 박준형은 ‘갈갈이 패밀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개그맨 윤택도 ‘택아’로 인기를 끌었다. 치열한 아이디어 싸움은 개그프로그램의 기본이다.

하지만 아이디어에 치중한 공개프로그램은 개그맨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폭소클럽>의 블랑카와 <웃찾사>의 리마리오는 온데간데 없다. <웃찾사>의 단무지 아카데미에서 “피곤한데”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개그맨 이강복도 <개그1>에서 신인 아닌 신인으로 돌아갔다. ‘그런거야’의 개그맨 권성호도 <개그1> 무대에 다시 섰다. “당장 인기 있다고 안심할 수 없는 곳이 개그다. 후속타를 내놓지 못하면 바로 내려오기 마련이다”는 그들은 “지금도 하루하루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개그맨들의 수명 단축은 그들을 버라이어티로 내몬다. 돈도 벌고 대접도 받을 수 있는 버라이어티 쇼는 개그맨들의 ‘꿈의 무대’가 됐다. 성공한 개그맨 김용만, 박수홍, 신동엽 등은 정작 개그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대부분은 진행에서 나온다. 이강복은 “시청자들도 빠른 변화를 원한다”며 “먹고 살려면 드라마나 버라이어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드라마로 갈 계획이다”고 했다. 그 결과 개그 프로그램에는 연륜있는 개그맨들이 거의 없다.

개그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형식의 새로움이다. 지금의 공개 개그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는 상태에서 만든 똑같은 프로그램은 같은 문제를 반복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콩트와 게임을 결합한 <웃는데이>처럼 실험적인 시도는 눈에 띈다. 비록 유명 개그맨의 캐스팅에 주력하면서 차별성이 떨어져 결국 실패했지만 공개프로그램 일색인 브라운관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선 인정할 만하다.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그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기대는 허망하다. 1주일 내내 비슷한 개그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보여주며 명성을 되찾기보단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죽이게 웃겨주는’ 젊은 개그맨들의 정신 아니던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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