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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미술관이 된 제주의 극장, 모텔, 대학병원, 그리고 김영갑의 폐교

등록 2017-09-01 10:05수정 2017-09-01 10:49

[제주&] 낡은 건물 리모델링한 미술관들
동문시장 앞 산지 천변 낡은 모텔 개조
낡은 제주대 병원도 예술극장으로 탈바꿈
사진가 김영갑이 폐교를 직접 개조한 갤러리
“진짜 무언가를 느끼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2’는 제주 옛 도심을 관통하는 산지천변 모텔 건물을 새 단장한 것이다. 빨간색 건물이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2’.                  아라리오 뮤지엄 제공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2’는 제주 옛 도심을 관통하는 산지천변 모텔 건물을 새 단장한 것이다. 빨간색 건물이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2’. 아라리오 뮤지엄 제공
제주시 원도심을 돌다 보면 새빨간 외관으로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아라리오 뮤지엄’이다. 세계적인 예술수집가인 김창일 관장이 방치된 극장, 바이크숍, 모텔 건물 2동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각각 ‘아라리오 시네마’ ‘바이크’ ‘동문모텔 1·2관’으로 원래 명칭을 그대로 살려 이름을 붙였다. 기존의 도심에 남겨진 오래된 건물의 쓰임과 기억, 역사를 보존하면서 그 안에는 그동안 제주에서 쉽게 만나보기 힘들었던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들로 채웠다.

탑동광장 방파제 부근을 돌다 가장 먼저 들른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는 지하부터 5층까지 앤디 워홀, 우고 론디노네, 나와 고헤이 등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마주하고 있는 탑동바이크숍 1층에는 카페 겸 레스토랑도 있는데, 인테리어가 유럽 한 모퉁이에서 떼어다 놓은 듯 비범했다. 탑동은 바다를 메워서 만든 곳으로, 한때 테마거리가 만들어지고 영화관,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이 들어서는 등 흥청거렸지만 상권이 신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쇠락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름밤 산책로 부근에 앉아 바라보는 노을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풍경이다.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은 옛날 모텔의 흔적들을 살려 두고 있다.                                                                                      제주/박영률 기자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은 옛날 모텔의 흔적들을 살려 두고 있다. 제주/박영률 기자
제주에서 가장 큰 용천수가 솟아난다는 산지천 가에 약 100m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동문모텔 1·2관은 산지천을 따라 만들어진 제주의 옛 거리와 함께 있다. 구도심의 상징이었던 동문시장 코앞에 있는데, 이곳은 1980년대만 해도 제주에서 가장 상업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지만 상권이 신도심으로 이동하면서 쇠락했다. 동문모텔 1관은 기존에 있던 모텔 객실의 낡은 복도와 욕실 등 공간을 그대로 살려 특별한 느낌을 준다. 아라리오 뮤지엄은 올가을 제주 비엔날레와 연계해 9월1일부터 세 작가의 개인전을 동시에 열 예정이다. 동문모텔 2관에서는 천재 조각가 고 구본주(1967∼2003)의 15주기를 기념한 회고전 <아빠 왔다>가, 탑동시네마에서는 한국 후기 단색화를 이끈 작가 김태호의 개인전과 작가 문창배의 <몽돌의 노래>전을 연다.

옛 제주대 병원을 새 단장한 ’예술공간 이아’의 외경.                                                                                                           제주비엔날레 사무국 제공
옛 제주대 병원을 새 단장한 ’예술공간 이아’의 외경. 제주비엔날레 사무국 제공
지난 5월13일 문을 연 ‘예술공간 이아’는 제주시 원도심의 옛 제주대 병원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역시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바이크숍과 함께 삼도 2동에 있다. 작가 레지던시, 전시장, 연습 공간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주변에 50년 전통의 대형문구점 ‘인천문화당’과 메가박스, 중앙성당, 제주 화교소학교 등이 있다. 관덕정이 있는 목관아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다.

16일 이곳을 찾았을 때 뒷마당에 있는 제주의 활엽수들이 여유롭고 느긋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아는 현재 자리한 터가 조선시대 제주목 이아 터라는 점에 착안해 장소의 역사성을 살려낸 명칭이다. 조선시대 제주 목사를 보좌하던 일종의 지방자치기관으로 ‘향소’라 이르기도 했다. 제주에서 목사가 근무하는 현 목관아를 ‘상아’라 했고, 판관 집무처인 찰미헌 등은 ‘이아’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자혜의원이 들어섰고, 그 뒤 제주대 병원으로 활용됐다.

전시 공간은 지하 1층인데 전시 공간으로 전시실 2개 관이 있다. 3층은 교육 공간으로 교육실이자 연습 공간과 소규모 공연장, 카페 등이 들어섰다. 제주 비엔날레 기간에는 김범준, 김태균, 홍콩 작가 리춘펑 등 작가 13인의 작품을 통해 제주 원도심과 예술 그리고 관광의 관계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가장 제주다운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영갑갤러리 외경.                                                                                              제주/박영률 기자
가장 제주다운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영갑갤러리 외경. 제주/박영률 기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성산읍 삼달리에 폐교된 옛 삼달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사진가 김영갑의 사진을 보관 전시하는 곳이다. 워낙 유명한 곳으로,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2015-2016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미술관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

김영갑 갤러리 한 쪽에 있는 무인 카페에서는 잘 다듬어진 정원이 보인다.                                                                                제주/박영률 기자
김영갑 갤러리 한 쪽에 있는 무인 카페에서는 잘 다듬어진 정원이 보인다. 제주/박영률 기자
사진가 김영갑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생을 궁핍 속에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오다, 병원에서 루게릭병으로 생의 유효기간이 4~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그동안 찍어둔 자신의 사진과 필름들이었다. 생명 같은 사진들을 곰팡이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는 폐교를 임대해 손수 갤러리로 꾸민다. 2006년 그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갤러리는 남아 해마다 10여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제주의 가장 뜨거운 미술관이 되었다. 갤러리 입구에는 김영갑이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에서도 손수 가꾼 야외 정원이 있다. 제주의 각종 나무와 야생화들이 이곳을 자유롭게 가득 메워 그 자체로 작은 곶자왈이다. 갤러리 한쪽에 있는 무인 카페는 정원 쪽으로 큰 창이 나 있어 갤러리의 여운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미술관 안쪽에는 김영갑이 숨을 거두기 전 출연한,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인터뷰에서 김영갑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제주의 그 어떤 질긴 생명력, 그걸 표현한 거지…그러니까 이 공간(두모악)은 진짜 뭔가를 느끼려고 하는 사람이 찾는 공간으로 생각하는 거죠.”

김영감 갤러리 전경                                                                                                                                                 제주/박영률 기자
김영감 갤러리 전경 제주/박영률 기자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바이크숍

제주시 탑동로 14·탑동로4길 6-12/064-720-8201/8204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 1·2

제주시 산지로 37-5·37-23/064-720-8202/8203

예술공간 이아

제주시 삼도2동 중앙로14길 21/064-800-9330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064-784-9906

제주/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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