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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올레는 피로사회에 지친 마음 위로해주는 느린 여행”

등록 2016-11-23 16:29수정 2016-11-23 16:51

[제주&] 인터뷰-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2016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21일 종점인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2016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인 21일 종점인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주올레가 우리나이로 열 살이 된 올해,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열린 10월 21~22일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수천명의 참가자들은 빗속에서도 생각하고 대화하며, 색다른 풍경과 길 위의 공연이 어우러진 축제를 마냥 즐겼다. 제주올레를 지렛대 삼아 걷기 여행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 확실하게 자리잡았고 제주올레는 제주 최대의 관광상품이 됐다. 이 제주올레가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서명숙(59)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다. 그는 서울에서 약 30여년간 대학생활과 언론인 생활을 한 뒤 50대 초입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길을 내는 일에 나섰고 길로써 세상을 바꾸었다. 22일 제주올레 걷기축제 참가자들의 점심 장소로 제공된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 고성운동장 사무실 귀퉁이에서 그를 만났다. 서 이사장은 “오늘 날씨처럼 제주올레를 내는 과정에도 호수처럼 바다가 잔잔한 날과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거친 날이 교차했다”며 “이제 제주올레의 앞에는 세계와 지역이라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고 말했다.

-제주올레가 우리나이로 열 살이 됐다.

“시작할 때 내가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온 것 같다. 제주올레는 한국 여행 문화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바꾸어 놓았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산하의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제주 주민들은 올레가 생겨 자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올레는 무슨 뜻인가?

“‘올레’는 거리에서 대문까지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지칭하는 제주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제주올레는 푸른 바다와 오름(작은 산처럼 보이는 휴화산의 일종), 검은 돌담, 푸른 들, 귤나무 밭 등 제주도의 빼어난 풍광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지난해 만난 북미 트레일 대표가 제주올레를 보면서 트레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얘기를 했다. 그는 트레일이라면 접근하기 힘든 심산유곡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보내는 것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기 집 앞에서 시작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며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10월21일 2016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 종점인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환히 웃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viator@hani.co.kr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10월21일 2016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 종점인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환히 웃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viator@hani.co.kr
-성공 원인은 뭐라고 보나?

“우리 사회가 너무 지쳐 있었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곳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전쟁 이후 60여년 동안 압축적인 성장을 했지만, 옹이가 꽉 들어찬 사회는 아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피로와 정신적인 공허감이 있었는데 이를 제주올레가 메워주었다고 생각한다. 주마간산 식으로 훑고 지나가는 렌터카 관광이 아닌, 제주도 구석구석을 발로 훑고 지나가는 느린 여행이 인기를 끈 이유다. 요즘 중국 관광객(유커)들이 제주를 많이 찾는데 중국도 압축 고도성장을 하고 있어 제주올레가 필요하고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릴 때 뛰어놀았고, 산책 갔던 제주의 그 길들이 관광객들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세계 어느 곳 절경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가능했다. 제주는 풍경, 역사, 생태 모든 것이 남다르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올레길을 만들 결심을 했다고 들었다. 산티아고 길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

“브라질로 이민 간 한국 여성이 쓴 책을 선물로 받아 우연히 읽게 됐는데 거기서 산티아고 길을 처음 알게 됐다. 30년 언론인 생활을 하며 심신이 피폐해 걷기를 하게 됐는데 산티아고 길이 너무나 걷고 싶었다. 결국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직을 던지고 산티아고 길을 갔다. 그 길을 걸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어릴 적 자란 제주의 자연을 떠올렸다. 예전에 내가 제주에서 걸었던 풍경들은 이보다 더 아름다운데 왜 제주관광은 제주의 차도만 보여주고 있겠느냔 생각을 했다. 그 길에서 헤니라는 이름의 영국 여자를 만나게 됐는데 각자 고향에 돌아가 그런 길을 내자고 약속을 했다. 그 뒤 그녀의 연락처를 잃어버려 연락이 끊어졌는데 지금은 제주를 창조한 전설 속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도구로 쓴 게 아닐까 그런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길을 내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처음 1년은 후원금도 없이 뜻을 같이하는 동생과 함께 땅주인을 설득하고 몸으로 길을 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며 뜻을 같이하는 많은 분이 생겼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길을 걷는 것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길이란 행복한 종합병원이다. 길은 자기 두 발이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걷다 보면 몸은 물론 마음의 지방도 빠져나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스트레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질투심, 오만, 열등감, 외로움, 온갖 불필요한 정신의 지방이 빠져나가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올레길 등으로 제주가 다시 주목을 받으며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제주올레 9코스 대평마을이다. 제주 전통의 시골집이 많은, 매력 있는 숨은 마을이었는데, 눈 밝은 사람들이 와서 리조트를 지으면서 경관이 전혀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지금이라도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제주에서 보존해야 할 곳은 철저히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까지 오름과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2~3개의 노선을 새로 낼 것이다. 일본 규슈 올레에 이어 몽골 올레와 중국 올레 등을 내는 것을 돕고 제주올레를 세계에 알릴 것이다. 또 하나는 제주올레가 지나는 마을을 살찌우는 일이다. 올레길이 핏줄이라면 마을은 그를 받치는 뼈와 근육이다. 마을마다 옛것과 장점을 살려 스토리와 개성을 부여하고 올레와 상생하게 하는 일을 돕고 싶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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