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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마을해녀들이 선생님 돼 제자 키워요

등록 2016-12-28 13:23수정 2016-12-28 14:32

[제주&] 법환 좀녀마을 해녀학교
제주 서귀포시 법환마을 해녀학교 참가자들이 법환마을 앞바다에서 물질 체험을 하고 있다. 서귀포시 제공
제주 서귀포시 법환마을 해녀학교 참가자들이 법환마을 앞바다에서 물질 체험을 하고 있다. 서귀포시 제공
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해녀를 ‘좀녀’(잠녀), ‘좀수’(잠수)라고 불렀다. ‘법환 좀녀마을 해녀학교’가 좀녀와 해녀를 함께 쓰고 있는 이유다.

‘해녀’.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맨몸으로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바닷속 전복, 소라, 미역, 톳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물속에서의 작업인 ‘물질’로 삶을 영위한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바다 밭’이다. 주로 밭 노동을 겸하는 제주 해녀들에게는 대지의 밭과 바다 밭, 두 개의 노동 공간이 있는 셈이다.

제주 해녀들의 ‘물질’은 국가를 넘나들며 진행됐다. 19세기 말부터 제주해협을 건너 국내는 물론 중국 다롄과 칭다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했다. 바다를 앞마당처럼 삼아 살아온 제주 여인들은 보통 10~15살 정도 되면 어머니를 따라 바다로 나갔다. 15살 전후해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배우던 ‘아기 해녀’는 익숙해지면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나가면서 해녀로 성장한다. 해녀들한테는 물건 잡는 양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의 호칭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해녀는 제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들의 고된 물질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자녀를 교육하고, 사회활동을 해온 가정경제와 사회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녀들이 휴식공간인 불턱에서 불을 쬐고 있다. 제주해녀박물관 제공
해녀들이 휴식공간인 불턱에서 불을 쬐고 있다. 제주해녀박물관 제공
이뿐인가. 그들의 단결력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32년 1월 일본인들의 착취에 맞선 해녀들의 대규모 항일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 일본이나 다른 지방으로 ‘출가물질’을 나간 해녀는 5078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해산물을 채취해 벌어들인 돈은 제주도 경제의 주요 자원이 됐다.

1965년 2만3천여명에서 줄어
지난해 4377명밖에 안돼
명맥을 잇기 위해 체계적 교육나서
체험 아닌 직업인 양성…선풍적 인기

해녀들에게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전승된다. 해녀들이 있는 마을에는 물질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잠수굿과 요왕(용왕)굿이 치러진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물질작업을 준비했던 ‘불턱’. 이 공간은 집안의 대소사와 마을의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토론의 장이자 공동체 단합의 장소다. 지금은 샤워시설이 있는 해녀탈의장으로 바뀌었다. 해녀들에게 마을과 마을의 어장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나뉘어 이웃 어장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숨 바치고 물에 들어간다”는 법환마을 해녀의 말처럼, 물질은 힘들고 고된 작업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계승되던 물질작업을 이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해녀 수는 1965년 2만3081명에서 70년 1만4143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4377명으로 감소했다. 이 가운데 70살 이상이 53.5%에 이른다. 정식 해녀로 활동하기 위해 어촌계에 가입하기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해녀의 명맥을 잇기 위한 체계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해녀들이 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지난해 4월 서귀포시와 대학 등의 지원에 힘입어 문을 연 ‘법환 좀녀마을 해녀학교’(학교장 강애심 어촌계장)는 사라져 가는 제주 해녀 문화를 전승하고 전문 해녀 양성을 위해 설립됐다. 기존의 해녀학교가 체험 위주의 교육이라면, 법환 해녀학교는 직업으로서 해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곳이다.

마을 해녀들이 교사가 돼 ‘직업 해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진짜’ 해녀를 교육하는 기관인 셈이다. 이를 위해 서귀포·모슬포·성산포 3개 수협 46개 어촌계와 법환 해녀학교 졸업자를 어촌계 준회원으로 받아주기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해마다 5월 개교해서 7월 말 졸업하는 과정으로 짜인 해녀학교 전체 수업시간은 80시간으로 매주 토·일요일 진행한다. 해녀 물질이론과 현장실습, 어촌계 가입 및 활동, 어장관리 등을 배운다. 지난해 졸업생 28명 가운데 8명이 지역 어촌계에 가입했고, 올해 졸업생 가운데 18명이 12개 어촌계에서 2개월 기간의 인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해녀학교의 인기는 선풍적이다. 기자가 어촌계 사무실을 방문한 날도 해녀학교 모집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탈락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아예 해녀학교 학생 선발기준까지 마련했다. 강 교장은 “해녀가 하는 일이 뭔지, 어떻게 해산물을 잡는지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근에는 전문적으로 해녀 물질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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