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동부지역 관광지 순환버스는 중산간 오름 지역을 달린다. 관광지 순환버스가 아부오름 정류소를 지나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제주도의 대중교통이 확 바뀌었다. 지금까지 제주 하면 렌터카 여행이 떠올랐지만 앞차 꽁무니를 따라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풍경을 놓칠 수 있다. 여행 도중 막걸리 한잔을 마음 놓고 걸칠 수 있고, 마을과 명승지 풍경을 구석구석 느리게 즐길 수 있는 버스 여행은 렌터카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나 홀로 뚜벅이 여행자에겐 더욱 유용하다.
그동안 자가용이나 렌터카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제주 서부 중산간 지역도 이제는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고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제주도의 대중교통 전면 개편과 함께 신설된 동·서부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고 새로운 제주 여행을 떠난다.
제주공항 도착 출구를 나오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제주공항 도착 출구를 나오면 제주도 전역을 연결하는 버스가 기다린다. 이 버스를 타고 제주시 구좌읍 대천동(동부)이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서부)의 버스 환승센터(정류장)에서 내려 관광지 순환버스로 갈아타면 중산간 지역의 오름과 명승지를 만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다.
지난 14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서부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기 위해 동광환승센터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쳤는데, 정확하게 30분 뒤인 10시39분에야 빨간 급행버스(150-1)가 도착했다. 배차 간격이 조금 길다고 느껴졌다. 제주 버스정보 앱을 통해 미리 버스 시간을 알아두면 좋을 듯싶었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버스에 올랐다. 급행버스는 20㎞를 넘으면 5㎞마다 요금이 추가되지만 4000원을 넘지 못한다. 공항에서 동광환승센터까지는 3500원이다.
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신제주를 거쳐 평화로를 따라 동광환승센터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는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치자 와이파이가 개통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청명한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수평선 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조그맣게 보인다. 버스는 초원과 오름 지대를 지났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새별오름의 능선 위로 새털구름이 얹혀 있고, 한 무리의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로웠다.
제주 서부관광지 순환버스가 평화박물관 정류소 옆을 지나고 있다. 제주/박승화 기자.
급행버스가 출발한 지 불과 40여분 만에 동광환승센터에 도착하자, 노란 서부 관광지 순환버스(820-2)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환승센터에서 출발하는 관광지 순환버스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30분 간격(오전 11시~오후 2시는 1시간 간격)으로 양방향으로 순환한다. 국내여행안내사 자격증을 가진 교통관광 도우미가 함께 타 관광지 설명 등 다양한 관광정보를 들려준다. 이 버스는 전체 구간을 탑승하든, 1구간만 탑승하든 요금은 1인당 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1150원(현금 1200원)이다.
신화역사공원 테마파크 입구. 제주/허호준 기자
이날은 버스 노선(노선도)의 여러 명승지 중 신화역사공원과 오설록 녹차밭, 저지예술인마을의 미술관들과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을 돌아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오전 11시30분 출발과 함께 교통관광 도우미의 관광지 소개가 이어졌다.
동광환승센터에서 신화역사공원까지는 버스로 3분이 걸렸다. 도우미의 간단한 관광지 소개는 정보를 미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제주신화역사공원은 사업비 2조원 이상을 들여 홍콩계 자본이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시설에 테마파크와 놀이공원, 워터파크 등을 갖춘 거대한 복합 리조트로 개발하고 있는 곳이다. 오는 30일 테마파크 7개 존 가운데 3개 존 개장을 앞두고 한창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세계의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라바’ 등 국내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개장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한라봉’ 모형도 눈길을 끌었다.
제주 오설록티뮤지엄 녹차밭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1시간 뒤 순환버스를 다시 타고 제주오설록티뮤지엄으로 달렸다. 관광객들이 파란 하늘과 녹차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변 식당에서 점심과 함께 걸친 막걸리 한잔이 꿀맛이었다. 운전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다음엔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제주현대미술관 앞에서 하차했다. 밭과 돌담으로 이뤄진 마을길이 있는 제주 중산간의 자연과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 2일부터 12월3일까지 진행되는 제주비엔날레의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인접한 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개관 1주년을 맞아 특별 소장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입구. 제주/허호준 기자
1시간 남짓 문화예술의 세계에 빠졌다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저지오름에 도착할 때쯤, 버스 안에 함께 탄 관광 도우미가 200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받을 만큼 유명한 오름으로 탐방에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소개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중산간 마을의 농가주택 옆에는 콩과 고추가 익어가고 있었다. 버스는 저청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청수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자 백록담과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주민들은 밭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돌담 위 호박 넝쿨도 정겹게 다가왔다. 산양 곶자왈을 지나고, 신평리와 구억리, 서광서리와 동리 등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거쳐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에서 내렸다. 이름만 들어도 멋진 명차들이 전시돼 있다는 도우미의 말처럼, 세계의 희귀한 클래식 자동차 90여대를 한번에 보는 호사를 누렸다. 미니 자동차 체험관도 있고, 직접 시운전도 할 수 있었다. 30분 남짓 둘러본 뒤 오후 4시 6분에 탑승하고 동광환승센터로 돌아왔다. 4시15분이었다. 제주시 방면 정류장으로 가자 공항으로 가는 빨간 급행버스(150-1)가 오고 있었다.
제주/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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