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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내 생애 가장 맛있는 굴비정식 먹고…바다 절벽 위 ‘하늘 올레길’ 걷다

등록 2017-10-25 11:33수정 2017-10-25 15:42

[제주&] 추자도 올레 기행

봉글레산 노을길의 아름다운 석양
바닷가 절벽 위의 나바론 하늘길

추자군도 비경 한눈에 등대 전망대
절벽 갯바위 위의 거대한 은빛 십자가
느리게 걸어야 할 추자 올레길
<한겨레> 박영률 기자가 추자도 ’나바론 절벽’ 위에 조성된 ’나바론 하늘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정용일 기자
<한겨레> 박영률 기자가 추자도 ’나바론 절벽’ 위에 조성된 ’나바론 하늘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정용일 기자
제주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육지에서 본다면 제주의 시작은 가장 북쪽에 있는 추자도다. 제주의 끝은 최남단 마라도다. 추자도에서 출발해 제주 서쪽의 가장 젊은 섬 비양도와 가장 낮은 섬 가파도를 거쳐 마라도까지 제주의 시작과 끝에 있는 섬마을들을 돌아봤다. 늦가을, 섬 제주에서 다시 또 다른 섬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마치 세상의 끝을 향해 떠나는 여정처럼 아련하고 쓸쓸하다.

10일 김포공항에서 아침 7시3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떠났다. 제주항 연안터미널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항하는 퀸스타 2호를 타기 위해서다. 추자로 가는 배는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우도나 비양도를 가는 잠깐의 뱃길과는 다르다. 오후에 떠나는 한일 페리호보다 30분 정도 빠른 퀸스타 2호로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난 뒤 도착한 섬마을 항구는 고적했다.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18-1코스 추자도 올레길 탐방에 나서고 싶었지만 안개가 심했다. 유명한 추자도 ‘중앙식당’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굴비 정식으로 점심을 하며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다 오후에 길을 나섰다.

항구부근 면사무소 옆길로 접어들어 추자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 봉글레산을 향해 올라간다. 먼저 만나는 것은 최영 장군 사당이다. 최영 장군이 1374년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로 가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자 추자도에 머무르면서 섬 주민들에게 그물을 만들어 고기잡이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민들이 그 최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제주 상추자도 나바론절벽/20171010/정용일
제주 상추자도 나바론절벽/20171010/정용일
최영 장군 사당을 지나면 봉글레산 노을길이 이어진다. 봉글레산 능선 초입에 일몰 전망대가 있는데 석양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특별히 아름답다고 한다. 봉글레산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면 상추자도의 아기자기한 마을 길을 즐길 수 있다. 이어지는 길은 물빛이 정갈한 후포해수욕장이다. 후포해수욕장에서 나바론 하늘길로 이어지는 길을 찾다가 잠시 헤맸다. 추자도 올레길은 2011년 포장도로를 중심으로 개통했다. 그 뒤 더 좋은 옛길을 찾아 잇는 방법으로 계속 발전한 데다 새 포장도로도 생기고 있어 옛 버전 지도만으로는 조금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나바론 절벽 능선을 따라 새롭게 조성된 나바론 하늘길은 그 절정이다. 배낚시를 왔던 이들이 깎아지른 절벽이 마치 나바론 요새처럼 난공불락으로 보인다고 해서 나바론 절벽으로 이름 붙였다. 바다 위로 난 하늘길이 입이 벌어질 만큼 절경이다. 발아래 펼쳐진 바다에 설치미술인 듯한 동그라미들이 보인다. 가두리 양식장이다.

다소 가파른 절벽 하늘길을 따라 바다의 절경에 취하고 왼쪽으로는 한적한 숲길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덧 눈앞에 하얀 등대가 보인다. 처음에는 가볍게 상추자도만 돌아볼 생각으로 500ml 삼다수 한 병만 가지고 산에 올랐는데 날씨 탓인지 금방 바닥나 갈증이 심해졌다. 염치 불구하고 등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사무실엔 두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물을 주고 친절하게 맞아주었지만 인터뷰는 사양했다.

추자등대에서 내려다본 산책로 전경. 평지까지 긴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추자등대에서 내려다본 산책로 전경. 평지까지 긴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여객선과 화물선, 어부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추자 등대에는 등대산 전망대가 꾸며져 있다. 상하 추자도 등 추자 군도의 비경과 두 섬을 잇는 추자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쉬어갈 벤치도 있다. 하추자도로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하산해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가파른 숲길로 내려오니 상하 추자도를 잇는 추자교가 보인다. 벽화 마을로 이름난 영흥리 마을을 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일정은 추자교에서 시작했다. 전날 무더웠던 날씨와는 달리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부슬부슬 보슬비까지 내린다.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우비를 걸친 뒤 어제 회군했던 추자교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하추자도 올레길에서 만난 소라장식물.
하추자도 올레길에서 만난 소라장식물.
추자교를 건너면 바로 하추자도이다. 상하 추자의 풍경은 조금은 다르다. 상추자가 더 번화하고, 하추자는 전형적인 섬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추자교 삼거리에서 묵리 고갯마루로 올라가면 깊고 아름다운 숲길이 나타난다. 묵리로 이어지는 근사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 묵리 마을과 ‘묵리슈퍼’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도 좋다. 묵리에서 신양항으로 가는 길에 바닷가 언덕길에 있는 묵리 버스 정류소를 만났다. 눈앞에 바다와 무인도가 보이고, 갈대와 억새와 붉은 꽃들이 가을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우러졌다. 풍경에 취해 잠시 버스 정류소에 머무르니 상하 추자를 1시간에 한 차례 왕복하는 공영버스가 들어왔다. 1시간을 투자해 버스를 타볼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버스는 떠나버렸다.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은 하추자도의 항구 신양항으로 이어진다. 신양항은 추자도의 대표 어항이다. 제주와 완도를 오가는 한일 레드펄호가 이곳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상권이 주로 상추자도에 집중돼 있어 한적한 어촌일 뿐이다. 항구 주변에 몇 개의 식당이 있고, 하추자도의 유일한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앞에는 깔끔한 6인용 나무 탁자가 3개 놓여 있어 항구 풍경을 보며 컵라면을 먹거나 캔맥주를 마시기 좋다. 다음 목적지인 모진이 몽돌해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촌 풍경을 볼 수 있는 마을 길을 통과해도 좋고,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도 된다. 몽돌해안은 약 200m가량 이어지는 아늑하고 자그마한 바닷가인데 해수욕 철이 끝나 인적이 드물었다.

황경한의 묘 부근 갯바위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
황경한의 묘 부근 갯바위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
몽돌해안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천주교의 성지가 된 황경한(황경헌이란 기록도 있음)의 묘를 만난다. 황경한은 신유박해 때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숨진 황사영과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다. 황사영의 부인이자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 마리아는 남편을 잃고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됐다. 호송선이 잠시 추자도에 머물자 정난주는 아들 경한이 육지에 도착하면 관노로 살게 될 것을 걱정해 저고리로 싼 뒤 이름과 생일을 적어 갯바위에 두고 떠났다. 어부 오씨에게 발견돼 자란 황경헌은 어머니를 그리다 이곳에서 숨졌다. 황경한의 묘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신대산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경한이 누워 있었음직한 갯바위에 거대한 은빛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 아래 갯바위에서는 무심한 한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추자교 들머리에 세워진 참굴비 모형. 추자도는 전국 최대 참조기 어획지로 참굴비가 유명하다.
추자교 들머리에 세워진 참굴비 모형. 추자도는 전국 최대 참조기 어획지로 참굴비가 유명하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바닷길을 따라 예초포구로 이어지는 예초리 기정길은 추자 올레의 또 다른 절경이다. 예초포구에서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옆에 거대한 엄바위가 횡간도쪽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바윗돌로 공깃돌 놀이 하던 엄 장사가 횡간도까지 건너뛰다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통나무 계단으로 언덕을 오르면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샛길과 추자 군도의 최고봉 돈대산(164m)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있다. 돈대산 정상 정자에 오르면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추자 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돈대산을 내려와 담수장을 지나 해안도로로 추자교에 이른다. 도로변에 코스모스 길이 조성돼 그 향기가 감미롭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어느새 먹먹한 석양이 추자교에 걸려 있다.

추자도/글 박영률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ylpak@hani.co.kr

추자도 전경
추자도 전경

바다 위 첩첩산중 하늘 올레길, 느리게 그리고 함께

■ 추자도 여행법

‘바다에 떠 있는 첩첩산중’

추자도를 일컫는 말이다. 산봉우리들 아래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고개를 돌리면 다시 깊은 산중이다. 그래서 18-1코스 추자 올레는 마치 ‘하늘을 걷는 올레길’ 같은 느낌을 준다. 추자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모두 42개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바다 낚시꾼들이 주로 찾는 섬이었지만, 2011년 올레길이 생긴 뒤부터는 낚시꾼들보다 올레꾼들이 더 많다. 추자 올레 지킴이 김정일씨는 “올레길이 생기기 전 1만5000명 정도이던 방문객이 올레길이 생긴 뒤 5만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총 길이 18.2km인 추자도 올레는 상추자도항을 시작으로 하추자도를 거쳐 돌아오는 코스다. 올레 안내 책자에는 약 6~8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초심자들이 경관도 구경하며 쉬엄쉬엄 걸으려면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로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느리게 돌아볼 가치가 있는 섬이다. 평일에는 고적해 여성 혼자 걷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동행을 구하는 것을 권한다. 제주올레 누리집(www.jejuolle.org)을 참조해 추자 올레길 함께 걷기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추자도 가는 배는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9시30분(퀸스타 2호, 상추자항 도착), 오후 1시45분(한일 페리호, 하추자 신양항 도착) 두 차례 있다. 나오는 배는 하추자 신양항에서 오전 10시30분, 상추자항에서 오후 4시30분 출항한다. 첫날 오전 상추자항에 도착해 상추자도를 돌아보고, 둘째 날 일찍 하추자도 돌아본 뒤 오후 배로 육지로 갈 수도 있다.

상하추자도를 왕래하는 공영버스
상하추자도를 왕래하는 공영버스
일단 상하 추자항에 도착하면 공영버스를 한 번 타보는 것도 재미있다. 버스로 한 바퀴 돌면 낯설던 상하 추자도의 지리가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어느 정류장에서 올라타도 정확히 1시간 뒤 탔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편도 목적지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몇 대 안 되지만 오토바이나 차량을 빌리는 방법도 있다. 연락처는 여객선터미널이나 면사무소에서 나눠주는 추자도 여행 지도에 적혀 있다. 오토바이에 자신이 있다면 반나절 정도 빌려 타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낚시도 즐길거리다. 신양항 방파제와 예초리 해안도로 갯바위 등 상하 추자도에 10여개의 주요 포인트가 있지만, 추자도 낚시의 진정한 매력은 배를 타고 나가는 무인도 갯바위 낚시에 있다. 상추자항에 있는 낚시 전문점들에 부탁하면 새벽에 무인도에 내려주고 저녁에 태우러 오는 ‘무인도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숙소는 가을엔 빈 민박집이 많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가도 좋고, 인터넷 검색 후 예약하면 된다. 추자올레게스트하우스(064-711-1801)에선 이 길을 연 올레 지킴이 김정일씨로부터 올레에 대한 각종 정보와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추자도/글 박영률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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