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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설문대할망·오백장군 형상 거석 숨쉬고 섬사람 피눈물 밴 4·3성담

등록 2018-08-14 11:21수정 2018-08-14 11:40

[제주&] 제주의 돌담과 돌 문화 ②-돌문화 명소

시간 없는 여행객 위한 제주돌문화공원
밭담과 잣담서 만나는 삶의 애환
삼별초 한 서린 환해장성
망자에 대한 의식 엿볼 수 있는 산담
제주돌문화공원에는 제주의 대표적인 석상인 돌하르방 48기가 세워져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에는 제주의 대표적인 석상인 돌하르방 48기가 세워져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의 시 <풀꽃>처럼 제주의 돌담도 그렇다. ‘돌의 나라’ 제주도답게 오래 볼수록 질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돌담이 곳곳에 있다. 제주의 밭과 밭 사이에 난 밭담과 잣담에서 제주의 애환을 만난다면, 환해장성과 4·3성담에서 제주 사람들의 역사를 느끼고, 산담에서는 제주 사람들의 망자에 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무덤 주변에 돌담으로 울타리를 친 산담은 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무덤 주변에 돌담으로 울타리를 친 산담은 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 제주돌문화공원 돌문화공원에서는 제주 돌 문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짧은 여행객이라면 제주의 자연과 돌 문화를 한번에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중심 주제로, 제주의 형성 과정과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돌 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이다.

지난 2000년부터 326만9천㎡(교래자연휴양림 포함) 터에 단계별로 나눠 추진한 제주돌문화공원 조성 사업은 오는 2020년 설문대할망 전시관을 마지막으로 대역사를 끝낸다. 제주돌문화공원은 탐라목석원을 운영했던 백운철 원장이 자신이 평생 모은 기암괴석과 오래된 석물 등 2만여 점을 내놓고, 민관 공동사업으로 직접 뛰어들면서 추진됐다. 공원에 들어서면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돌들이 곳곳에서 숨을 쉰다.

매표소를 지나 신화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전설의 통로’는 공원을 조성하면서 나온 기암 거석들을 활용했다. 짧은 곶자왈 지대를 지나면 보이는 돌박물관의 옥상에는 설문대할망 신화 속 죽솥과 물장오리를 상징하는 지름 40m, 원둘레 125m의 ‘하늘연못’이 시원하게 탐방객을 맞는다. 돌박물관은 과거 생활 쓰레기 매립장이던 곳에 지난 2005년 9천 여㎡ 규모로 지었다. 지하 2층에 수장고, 지하 1층에 제주도 형성 전시관과 자연석 전시관이 있고, 옥상에는 야외무대를 설치했다. 제주에서 나온 수석과 용암구, 머리 모양의 두상석, 화산탄 등 온갖 돌을 만날 수 있다.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의 올렛담.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의 올렛담.
박물관 밖에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찧을 때 사용한 말방아(연자방아) 40여 개를 비롯해 올레(마을 길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양 어귀에 세웠던 돌기둥 정주석, 무덤 양옆에 세워두는 100여 기 이상의 동자석들이 전시돼 장관이다. 수백 개의 옹기 항아리를 엎어 놓은 것도 볼만하다. 오백장군 갤러리 앞에는 신화 속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거석들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문화전시관에서는 돌 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다. 제주의 전통 초가 마을을 재현한 50동의 초가는 제주의 옛 마을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올렛담과 집담, 통시(화장실)담, 밭담 등 옛 제주 돌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돌문화공원에는 3개의 탐방 코스가 있으며, 코스별로 1시간 안팎 소요된다.

주소: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전형적인 밭담의 모습.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전형적인 밭담의 모습.
■ 밭담 제주의 돌담 중 가장 많은 것이 밭담이다. 제주 밭담은 제주 섬이 만들어지고 제주인들이 땅을 일구기 시작한 이후 장구한 세월 동안 쌓아 올린 농업유산이다. 밭담은 제주 섬사람들에게 생활 그 자체다. 밭의 크기와 거리, 바람의 세기에 비례해 밭담의 길이와 높이가 정해졌으며, 밭과 밭, 밭과 길, 밭과 목장을 구분하기 위해 쌓아 올려졌다.

백호 임제는 1577년 제주기행문 <남명소승>에서 “밭을 갈아먹으려면 반드시 돌담을 둘러쌓으며, 사람이 사는 집 또한 돌을 쌓아 높다란 담장을 만들기 때문에 돌담으로 골목을 이룬다”고 했다. 밭담은 농토의 경계 유지와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바람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했으며, 말이나 소의 침입을 막는 등 제주인들의 농업의 지혜와 역사가 담겨 있다.

제주는 밭담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화산섬이다. 제주는 지역에 따라 지표에서 50cm∼1m 아래는 거의 암반이다. 농민들은 밭을 일구며 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을 파내고, 밭담을 만들었다.

밭담은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제주 동부 지역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김녕리, 월정리, 하도리에 이르는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이 지역에서 해안가는 물론 일주도로 주변 위쪽 중산간 돌담의 자연스러운 선을 만날 수 있다.

서부 지역에서는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가 중심이다.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는 ‘수류촌 밭담길’이 조성됐다. 2016년에 세계중요농업유산인 제주 밭담을 활용한 농촌 마을 선도사업으로 조성됐다. 1970년대 만든 새마을 협동창고에서 출발해 조그마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밭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이 보인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솔길 가의 밭에는 돌벽(잣벡담)이 보이고, 돌무더기(머들)도 보인다. 조선시대 진성인 명월성지를 끼고 3.3km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진근동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의 밭과 밭 사이에 난 잣질의 모습.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의 밭과 밭 사이에 난 잣질의 모습.
■ 잣담 돌담 위로 걸어서 밭으로 갈 수 있는 밭담이다. ‘작지’는 자갈의 제주어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로 만든 담이 잣담이다. 1521년 제주로 유배 온 김정의 <제주풍토록>에 “제주의 땅은 돌멩이로 울퉁불퉁하다. 평평한 땅은 반도 되지 않는다. 밭 가는 자는 마치 물고기의 배를 도려내는 듯하다”고 할 정도였다.

제주에서는 파도 파도 돌이 나온다. 돌이 너무 많아 밭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돌벽을 만들었다. ‘잣벡’이라고 하는 이 돌벽이 길어지면 ‘잣벡담’이 된다. 돌을 모두 처리하지 못하면 밭 여기저기에 돌무더기를 돌탑처럼 쌓아 올리는데, 이를 ‘머들’이라고 한다. 안쪽의 밭을 위해 농로를 만들고 출입구를 만든다. 농로는 마을 안 올레와 가지처럼 연결된다. 출입구가 없을 때는 밭과 밭 사이에 잔돌을 쌓아 올려 잣벡담을 만들고 그 위로 길을 만들어 오간다. 이 길을 ‘잣질’이라고 한다.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와 한림읍 귀덕리의 농경지에 가면 왜 잣벡담과 잣질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잣벡담은 너비가 1m가 넘는 것이 있을 정도로 밭에서 나온 무수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잣질은 밭과 밭 사이의 경계만이 아니라 이웃끼리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주소: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한림읍 귀덕리 일주도로변

제주 돌담 명소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환해장성 제주의 해안가를 둘러 쌓은 대표적인 옛 군사시설이다. 1270년대 고려 정부군들이 처음 쌓기 시작한 환해장성은 이후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계속 쌓았다. 그 뒤 조선 후기인 헌종 11년(1845)까지도 외부 침입 등에 대비해 지속해서 구축됐다. 이처럼 환해장성은 어느 한 시기에 쌓은 것이 아니라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온평리 환해장성.
온평리 환해장성.
문헌상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절반에 가까운 120km에 이르고, 평균 높이 3m, 너비 2m 정도 된다. 주요 부분은 성의 너비가 4m에 이르기도 하고 겹담을 쌓아 조선시대 방어 시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환해장성은 오랫동안 지속해서 훼손돼 얼마 남지 않았다. 양식장이나 해안도로 개설 등으로 파괴되고, 관광객들이 돌탑을 쌓아 원형이 왜곡되거나 복원을 잘못한 경우도 있다. 현재 제주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제주시 화북동의 곤을·별도지역과 삼양동, 애월·북촌·동복·행원·한동리 등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와 신산리에도 남아 있고, 일부 구간은 복원됐다. 온평리 구간의 환해장성은 제주올레 2코스가 지나는 곳에 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서는 조선시대 방어용 진성인 별방진성을, 한림읍 명월리에서는 명월진성을 볼 수 있다.

주소: 서귀포시 성산읍 환해장성로.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재현한 낙선동 4·3성담.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재현한 낙선동 4·3성담.
■ 4·3성담 제주도민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 있는 돌담을 찾으려면 4·3성담의 흔적을 찾으면 된다. 4·3성담은 제주의 대표적 돌담 가운데 연륜이 가장 짧지만, 충격 또한 컸다.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자 군경이 무장대와 마을을 분리하고,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일정 구역에 성담을 쌓았다. 제주도 내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4·3사건 당시 초토화 작전이 벌어진 가을 이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성담을 쌓는 ‘축성 작업’에 동원됐다. 일부 지역의 성담은 높이 2~3m, 너비 1m 남짓 규모로 쌓았다. 성담 안에는 소개된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보초서는 일에 동원됐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 4·3성담은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해 전략촌을 조성해 성을 쌓았던 곳이다. 축성 작업은 해안 마을 함덕리 수용소 등지에서 생활하던 선흘리 주민과 조천면 관내 주민들을 동원해 1949년 봄에 이뤄졌다. 성은 가로 150m, 세로 100m, 높이 3m, 너비 1m 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전체 길이가 500여 m에 이르렀다.

주소: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387-2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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