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제주엔

1만8000 신들의 고향…마을굿이 ‘함께하는 축제’로

등록 2017-02-17 16:59수정 2017-02-17 17:01

[제주&] 민간신앙이 낳은 전통 민속문화

전설·신당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
상상력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뜻
새해가 되면 160여곳서 마을제
제주시 한복판선 탐라국 입춘굿

2월 어민 평안과 풍어 비는 영등굿
여름엔 가축의 번식 비는 마불림제

나무로 만든 소를 제사 지내는 남쉐코사의 한 장면. 제주 민예총 제공
나무로 만든 소를 제사 지내는 남쉐코사의 한 장면. 제주 민예총 제공
1만8천 신들의 고향, 제주도. 육지와 격리된 섬의 환경은 열악하다. 제주도의 토지는 척박하고 바람은 거세며, 한반도에서 태풍을 가장 먼저 맞는다. 이런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섬사람들 사이에는 독특한 민간신앙이 생겨났다. 이웃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풍농과 풍어를 기원했다.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지만, 신화와 무속문화 또한 이에 못지않게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제주섬에 ‘당오백 절오백’이라는 말이 있었듯이 당은 제주 사람들의 민간신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1970년대 초 기록에는 제주도 내 전체 행정마을 202곳(자연마을 550곳) 가운데 신당이 250여곳이나 돼 신당이 없는 마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관광지로 이름난 곳은 물론 마을마다 갖가지 전설과 여러 이름의 당이 있다. 당의 신은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으로서, 마을의 보호 신으로 전해 내려왔다. 제주도의 신을 합치면 ‘1만8천’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제주의 원로 민속학자인 진성기(82)씨는 “제주도민들의 생활 속에서 의례를 통해 직접 볼 수 있고, 정신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주도민들의 사고의 범위라고 보면 된다”고 해석했다.

마을제가 한창일 때 제주시내 한복판에서는 ‘탐라국 입춘굿’이 새해를 맞는다. 제주 민예총 제공
마을제가 한창일 때 제주시내 한복판에서는 ‘탐라국 입춘굿’이 새해를 맞는다. 제주 민예총 제공
한해를 여는 의례는 마을제로부터 시작한다. 2017년 정유년 정월(음력 1월)을 맞아 제주도 마을마다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다양한 마을제가 이달 초순까지 잇따라 열렸다.

마을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도시와 농촌, 산간과 해안마을 구분 없이 널리 실시됐으나 미신타파 등을 이유로 일제 강점기 때 된서리를 맞았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 초 또다시 탄압을 받은 데다 근대화에 밀려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제주지역에서는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마을에서 부활해 활발하게 의례가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무사 안녕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는 온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의례로 자연에 순응하는 제주인들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깃든 의례이다. 마을제를 준비하고 봉행하는 과정에 마을주민들이 참여함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단합과 결속에 기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마을제를 조사해 기록을 남겼던 일본인 무라야마 도모즈미는 “마을제는 생활 지역과 조건을 같이 하는 마을주민들이 재해를 피하고, 생활을 증진하는 행복을 구하기 위해 신께 빌고 평안한 생활을 즐기려는 목적에서 각자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1년에 1회 또는 여러 차례 제사를 모시는 향토적 연중행사의 하나”라고 했다.

제주의 마을제는 설날인 28일(음력 1월 1일) 제주시 추자면 묵리를 시작으로 이달 초순까지 160여개 마을에서 치러졌다. 제주지역에서는 예부터 새해 정월을 맞아 마을에 따라 포제, 해신제, 동제, 동사제, 토신제, 당제, 이사제, 마을대제 등의 이름으로 마을제를 봉행해왔다.

제주에서 거행되는 마을제는 크게 남성과 여성들이 각각 주관하는 포제와 본향 당굿(당굿)으로 구분된다. 포제는 남성들이 주관하는 유교식 제법으로 지내는 마을제이고, 당굿은 여성들이 주관하고 심방(무당의 제주어)이 진행하는 무교식 마을제다.

제주도의 대표적 마을제인 송당리 마을제의 한 장면.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도의 대표적 마을제인 송당리 마을제의 한 장면.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납읍리 마을제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 마을제인 송당리 마을제는 본향당에 모신 당신이 ’여신’으로 무교식 포제의 전형을 간직하고 있다. 본향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모신 사당이자 ‘당 신앙’의 뿌리로 본향당 신화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본래 송당리에는 세 마을에 각각 따로 신당이 있었다. 윗송당에는 농경신이자 여신인 금백주, 샛송당엔 세명주, 알송당엔 수렵 목축신이자 남신인 소로소천국이란 신이 있어 제사를 지냈다. 세 송당 중 샛송당 알송당은 없어진 지 오래며 윗송당만 남았다. 금백주는 외래의 여신이고, 소로소천국은 토박이 남신으로 두 신이 부부가 되어 아들 18명, 딸 28명을 두어 자손들이 제주 전 지역 368개 마을의 신(본향당 신)이 되어 좌정했다고 한다. 지금도 송당리 마을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부녀자들이 송당리마을제에 참여해 마을의 무사안녕과 가정의 행운을 빈다. 송당리마을제는 제주도 당굿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학술 가치가 높고 연구자들이 자주 찾는다. 이와 함께 마을별 본향당제, 할망당제 등도 잇따라 열린다.

마을제가 한창일 때 제주 시내 한복판에서는 ‘탐라국 입춘굿’이 새해를 맞는다. 이는 지상에 있는 신들의 역할과 임무가 바뀌는 ‘신구간’이 끝나고 새로운 신들이 오는 ‘새 철 드는 날’인 입춘에 민, 관, 무가 하나 돼 벌였던 축제다. 탐라국 입춘굿은 탐라국(기원전 57~1402년) 시대부터 풍농을 비는 거리굿을 중심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끊겼다가 1999년 복원돼 해마다 열리고 있다. 당시 입춘굿을 복원한 민속학자 문무병(66) 박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의 의미와 탐라의 풍요를 기원하는 국제의 의미가 있는데 아직 두 의미를 온전히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1841년 조선시대 제주 목사 이원조가 쓴 <탐라록>에는 탐라국 왕이 몸소 농사를 지으며 농업을 장려하던 풍속과 함께 풍년을 기원하며 치르던 의식에서 탐라국 입춘굿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탐라국 입춘굿 놀이에는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들인 설문대여신, 영등신, 대별왕, 소별왕과 자청비 등을 형상화한 제주신화 신상등이 선보이며, 탐라왕이 직접 쟁기를 끌며 밭을 가는 모의농경 의례인 ‘낭쉐몰이’(나무로 만든 소 몰이)도 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음력 2월을 제주에서는 ‘영등달’이라 부른다.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제주를 찾을 무렵 제주 바다는 거칠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1일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로 들어와 보름날인 15일 우도를 거쳐 떠난다고 전해진다. 영등할망은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바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씨를 뿌려 제주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풍요의 신이다. 이 기간에는 해녀들은 물질을 하지 않고 집안일도 조심스럽게 한다. 영등할망이 떠난 뒤에는 제주바다가 잔잔해진다고 한다.

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앙등할망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어민들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오는 26일(음력 2월1일) 영등환영제를 제주시수협 위판장에서, 다음 달 11일(음력 2월 14일) 열리는 영등송별제는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연다. 환영제 때는 어부와 해녀 등이 모여 간소하게 치러지지만, 송별제 때에는 주민과 관광객들도 모여 온종일 큰 굿판이 벌어진다. 영등할망이 떠나는 우도와 인근 마을 온평리 등지에서는 음력 2월 15일 굿이 열린다.

제주 영등굿은 조선시대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2월 초하루에 제주의 귀덕 김녕 애월 등지에서 영등굿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섬 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전통, 자연관과 신앙을 모두 담고 있는 굿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목장에서 지내는 ‘마불림제’가 있다. 백중날인 음력 7월 15일이 되면 마을 본향당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마불림제와 목축의 신을 위한 ‘테우리코시’(목동이 지내는 고사)가 있다.

제주의 마을에는 ‘본향당’이라 해서 마을의 중심이 되는 신앙처가 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와흘본향당.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의 마을에는 ‘본향당’이라 해서 마을의 중심이 되는 신앙처가 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와흘본향당.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해안마을 주민들에게 해녀와 어민들의 무사 안녕과 풍어가 중요했던 반면, 중산간 지역 주민에게는 마을 공동목장에 방목한 소나 말의 번성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 때문에 중산간 지역 주민들의 민간신앙은 농경의 풍요와 소나 말의 번성을 위한 의식과 깊은 끈을 맺고 있다. 마을 본향당에서 당굿으로 치러지는 마불림제는 이런 주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장마가 끝난 뒤 신에게 바친 옷이 습기로 인한 마(곰팡이)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고, 신에게 풍년과 우마의 번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대부분 음력 7월 14~15일 사이에 치러진다.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해온 제주 전래의 세시풍속인 마을제와 마불림제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제주도의 굿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의례이다. 상징적인 의례를 통해 주민 간 친화와 공동체의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만8천 신들의 고향 제주도. 제주의 무속문화를 즐겨보는 것도 제주 알기의 방법이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1.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단독] ‘문학사상’ 다시 존폐 기로…부영, 재창간호 인쇄 직전 접었다 2.

[단독] ‘문학사상’ 다시 존폐 기로…부영, 재창간호 인쇄 직전 접었다

SNL 한강·하니 패러디 여진 몸살…“비하· 차별” “과한 잣대” 3.

SNL 한강·하니 패러디 여진 몸살…“비하· 차별” “과한 잣대”

한강을 ‘2순위 후보’로 꼽은 이유 [The 5] 4.

한강을 ‘2순위 후보’로 꼽은 이유 [The 5]

임영웅, BTS 넘었다…공연 실황 영화 ‘흥행 1위’ 5.

임영웅, BTS 넘었다…공연 실황 영화 ‘흥행 1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