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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두 바퀴로 만난 제주, 2박3일 환상 자전거길을 가다

등록 2017-05-25 12:07수정 2017-05-25 14:48

[제주&] 김보근 기자의 제주 자전거길 일주
바퀴가 두 산을 끼고 달리는 듯
두 섬 사이에서 물 위를 가는 듯
뭍과 바다의 경계 흐릿
환상도로 일주는 색다른 인생학교
김보근 기자가 지난 9일 자전거를 타고 성산 일출봉 근처 해변의 올레길을 달리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김보근 기자가 지난 9일 자전거를 타고 성산 일출봉 근처 해변의 올레길을 달리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자전거를 타면 새로운 제주를 만나게 된다.

지난 5월 초 3일 동안 234㎞의 ‘제주 환상 자전거도로’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제주시 용두암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진행한 자전거 일주는 해거름 마을공원, 쇠소깍, 성산 일출봉 등 환상도로 곳곳에 있는 10개의 자전거 인증센터를 모두 통과한 뒤 다시 용두암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평균 시속 15㎞. 빠르지 않은 속도지만 시속 60㎞의 자동차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제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라도 된 양, 때론 부드럽게 때론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출발점인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해안에 접한 자전거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는 동안 “아, 정말 제주에 와 있구나” 하는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이 제주임을 느끼게 한 것은 구멍 난 검은 화산암이 길게 펼쳐진 해안가 풍경만이 아니다. 자전거가 가로지르는 바람 속에 비릿하면서도 신선한 갯내음이 먼저였다. 자전거는 그렇게 눈뿐만 아니라 코로, 귀로, 피부로, 마침내 온몸으로 제주를 느끼게 한다.

김보근 기자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2리 어촌계 앞 노을해안로를 지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김보근 기자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2리 어촌계 앞 노을해안로를 지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제주의 바닷가가 자전거 여행자의 마음을 붙잡아서인지 페달을 밟는 발이 점점 느려진다. 결국 가다 서기를 반복하게 된다. 조금씩은 다른 해안선과 넓게 또는 좁게 퍼져 있는 검은 화산암, 그리고 바위 사이를 채우는 바닷물이 자전거 바퀴가 어디에 멈추어서더라도 한 폭의 그림이 돼 유혹하기 때문이다.

큰 날개 세 개를 단 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즐비한 신창 풍차해안을 바퀴 뒤로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바닷가에 차귀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으로는 수월봉도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선의 깊은 굴곡을 따라가다 보면 뭍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 차귀도가 뭍에 이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음 순간엔 수월봉 주변 밭을 감싸고 있는 검은 화산암 돌담들이 마치 물결치는 파도인 양 다가오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것이 섬이고, 어떤 것이 산이란 말인가.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가 두 산을 끼고 달리는 듯도 하고, 두 섬을 사이에 둔 채 물 위를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해안선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벌써 모슬포가 가까워졌다. 자전거길 옆에 놓여 있는 긴 의자에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바닷가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다시 자전거를 멈춘다. 그들은 걸어서 제주도를 여행하던 올레꾼인지도 모른다. 혹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 빈 의자의 매력에 빠져 순간 차를 세웠을 수도 있다.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은 지금 세계에서 유일한 그들만의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다. 주변에 제법 자란 소나무가 병풍인 양 서서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방해가 될까 싶어 얼른 페달을 밟은 뒤 한참 떨어진 또 다른 빈 의자를 찾아 앉아본다. 그곳도 바로 바닷가에 있는 나만의 카페가 된다. 잠시 수평선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김보근 기자가 9일 이른 아침, 전날 밤 하루를 보낸 서귀포시 안덕면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며 주인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김보근 기자가 9일 이른 아침, 전날 밤 하루를 보낸 서귀포시 안덕면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며 주인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휴식으로 조금 가벼워진 몸으로 송악산을 지나자 환상도로의 방향이 동쪽으로 바뀐다. 어느새 제주도 남쪽 해안을 지나고 있다. 서귀포에 가까워지면서 도로의 오르내림이 다소 커진다. 자전거 기어를 가볍게 바꾸어도 숨을 크게 몰아쉬며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다. 몇 번을 힘든 페달질을 한 뒤 문득 요령을 터득한다. 오르막이 나오면 제법 멀리서부터 도움닫기를 하듯 페달을 빨리 밟아야 조금은 쉽게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떠오른다. ‘아 그때 노력이라는 페달을 좀 더 일찍 밟았다면, 내 인생의 그 고개도 조금은 쉽게 넘을 수 있었을 텐데.’ 순간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하나의 인생학교라는 생각에 가볍게 웃음이 번진다.

김보근 기자가 쇠소깍 자전거 인증센터에서 등록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김보근 기자가 쇠소깍 자전거 인증센터에서 등록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성산 일출봉을 향해 가는 자전거도로에서 길지 않은 시간 지나가는 자동차도 걸어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는 ‘나홀로 라이딩’을 경험한다. 길 위에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인지, 제주를 나 혼자 차지하게 됐다는 충족감인지 모를 감정이 가슴속에 피어난다. 그 묘한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닷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바람이 세진 모양이다. 파도도 바람 소리에 호응해서 처얼썩 소리와 함께 바위를 때리고 흰 물거품을 하늘 높이 솟게 한다. 바람과 파도가 건네는 말을 들으면서 ‘바람 많은 제주’라는 말을 몸으로 느낀다.

바람이 걸어오는 말이 아니었다면 성산읍에서 김녕 해수욕장까지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다양한 불턱의 의미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을 한 뒤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는 곳이다. 족은 영산이 왓 불턱, 벳 바른 불턱, 고망난 돌 불턱, 돌청산 불턱, 종달리 불턱, 독터럭 밭 불턱, 보시코지 불턱, 모진다리 불턱…. 화산암을 차곡차곡 쌓아 혹은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작은 성처럼 만든 불턱들이 바닷가에 나타날 때마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세히 살펴본다.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도 이리 차가운데 물길 들어가는 해녀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하는 마음에 불턱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제주 해녀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김보근 기자가 서귀포시 하효동 하효항 인근 제주올레 6코스 부근을 지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김보근 기자가 서귀포시 하효동 하효항 인근 제주올레 6코스 부근을 지나고 있다. 제주/정용일 기자
함덕 서우봉해변과 조천읍을 지나 다시 용두암으로 돌아오면서 250㎞ 가까운 자전거 여행을 마치자 다리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왠지 모를 성취감에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제주도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무엇보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서는 다양한 길을 지나야 한다. 그 길은 때로 아스팔트로 된 매끈한 길이었고, 해안가 보도블록이었으며, 마을을 지나는 올레길이기도 했다. 자동차를 탔다면 느끼지 못할 그 길들의 차이를 자전거의 타이어는 그대로 온몸에 전달해 준다. 어떤 길이든 비껴갈 수 없다. 그 모든 길을 통과해야 ‘제주도 일주’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내 두 바퀴로 이 모든 길을 통과해 하나의 큰 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론 속삭이는 듯하고, 때론 화난 듯도 한 제주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은 참 색다른 인생학교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 김보근 선임기자는 ‘자전거 여행안전 가이드’와 ‘자전거 정비사 1급’ 자격증을 딴 자전거 마니아로 3년 넘게 한강 변을 따라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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