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 버스 정류장에서 관광객들이 성산포항으로 가는 빨간색 급행버스에 오르고 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저렴하게’를 구호로 내세우며 제주도의 대중교통 체계가 지난 8월26일부터 전면 개편됐다. 제주지역에서는 처음 이뤄진 대중교통 체계의 완전 개편은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주도 인구는 2011년 58만3000여명에서 지난해 말 66만1000여명으로 5년 새 13.4%가 늘었고, 관광객은 같은 기간 874만여명에서 1585만여명으로 81.3%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이 시기 도내 운행 자동차는 25만7000대에서 35만2000대로 36.7%나 늘어났다. 좁은 섬에 주민과 관광객, 자동차가 한꺼번에 많이 늘어나면서 교통 혼잡이 대도시 못지않게 갈수록 심해졌다. 관광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도 불편이 컸다. 제주도가 대중교통 체계를 완전히 개편한 이유다.
이번 대중교통 체계 개편은 △버스요금체계 단일화와 급행버스 노선 신설 △버스 증차와 디자인 개선 △관광지 순환버스 신설 △환승센터와 환승 정류장 개선 △버스정보시스템 확충 △버스 우선차로제 도입 등이 핵심이다.
제주 대중교통체계 개편 핵심 내용과 급행버스 노선도. 한겨레신문사
요즘 제주에서 버스를 타면 버스 안 화면기(모니터)에서 “시내버스 요금 1200원이면 도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광고 영상이 흘러나온다. 과거 도심에 있는 동 지역과 일부 읍·면 지역만 다니던 시내버스를 제주도 전체로 넓혀 단일버스 요금체계로 만든 것이다. 공항이 있는 제주시에서 거리가 먼 서귀포시까지 일주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도 1150원(현금은 1200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급행버스 요금은 20㎞까지는 2000원, 그 이상은 5㎞마다 500원씩 더해 최대 4000원이다. 교통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내면 거리에 상관없이 최대요금을 내야 하니 교통카드를 쓰는 게 좋다. 교통카드를 이용해 급행버스를 타면, 탈 때 기본요금(2000원)이 결제되고, 내릴 때 목적지까지 구간요금이 더해져 결제된다.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30분에서 40분으로 늘어났다.
버스도 많아지고 빨라졌다. 제주국제공항을 기점으로 일주도로, 평화로, 번영로 등을 달리는 12개 노선의 급행버스가 새로 생겼다. 제주도 어디든 1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다. 이전에는 제주도에서 달리던 버스는 530대였지만 267대를 늘려 797대의 버스가 제주도 구석구석을 달린다.
버스 디자인도 확 바꿔 이용객들이 버스 색깔만 보면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통일했다. 그동안 회사별로 버스 색깔이 달랐는데, 공항과 버스터미널, 주요 환승 정류장을 연결하는 급행버스는 빨간색, 제주시와 서귀포 시내 중심도로를 달리는 간선버스는 파란색, 시내의 작은 도로와 읍·면 마을을 도는 지선버스는 초록색, 중산간 지역 주요 오름과 관광지를 가는 관광지 순환버스는 노란색으로 구분했다. 또 버스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무료 와이파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제주도 동부 관광지 순환버스를 탈 수 있는 대천 환승 센터(정류장).
제주 시내 주요 도로가 막히지 않고,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우선차로제’를 실시한다. 우선차로는 중앙차로와 가로변 우선차로로 구분된다. 중앙 우선차로는 제주시 광양사거리~아라초등학교(2.7㎞) 구간, 제주시 7호 광장~공항 입구(800m)로 24시간 운영된다. 가로변 우선차로는 제주시 무수천사거리~국립제주박물관 구간(11.8㎞)으로, 출퇴근 시간(오전 7~9시, 오후 4시30분~7시30분, 토·일·공휴일 제외)에 적용된다. 우선차로는 노선버스와 전세버스, 택시, 긴급 자동차, 경찰서 승인을 받은 어린이 통학버스만 달릴 수 있다.
제주도는 우선차로제를 시행하면 버스 속도가 중앙 차로는 시속 13.1㎞에서 23.7㎞로 빨라지고, 가로변 차로는 13.9㎞에서 18.3㎞로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중교통 우선차로제는 광양사거리~아라초까지 구간이 개통되는 10월 말이 돼야 효과를 알 수 있겠다.
제주 동부지역 관광지 순환노선에 있는 비자림 정류장에서 관광객들이 관광객 순환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행 초기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제주공항에 설치된 버스정보안내기(BIT)를 통해 목적지를 검색해보니 두 곳이나 작동이 안 되고 있었다. 또 버스 출발·도착 현황만 나왔으며,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판은 없었다. 관광지의 관광지 순환버스를 제외하면, 음성 안내방송이 없거나 중국어 등 외국어 표기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관광지 순환버스가 서는 정류장에는 ‘관광지 순환버스’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버스의 출발·도착 시간표는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카카오 맵’이나 ‘제주 버스정보 앱’을 내려받지 않으면 도착 시간을 몰라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정류장은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 앉아 있으면 더웠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곤 한다. 개폐식으로 만들거나 버스 운행 시간표를 알기 쉽게 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 동부지역 관광지 순환버스 비자림 정류장.
동광환승센터와 대천환승센터는 공사를 시작하지 못해 도로별로 정류장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도 없었다. 지선버스와 노선이 많이 겹치는 것도 문제다. 또 온종일 탈 수 있는 관광지 순환버스 전일권 제도를 시행해서 버스를 때마다 교통카드를 찍거나 1200원씩 더 내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광지 순환버스 도우미는 “서부 순환버스는 마을순환버스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관광지가 아닌 마을을 돌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오름을 도는 동부 순환버스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겨울에도 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부는 함덕해수욕장, 서부는 송악산이나 협재해수욕장 등 대형 관광지 2~3곳 정도는 포함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정훈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대중교통 체계 개편에 따른 관광객과 도민들의 불편 사항을 적극 반영해 정류장 노선도와 시간표 확대, 정류장 시설 환경 개선 등을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글 허호준 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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