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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푸른바다의 전설, 해녀

등록 2016-12-28 13:23수정 2016-12-28 14:06

[제주&] 유네스코 등재 해녀문화 현장 ‘법환마을’을 찾아서
한 해녀가 제주도 바닷 속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는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해녀박물관 제공
한 해녀가 제주도 바닷 속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는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해녀박물관 제공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태풍이 몰아칠 때는 마을을 삼킬 듯 큰 파도가 쉴 새 없이 해안을 때리는 곳. 한라산 남쪽 서귀포시 법환마을은 대표적인 해녀마을이다. 마을 해녀들은 평생을 이 거친 바다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법환포구에 들어서면 범섬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범섬을 배경으로 해녀와 물고기 등을 형상화한 조그마한 광장이 해녀 마을임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최근 몇 년 사이 들어선 카페와 맛집들이 있다. 이 마을이 해녀 마을이 된 것은 200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마을의 역사자원과 해녀들의 물질 등 생활문화자원을 엮어 ‘문화·역사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다. 마을에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의 목호 토벌과 관련된 지명들이 남아있고, 본향당 등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법환마을 해녀는 80년대 중반만 해도 100여명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고령화 등으로 많이 줄어 49명에 지나지 않는다. 58살이 가장 젊고 최고령 해녀는 88살이다. 70대 이상이 32명이나 된다. 마을 해녀들은 동해안과 남해안은 물론 일본까지 물질을 다녔다. 또 제주의 다른 마을 해녀들처럼 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물때가 되면 바다로 나간다. 오랜 세월 물질작업으로 직업병에 시달리는 해녀들은 물질 때 진통제 등을 먹지만, 자녀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성장시킨 데서 보람을 찾는다.

해녀마을로 알려진 서귀포시 법환마을에 해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해녀마을로 알려진 서귀포시 법환마을에 해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추위가 기습한 지난 14일 마을에서 만난 김인선(78) 해녀는 노래도 잘하고 물질도 잘한다고 했다. 물질 경력은 곧 70년이 된다. “9살 때부터 물질을 배웠으니까 나처럼 어릴 때부터 물질을 배운 사람은 드물 겁니다. 남의 아기 돌보는 것보다 물질하겠다며 새벽 6시면 바다에 갔다가 어두워지면 돌아오곤 했어요.” 인근 하효마을에서 22살에 법환마을로 시집왔다. 그는 “법환처럼 물건(바다에서 채취하는 소라, 전복 등 해산물의 총칭)이 좋은 곳은 없다. 물건을 많이 잡아서 서귀포 시내로 팔러 다니기 바빠서 서러울 틈도 없었다”고 말한다.

제주 대표적 해녀마을 법환리
58살∼68살 49명이 명맥 이어
최고 경력 70년…일본서도 물질

“친정집보다 바다가는 게 낫다”
물질없는 날 밭일 ‘고단한 투잡’
고령화로 수십년 뒤엔 고사위기

그는 19살에 강원도, 21살엔 울산으로 물질을 다녀왔다. 음력 2월에 나가면 추석 전후에 돌아왔다. 51살에는 일본 가고시마 현 나가시마까지 물질을 다녀왔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물건을 많이 잡을 때가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며 웃는다.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제주도 연안을 도는 남방큰돌고래를 만나 같이 유영하는 일은 흔하다. 마치 동료를 만난 것 같다는 해녀도 있다. 그는 “어떤 날은 물질하다 보면 남방큰돌고래는 나보다 밑에서 같이 헤엄칠 때도 있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고무옷을 입고 물질을 해서 겨울철에도 춥지 않다는 그는 “예전에는 겨울철 물질하면 손발이 얼고,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워 해삼이나 전복이 있어도 채취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질로 1남 2녀를 키운 김인선 해녀는 그만의 잠수 비결을 말했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편합니다. 아이들도 운동 삼아 할만큼만 하라고 합니다. 물질할 때는 너무 깊게 들어가려고 해도 안 되지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가야지 욕심부리면 절대 안 됩니다.”

옆에 있던 현복란(82)해녀는 15살 때부터 물질을 했다. “육 남매 살리려고 육지로, 일본으로 물질을 다녔어요. 바다에 가지 않을 때는 밭에 가서 죽을락 살락 일하고, 물때가 되면 바다에 들어갔지요.” 그녀가 긴 한숨을 내쉰다. 젊을 때는 상군해녀 소리를 들었다는 그녀는 “요왕할망(용왕 할머니)만 믿고 살았다”며 자신의 체험담을 풀어냈다. 요왕할망은 해녀들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신이다. 그녀는 “전복 따러 들어갔다가 수건을 졸라매고 앉아서 눈을 깜박이는 요왕할망을 두 번이나 만났다.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무섭지도 않았다. 꿈속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물질하던 동료 해녀가 숨지자 어깨에 메고 배에 올라온 경험도 2차례나 있는 그녀다. 김씨가 “바다에 들어가면 편안하다”고 했지만, 현 씨는 “어떻게 편할 수 있느냐. 목숨 바쳐 일한다”며 웃었다.

‘제주해녀문화’는 11월 30일(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확정됐다. 등재 당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해녀 대표로 다녀온 어촌계장 강 애심(64) 해녀는 “갈 때만 해도 감귤수확 철이라 일이 산더미처럼 있어 마음속으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가서 제주 해녀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돼 매우 기뻤다”고 회고했다. 법환 해녀들은 물때를 맞춰 한 달에 보통 12일 정도 일한다. 강 씨도 “물건을 많이 잡거나, 남이 못 떼는 전복을 채취할 때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성취감 때문에 세상을 얻은 듯하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해녀들이 두 번 바닷속에 들어갈 때는 세 번 들어간다”고 했다. 마을 해녀들은 그런 그녀를 ‘악바리’라고 한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해녀문화마을에 전시된 해녀들의 물질도구.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해녀문화마을에 전시된 해녀들의 물질도구.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친정집보다 바다에 가는 게 낫다’는 해녀들의 말이 있다. 친정집에 가서 쌀이라도 갖고 오려면 눈치를 봐야 하지만, 바다는 자신의 노력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이 그녀들을 직업인으로 단련시켰을까. 17살 때부터 물질을 한 조계화(77) 해녀는 “오누이 공부시키고 먹고 살 만큼 됐다”며 허리를 폈다. 65년을 물질로 산 현수자(76) 해녀는 8년 동안을 일본 나가사키까지 가서 물질했다. 한번 가면 보름 정도 일하다 왔다는 현 씨는 1년에 2~3차례 다녀온 적도 있다. 현 씨는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 학교 보내려고 물질을 했다”고 했다.

한 해녀가 물질에서 잡은 문어를 마구니에 담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한 해녀가 물질에서 잡은 문어를 마구니에 담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상군해녀들도 나이가 들면 바다가 무서워진다. 현옥렬(72) 해녀는 “나이가 들면 숨이 가빠서 물질이 쉽지 않다. 수심도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70살이 넘으니까 바다가 무서워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밭에서 소독하다가 물때가 되면 바다로 달려가고, 물질 끝나면 밭으로 달려가 일하면서 살았다. 가진 게 없으니까 젊을 때는 자식 키우려고 물질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다”고 회고했다.

제주도는 지난 1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해녀 500여명을 초청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한해에 100여명씩 해녀는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해녀가 나타나지 않는 한 10~15년 후면 법환마을 해녀 수는 지금의 3분이 1로 줄어들 것이다. 그때까지 법환마을은 해녀 마을의 명성을 간직할 수 있을까.

“자녀들이 자기 일 하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게 바람입니다. 우리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물질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법환마을 해녀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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