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네스코 등재 해녀문화 현장 ‘법환마을’을 찾아서
한 해녀가 제주도 바닷 속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는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해녀박물관 제공
해녀마을로 알려진 서귀포시 법환마을에 해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58살∼68살 49명이 명맥 이어
최고 경력 70년…일본서도 물질
“친정집보다 바다가는 게 낫다”
물질없는 날 밭일 ‘고단한 투잡’
고령화로 수십년 뒤엔 고사위기 그는 19살에 강원도, 21살엔 울산으로 물질을 다녀왔다. 음력 2월에 나가면 추석 전후에 돌아왔다. 51살에는 일본 가고시마 현 나가시마까지 물질을 다녀왔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물건을 많이 잡을 때가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며 웃는다.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제주도 연안을 도는 남방큰돌고래를 만나 같이 유영하는 일은 흔하다. 마치 동료를 만난 것 같다는 해녀도 있다. 그는 “어떤 날은 물질하다 보면 남방큰돌고래는 나보다 밑에서 같이 헤엄칠 때도 있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고무옷을 입고 물질을 해서 겨울철에도 춥지 않다는 그는 “예전에는 겨울철 물질하면 손발이 얼고,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워 해삼이나 전복이 있어도 채취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질로 1남 2녀를 키운 김인선 해녀는 그만의 잠수 비결을 말했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편합니다. 아이들도 운동 삼아 할만큼만 하라고 합니다. 물질할 때는 너무 깊게 들어가려고 해도 안 되지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가야지 욕심부리면 절대 안 됩니다.” 옆에 있던 현복란(82)해녀는 15살 때부터 물질을 했다. “육 남매 살리려고 육지로, 일본으로 물질을 다녔어요. 바다에 가지 않을 때는 밭에 가서 죽을락 살락 일하고, 물때가 되면 바다에 들어갔지요.” 그녀가 긴 한숨을 내쉰다. 젊을 때는 상군해녀 소리를 들었다는 그녀는 “요왕할망(용왕 할머니)만 믿고 살았다”며 자신의 체험담을 풀어냈다. 요왕할망은 해녀들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신이다. 그녀는 “전복 따러 들어갔다가 수건을 졸라매고 앉아서 눈을 깜박이는 요왕할망을 두 번이나 만났다.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무섭지도 않았다. 꿈속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물질하던 동료 해녀가 숨지자 어깨에 메고 배에 올라온 경험도 2차례나 있는 그녀다. 김씨가 “바다에 들어가면 편안하다”고 했지만, 현 씨는 “어떻게 편할 수 있느냐. 목숨 바쳐 일한다”며 웃었다. ‘제주해녀문화’는 11월 30일(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확정됐다. 등재 당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해녀 대표로 다녀온 어촌계장 강 애심(64) 해녀는 “갈 때만 해도 감귤수확 철이라 일이 산더미처럼 있어 마음속으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가서 제주 해녀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돼 매우 기뻤다”고 회고했다. 법환 해녀들은 물때를 맞춰 한 달에 보통 12일 정도 일한다. 강 씨도 “물건을 많이 잡거나, 남이 못 떼는 전복을 채취할 때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성취감 때문에 세상을 얻은 듯하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해녀들이 두 번 바닷속에 들어갈 때는 세 번 들어간다”고 했다. 마을 해녀들은 그런 그녀를 ‘악바리’라고 한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해녀문화마을에 전시된 해녀들의 물질도구.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 해녀가 물질에서 잡은 문어를 마구니에 담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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