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포구에 정박한 배들과 비양도 마을 전경. 제주시 제공
제주도 서쪽 협재해수욕장에 서면 바로 눈앞에 비양도가 보인다. 바라보면 불쑥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가을에 혼자 찾기에 좋은 섬이다. 비양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타원형 오름으로 해안선 길이가 3.5km, 동서 및 남북의 길이가 850m, 면적이 0.59㎢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빠른 걸음으로 한두 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어 관광객들이 당일치기 여행을 선호한다. 하지만 마지막 배가 제주로 떠난 뒤 느끼는 늦은 오후와 이른 아침의 고적함이 이 섬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인적 없는 새벽녘 일출과 바닷가 산책도 좋고, 석양을 안주 삼아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재미도 넉넉하다.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기암괴석들 앞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미역들이 보인다.
비양도는 제주에서 가장 늦게 태어난 젊은 섬이다. 고려시대에 화산 폭발로 탄생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에 남아 있다. 비양도 압개포구 선착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표지판에 “고려 목종 5년(서기 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는데 산꼭대기에 4개의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 만에 그쳤으며 그 물이 엉겨 모두 기왓골이 되었다”는 기록을 적어 두었다. 중국 쪽에서 하늘을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는 것은 이 섬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일부 과학자들은 비양도의 나이가 2만7000~3만2000년 정도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섬은 비양도가 아닌 다른 섬이라고 주장한다).
비양도로 가기 위해서는 한림항에 가야 한다.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는 하루 4편이 전부다(9시, 12시, 2시, 4시·요금 성인 왕복 9000원). 10여분이면 섬에 도착하고 도착한 배는 바로 승객을 태우고 한림항으로 돌아 나온다.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압개포구에 도착하면 작은 보건소가 보이고, 그 옆에 TV드라마 <봄날>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비양도는 SBS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비양도를 널리 알린 것은 2005년 고현정 컴백 첫 드라마 <봄날>이다.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일화처럼 비양도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널리 알려졌다. 비양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민박집을 하는 주인 장희숙씨는 “어릴 때는 섬 전체에 식당도 하나 없었고 2000년대 이후에야 항구 부근에 첫번째 식당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식당은 물론 카페도 여러 곳 있다.
비양도를 여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둘러보거나 비양봉을 오르는 것이다. 해안 산책로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다. 항구에서 <봄날> 촬영지 표지판을 지나면 노란색으로 칠한 비양 마을회관 부근에 파란색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카페에서는 자전거도 빌려준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닷가에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만조 때 아기 코끼리가 물에 코를 박고 수영하는 모습과 비슷해 코끼리바위라고 불린다. 코끼리바위를 지나 발길을 돌리면 해안가에 기암괴석을 세워놓은 돌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화산활동으로 인한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갈밭 해변을 걷다 보면 ‘아기 업은 돌’이라는 이름의 기암도 있다.
야생화 공원을 지나 ‘펄랑못’이라는 습지를 만난다. 바닷물로 된 습지로 밀물과 썰물 때 지하로 바닷물이 드나든다고 알려져 있다. 펄랑못에 목재 데크로 산책로 964m를 만들어 생태관찰을 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했다. 펄랑못을 지나면 다시 압개포구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길을 걷다 보면 아주 예쁜 비양분교가 눈에 들어온다. 이 학교에는 학교 선생님 한 분과 어린이 두 명이 있는데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은 제주에 있는 본교로 가서 수업을 받는다.
해발 114.7m의 비양봉은 여느 오름이 그렇듯이 정상까지 거리가 멀지 않은 점이 매력이다. 압개포구 마을 뒤 등산로로 올라도 좋고 코끼리바위를 지나면 만나는 등산로 입구로 올라도 된다. 코끼리바위 부근 등산로로 쉬엄쉬엄 올랐는데 30분이 채 안 돼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는 하얀 무인 등대가 있다. 등대 주변은 푸른 초지인데 염소들이 길을 막고 풀을 뜯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황급히 달아났다. 멀리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협재해수욕장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그 풍경이 근사하다. 누군가 ‘제주 여행의 완성은 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라고 한 말뜻을 비로소 이해한다. 비양도/ 글·사진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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