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제주는 미식의 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높은 산과 깊은 바다가 공존해 각가지 식재료가 풍부하고 ‘낭푼밥상’ 같은 향토 음식의 전통도 길다. 여기에 5~6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요리사들의 이주’도 큰 이유가 되고 있다. 화려한 서울에서 활동하던 유명 요리사들이 제주로 내려가 신선한 제주 식재료를 무기 삼아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인 연 레스토랑들은 고기 국수나 멜(멸치)국 같은 서민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의 번화가인 청담동 등의 고급 레스토랑 뺨칠 정도로 화려하다. 여러 번 제주를 찾은 여행객은 제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식도락에 열광한다. 빌딩 숲이 아니라 바람이 곁에서 불고 푸른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곳에서 맛 이상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샤리(초밥의 밥)를 꾹 집어 바다가 키운 제주 생선을 붙이는 ‘스시호시카이’(Sushi Hoshikai)의 임덕현(42) 셰프는 한국의 초밥왕인 안효주 선생의 제자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2014년 3월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을 찾았다. 그는 일본 요리학교 등에서 일한 경력까지 합치면 꽤 수준 높은 요리사다. 그런 그가 서울이 아닌 고향 제주에 고급 스시집을 연 이유는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바다”를 잊지 못해서였다. 썰물에는 맨발로 뛰어들어가 문어와 성게를 잡는 일이 일상이었다. 생선의 팔딱이는 정도만 봐도 신선도를 금세 알아채는 그의 실력은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셈이다. 그가 연 ‘스시호시카이’는 제주에서 거의 처음 생긴 고급 스시집이다. 해산물이 많아 스시집도 넘쳐날 듯하지만 의외로 없는 편이었다. 수준 높은 조리 기술자가 없으면 맛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음식이 스시다. 자리돔 초밥, 돌돔 초밥 등의 스시호시카이의 메뉴다. 재료는 서울 청담동 수준인데 가격은 거기보다 훨씬 저렴하다.
빵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제과제빵사인 정승(36)의 ‘보엠’(BoHEME)은 제주도민보다 육지 사람들이 손님의 반일 정도 유명해졌다. 정씨는 서울의 ‘마인츠돔’, ‘나폴레옹’ 등에서 실력을 닦았다. 유기농 재료로 사용해 만드는 고급 빵이 메뉴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주에 그가 내려온 이유는 건강한 빵을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건강하고 맛있는 빵은 공기와 물이 좋아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제주의 형상화한 ‘백록담시크릿’ 등의 빵은 금방 동난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자가 솜씨를 펼치는 레스토랑도 있다.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제주’의 ‘밀리우’(Milieu)의 총책임자인 박무현(33) 셰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스토랑 ‘더 테이트 키친’에서 5년 넘게 일하면서 부주방장까지 오른 이다. ‘더 테이트 키친’은 <미쉐린가이드>와 쌍벽을 이루는 영국의 레스토랑 평가 행사인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매년 상위에 오르는, 전 세계 요리사들이 일하고 싶은 레스토랑이다. 일찍이 그의 명성을 들은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제주’ 측이 공을 들여 지난해 그를 영입했다. 그는 ‘더 테이트 키친’의 주인 겸 요리사인 ‘루크 데일 로버츠’(Luke Dale Roberts)의 뛰어난 솜씨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그만의 감각을 더해 ‘박무현 표 맛’을 세상에 내놨다. 제주 식재료가 결합한 그의 밥상은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떠도는 아프리카가 연상된다. 레몬과 꿀에 절인 비트로 만든 칩을 만들고, 그라니타(일종의 얼음과자) 위에는 우리네 김치의 한 종류인 동치미를 부었다. 토마토 소르베, 토마토 젤리, 토마토 피클 등이 한 접시에 담아 나오고, 제주 밤바다의 일몰을 표현한 고등어요리는 예술작품이다. 소금과 향신료에 1주일 동안 담근 우설(소의 혀)은 24시간 저온 조리해 맛을 낸다. 시식메뉴코스를 다 경험하면 황홀하다.
■주소
스시호시카이 : 제주시 오라 2동 959-1/오마카세 점심 12만원, 저녁 17만원
보엠 : 제주시 노형동 731-2/ 개당 2500~3000원
밀리우 : 서귀포시 표선면 민속해안로 537/ 8만 원대~13만 원대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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