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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이중섭의 추억 따라 서귀포 밤거리를 걷다

등록 2017-07-13 11:26수정 2017-07-13 14:58

[제주&]서귀포 밤 기행

퇴락한 극장서 음악의 향연
이중섭거리를 밝히는 공방의 불빛
매일올레시장의 신선한 회 별미
밤에 더 운치있는 천지연폭포
새섬을 잇는 새연교의 황홀한 아름다움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의 옛 서귀포 극장에서 음악공연이 열리고 있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의 옛 서귀포 극장에서 음악공연이 열리고 있다.
서귀포는 문화예술의 도시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중섭(1916~1956)이 살았고, 서예계의 거봉 소암 현중화(1907~1997)가 살았다. 제주시 앞바다가 섬이 없는 넓디넓은 바다의 모습이라면, 서귀포 앞바다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새섬을 비롯해 범섬, 문섬이 바다 한가운데 점을 찍고 있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저녁 무렵의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하루의 관광을 마친 관광객들과 찬거리를 사러 온 주민들이 몰려 활기찬 모습이다. 시장에는 구경하거나 물건을 사다가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가게와 가게 사이에는 조그만 개울처럼 물도 흐르게 했다. 울산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제주여행에 나선 배수한(29)씨는 “주차하기가 편하고, 시장이 깨끗하다. 접근성이나 편리성이 좋은 아름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의 여느 전통시장처럼 생선과 감귤, 각종 특산물을 판다. 특히 이곳의 횟집들이 유명한데 연근해에서 잡은 횟감들이 수족관을 채우고 관광객과 주민들을 유혹한다.

이중섭 거리의 불 밝힌 공방.
이중섭 거리의 불 밝힌 공방.
분주한 매일올레시장 입구를 지나면 이중섭로와 만난다. 화가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1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제주 생활은 영원히 그를 기억하게 했다. 이중섭거리는 350여m의 짧은 구간이다. 이곳에는 이중섭이 살았던 주거지와 이중섭 미술관이 있고, 옛집들을 크고 작은 공방과 문화예술 카페, 창작 스튜디오로 개조한 곳들이 곳곳에 있다. 밤이 되면 공방의 불빛들이 문화예술 거리를 빛낸다.

지난 1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자 이중섭거리에 음악 소리가 퍼졌다. 음악 소리가 난 곳은 외관이 허름해 보이는 옛 서귀포극장.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반전이 이루어졌다. 극장은 지붕을 헐어내 벽체만 남겼고, 사각형의 콘크리트와 벽체를 뒤덮은 녹색식물이 훌륭한 무대 배경이 됐다. 서귀포극장은 1963년 10월 당시 서귀읍 최초의 극장으로 문을 열어 전성기를 누렸으나, 쇠락의 길을 걷다가 1999년 문을 닫았다. 2015년 4월 재개관해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날 열린 ‘오마르와 이스턴파워’의 공연에는 지역주민과 관광객, 외국인들도 관람석을 메웠다. 이곳에서 15일 오후 7시에는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김대중의 블루스 공연이, 16일 오후 7시에는 숨비소리 시낭송회, 22일 오후 7시에는 J댄스 스튜디오의 댄스 공연이 열린다. 이어 28일 오후 8시30분부터 이중섭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눈>이 상영된다.

자구리 문화예술공원 전경.
자구리 문화예술공원 전경.
이중섭거리에서 자구리문화예술공원까지는 770여m다. 중간에 ‘서귀소옹’(西歸素翁)으로 알려진 소암 현중화 기념관이 있다. 1일 오후 자구리해안 앞에 있는 섶섬의 봉우리 부분이 구름에 가려 있었다. 섶섬에 구름이 덮이면 비가 온다는 말이 전해진다. 안개가 살포시 자구리해안을 덮었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서귀포 앞바다를 배경으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오후 6시 오색 불빛과 함께 분수가 치솟자 가족들과 산책 나왔던 아이들이 분수 속으로 들어가 더운 여름밤을 시원함으로 채웠다. 이중섭도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이곳 자구리해안에서 부인과 5살, 3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여름 밤 이곳에서는 섬과 섬 사이에 고기잡이하는 배들의 불빛이 보인다. 공원 주변도 칠십리 음식 특화 거리이고, 카페들이 즐비하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섶섬과 바다도 예쁘다.

공원에서 서귀포항을 끼고 천지연폭포까지는 1.8㎞. 낮에 보는 천지연폭포도 장관이지만, 밤에는 주변의 암벽과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띤다. 천지연폭포의 입장 마감 시간은 오후 9시20분, 관람 마감 시간은 밤 10시다.

천지연 폭포의 야경.      서귀포시 제공
천지연 폭포의 야경. 서귀포시 제공
천지연폭포는 절벽으로 둘러싸였다. 청음 김상헌은 제주 여행기 <남사록>에서 “양쪽에 석벽이 에워싸고 있어 동구(洞口, 동네 어귀)를 이루었는데 들어갈수록 아름답다. 동구 속의 나무는 모두 겨울에도 푸르다”고 기록했다. 실제 난대림 지대답게 나무가 우거져 시원한 느낌이다. 담팔수나무와 사스레피나무, 천선과나무, 곰솔, 후박나무, 먼나무, 올벚나무, 조록나무, 산유자나무, 굴거리나무, 참식나무 등 늘 푸른 난대의 나무들이 서로 엉켜 조화를 이루며 공생한다. 폭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거나 셀카를 찍는 관광객들이 폭포수를 보며 낮의 피곤함을 씻어낸다. 노란 불빛을 받은 폭포는 신비로움과 함께 청량함을 선사한다.

1일 새연교 다리아래서 한여름밤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1일 새연교 다리아래서 한여름밤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천지연폭포 매표소에서 700여m 거리에 새연교가 있다. 새섬을 잇는 다리, 또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는 다리란 뜻이다. 서귀포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새연교를 꼽는 이들이 많다. 가는 길에는 서귀포 바닷가의 여름밤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새연교는 새섬과 연결된다. 2009년 만들어진 새연교는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높이 45m의 주탑과 색색으로 변하는 조명시설로 서귀포항구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곳을 건너면 새섬이다. 섬에는 1.2㎞의 산책로가 조성돼 밤 산책을 즐기는 관광객과 도민들이 찾는다. 개방은 밤 10시까지다. 홍콩에서 여행 온 메이시(25)는 “오키나와와 비슷한 느낌이다. 홍콩은 너무 덥고 습한데 이곳은 조용하고 편안하다. 정말 좋다”며 활짝 웃었다. 제주도민들도 여름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새연교 밑에서는 ‘한여름 밤의 꿈’을 주제로 시민콘서트가 열려 여름밤의 무더위를 잊게 했다. 새연교 시민콘서트는 오는 15일과 8월5일, 8월19일 오후 7시에 열린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부근의 아랑조을거리에도 먹거리가 밀집해 있다.

서귀포/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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