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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세월은 약이 아니더라”…사회적 참사 유가족의 목소리

등록 2022-04-16 07:59수정 2022-04-16 15:32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세월

다큐멘터리 <세월>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세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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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8일 <세상 끝의 사랑>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이 시작되었다. 세월호 유가족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진행을 맡아 사회적 재난·참사 유가족과 함께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한 대화를 나누는 방송이었다. 다큐멘터리영화 <세월>(장민경, 2021)은 여기에 출연했던 유가족들의 마음자리를 따듯하게 살피면서도, 한국 사회의 민낯을 직면하게 하는 영화이다.

영화에는 유경근씨를 비롯해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고석씨,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가족 황명애씨,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씨가 주요 출연자로 등장한다. 얼핏 왜 민주화 항쟁과 사회적 재난을 연결지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는 그 물음에 대답하듯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소외되고, 정치적 방식으로 낙인찍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손 내밀고 연대를 해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세심하게 살펴본다. 출연자들은 서로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함께 나서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나누고 그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 유경근씨는 몇십년 시간을 지나온 배은심씨에게 “세월이 약인가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세월은 약이 아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더 커지기도 한다.

참사 이후 벌어진 일들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 불법 건축물로 인해 쌍둥이 딸을 잃은 고석씨는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당국은 모기향 핑계를 대며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다. 현장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물청소를 해버리는 통에, 황명애씨는 신원 미상 피해자들의 흔적을 찾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고통과 슬픔, 외로움을 감당하는 시간의 무게는 오롯이 그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억울해서 시작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활동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 ‘더 큰 보상을 바라고’라는 식의 의심과 선동으로 낙인찍히곤 한다. 더 이상 이런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추모와 기억의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늘 반대에 부딪힌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5년이 지나서도 장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추모식을 거부당하고, 유원지 한켠에 세월호 추모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시민 공간을 전부 빼앗으려 한다는 거짓말로 매도된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표를 구걸한다. 관객은 추모 공간을 반대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한국 사회가 계속해서 기억하는 행위를 거부하기 때문에 새로운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참담하다.

하지만 감독은 유가족들의 움직임에서 희망을 찾는다. 가족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어느 순간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막기 위해, 내 가족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족들도 안전한 사회여야 한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어린이 안전 교육을 하고, 기억 공간들을 만들고, 또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그 시간들을 버틴다. 그들의 숭고한 시간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사회적 참사의 책임을 잊고 싶어 하는 부조리한 사회가 만들어낸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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