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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제주 삶 11년 …“서울 있었으면 음악 관뒀을 수도”

등록 2016-11-24 11:46수정 2016-11-24 15:04

[제주&]포크록 가수 장필순의 제주살이

애월읍에 터 잡고 살며 마음 치유
최근 작업 앨법엔 제주 음색 배어
노랫말 곳곳 바다·노을·하늘…
가수 장필순이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첫째날인 21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가수 장필순이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첫째날인 21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귀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언제부터 넌 말했지 노을을 보러 가고 싶다고/ 나도 거길 기억해 그때 보았던 그 노을/ 진주홍빛 구름들로 덮여 버린 하늘과 바다/ 믿을 수 없이 컸던 붉은 태양이 잠기던…(중략)/ 바람 부는 제주도 애월포구 작은 산책로 벤치에 앉아/ 할 말도 모두 잊고 애월 낙조에 물들어(‘애월낙조’ 가사 중에서)

가수 장필순이 부른 노래 ‘애월낙조’의 한 대목이다. 통기타와 포크 음악에 기반을 둔 한국 여성 포크록의 대표로 손꼽히는 가수 장필순은 2005년부터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11년 동안 그곳에 살고 있다. 그가 제주에서 작업한 앨범들에는 ‘애월낙조’처럼 어딘가 제주의 음색이 배어 있다. 바다, 노을, 하늘 같은 가사들이 노랫말 곳곳에 드러나고 서걱이는 제주의 바람 소리가 느껴진다. 10월22일 올레 축제 마지막날 폐막행사가 치러진 시흥초등학교 가설무대 공연장에서 그리고 10월28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두 차례 그를 만나 11년 동안의 제주살이에 대해 들었다.

제주로 간 이유에 관해 묻자 그는 “문득 (서울살이가) 재미가 없고 어느 날 한꺼번에 김새는 느낌, 그런 것들이 들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40줄에 들면서 뭔가 둘러보게 됐어요. 저는 엘피(LP) 시대 때 음악을 시작했는데 이제 디지털 시대가 됐고. 돌아보면 내가 음악을 시작할 때 배웠던 정서라든가 음악을 하면서 가졌던 가치, 그런 것들이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처음엔 속초나 지리산 이런 델 생각했다. 그러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찾다 보니 마음이 흔들리면 찾던 제주를 떠올리게 됐다. “해외에 나가 살 자신은 없고.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감이 좋았어요.”

제주에 오기로 마음먹은 뒤 한 달 동안 내려와 둥지 틀 곳을 찾았다. 그러다 애월읍 해안에서 10여㎞ 떨어진 산기슭의 외딴길 끝에 있는 집을 하나 만났다. 새마을운동 당시 스타일의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마을 이장님이 오셔서 가로등을 달아주겠다고 하시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가로등 달면 별이 안 보이니까.” 약 300평의 넓은 마당이 딸린 것도 그 집을 택한 이유였다. 한정된 예산에 건물이 좋은 집과 마당이 넓은 집 중 마당을 택했다. 가수 이효리씨와는 1㎞ 남짓 떨어진 이웃이다.

제주에 내려와 4~5년간은 음악에 손대지 않고 텃밭과 마당을 가꾸고 개와 고양이를 길렀다. 서울에서 데려온 개 2마리는 유기견들을 입양하면서 8마리로 늘어났다. 300여평 잔디밭이 있던 마당은 나무들을 심었더니 방문객들이 ‘곶자왈’(제주 특유의 난대성 원시림) 같다고 말하는 수준이 됐다. 마당 한 귀퉁이에는 조촐한 밥상에 오를 채소를 심을 텃밭을 가꿨다.

“5년 뒤 거울을 봤는데 제가 너무나 변해 있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끈적거림이 싫어 선크림을 안 바르고 거치적거리는 모자도 안 쓰니 얼굴이 새까맣게 탔고, 호미질로 만성 염증이 생긴 손가락도 너무 붓고. 이제 기타를 잘 못 쳐요. 하지만 대신 쳐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그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 제주살이의 가장 큰 혜택은 역시 ‘자연’이었다.

“여기는 대문만 열어도 멋진 산책로들이 있으니까. 저녁 어스름에 나가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보게 되는 그런 노을이 있어요. 내가 취입한 ‘애월낙조’ 노래에 나오는 그런 노을이요. 밤하늘도 좋아요. 제주도의 푸른 밤이란 말도 있듯이 설악산 지리산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런 하늘이죠.”

가수 장필순씨가 21일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폐막식이 열린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가수 장필순씨가 21일 2016 제주올레 걷기축제 폐막식이 열린 서귀포시 시흥초등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제주에 내려와서 비로소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에 있었으면 음악을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마음의 여유를 얻었어요. 피하고 싶은 걸 피하면서 살게 됐고. 원래 내 노래에는 사회 비판적 내용이 있었는데 제주 와서 여러 경험을 하게 되면서 아 내가 노래했던 그게 참 좋은 거였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됐지요. 더 디테일 하게 얘기해야지 하는 욕심도 생기고.”

2013년 다시 음반을 냈다. 2002년 6집 를 낸 뒤 11년 만에 낸 7집 음반 이었다. 지난해부터는 ‘디지털 싱글’을 1~2개월에 하나씩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시디로만 작업하다가 “더 많은 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엠피(MP)3로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사랑,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발표했고, 지금은 동물원의 배영길씨가 작곡한 후속곡 취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가 저에게 너무 안 맞아요 하는 이들은 제주를 다 들여다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살아도 볼 것이 많고 느낄 게 많은 곳이죠. 이곳 제주에서 좋은 공연들을 하고 싶어요. 서울에서 제 팬들이 여행 삼아 제주에 와서 공연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는 그런 공연 말이죠.”

하지만 처음 올 때에 비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제주의 모습이 걱정이다.

“11년 전 그때만 해도 제주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는데 지금은 20~30층 건물도 올라가니 낯설어요. 그게 과연 이곳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길일까라는 그런 생각이….”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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