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앞두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진도 팽목항.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0일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긴 줄로 늘어선 채, 바람에 펄럭이는 노란 깃발의 끝자락이 닳아 있었다. ‘기억, 약속, 책임’이란 글자가 새겨진 깃발 끝이 닳아 없어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 일부도 조금씩 흔적을 지워가거나, 몸살을 앓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결코 잊혀선 안 될 기억의 공간들을 찾았다.
팽목항(현 진도항)부터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 세월호 참사 추모시설이 조성되고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 서울시의회 앞으로 규모를 축소해 옮겨간 광화문 기억공간까지. 우리는 세월호의 아픈 시간을 잘 기억하고 있을까.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찾아 다크투어(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역사적 교훈을 얻는 여행)를 떠났다.
지난 10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둘러보는 유가족과 추모객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팽목항에서 만난 최원준(35)씨 가족에게 4월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충남 공주에 사는 원준씨 부부는 세월호 참사 사흘 전인 2014년 4월13일 첫아이를 얻었다. 이후 원준씨 가족은 첫아이가 세돌을 맞은 2017년부터 매해 4월 둘째 주말 진도를 찾는다. “그때 저희는 아이가 태어나 산부인과에 있었는데,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언론 보도를 보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곧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돼 마음이 아팠죠. 9살, 7살인 아이들과 여길 찾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팽목항은 참사 당시 피해자들이 뭍으로 처음 올라온 곳이다. 분향소, 강당, 식당 등으로 쓰던 가건물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분향소로 쓰이던 현재 팽목기억관을 두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진도군이 대치 중이다. 현재 이곳은 진도 국제항 개발 공사 작업이 한창이다. 진도군은 오는 5월 제주~진도를 1시간30분 만에 주파하는 쾌속선 취항을 앞두고 지난해 4·5월과 지난 1월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시정명령 공문을 유가족 쪽에 보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이들을 기리고 추모객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진도군청은 팽목기억관을 철거하는 대신 같은 자리에 희생자 기림비를 설치하겠다는 등의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날 선 양측의 입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진도군 관계자는 “진도군민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큰 상을 치르는데 주민들이 웃고 놀 수 없다’며 노래방 등을 자진 휴업하고 달려 나가 구조 활동을 도왔던 사람들이다. 이제 군민들의 사정도 이해를 해달라”고 말했다.
팽목항 일대는 애초 어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기억을 사수하려는 희생자 가족들의 투쟁과 원주민들의 생존 투쟁이 팽팽히 맞서는 공간이 됐다. 팽목항 주변으로 분연한 갈등을 잠시 물려두고, 추모의 마음을 새기며 걸을 만한 길이 있다. 팽목항~팽목마을~갈대밭길을 지나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오는 총 12㎞의 ‘팽목바람길’은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가 개발한 3시간30분짜리 순례 코스다. 포털 사이트에서 ‘팽목바람길’을 치면 지도를 찾아볼 수 있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낮 1시께 팽목항 방파제 ‘기억의 벽’ 앞에서 출발하니 다른 사람과 연대하며 걸을 수 있다.
팽목항을 뒤로하고 찾은 목포시 목포신항에는 세월호가 시뻘건 녹을 품고 잠들어 있었다. 10일 오후, 유가족과 4·16재단 관계자들이 세월호 앞에서 흰 국화를 놓고 추모식을 했다. 세월호는 신항에서 직선거리로 1.3㎞ 떨어진 고하도에 영구 보존될 예정이다. 해양수산부는 10주기인 2024년 선체 이전을 시작해 2028년까지 거치를 완료한다는 일정이다. 고하도로 선체를 이전하기 전까지 세월호 참관과 추모를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 다만 목포역~목포신항을 오가던 셔틀버스는 이용객이 줄었다는 이유로 2018년 8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추모객들에게 세월호 참사 개요와 참관 관련 연락망 등을 안내했던 누리집(sewolinfo.mokpo.go.kr) 또한 현재 운영이 중단됐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조각나고 기억도 흐려지는 건 아닐까.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서울시의회 앞으로 터를 옮긴 기억공간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인 15.67㎡로 규모가 줄었다. 희생자 사진과 세월호 선체 모형이 전시된 것만으로도 공간이 꽉 찬다. 기존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영상 시청 장비와 추모글을 남기는 키오스크는 공간 부족으로 사라졌다. 이경희 4·16재단 활동가는 “기억공간이 서울시의회 앞으로 오면서 직장인들이 주로 퇴근 시간대에 많이 방문하고 있지만, 이 공간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별다른 답변이 없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건물재산사용허가 조건에 따라 주 출입구를 가리거나 시민 편의를 훼손하는 요건에 걸려 기억공간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현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은 5월31일까지 사용 허가가 되어 있는 상태다. 이후로 최대 5년까지 연장은 가능하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공공미술품 ‘세월호 기억의 벽’.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마지막으로 12일,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를 찾았다. 이곳은 단원고 세월호 피해자 상당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공원이기도 하다. 추모시설은 화랑유원지 안 남쪽 부지 2만3천㎡에 조성될 예정이다. 정부자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이 공원을 눈으로 한바퀴 훑으며 설명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회적 참사 희생자 묘역 여러곳에 견학을 갔어요. 희생자를 모셔둔 묘역을 가보면 큼직하고 보여주기 위한 공간도 있었고, 너무 외져서 가족들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어요. 그런 곳보다는 이런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접근성 좋은 곳으로, 아이들 추억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유가족들의 뜻과 달리 일부 지역 주민들의 응답은 싸늘했다. 정 부서장은 “우리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선거철마다 정치적으로 이용을 많이 당했어요. 어떤 정치인은 꽃상여를 만들어서 종을 치고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 보고 어떤 시민들은 ‘유골함 너네 안방에나 갖다 놔라’, ‘시체 팔이 그만해라’, 그런 말들 너무 많이 들었죠.” 거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공간에 추모시설을 들여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8년 동안 지역주민과 수많은 토론·논의 끝에 “그래도 초창기보다는 언니, 동생 하면서 이해를 받는 분위기”라고 한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기억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존해야 할지에 대해 미국 9·11 참사 이후 조성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 등을 들어 설명한다. 두 곳 모두 시민의 일상적 생활공간 안에서 참사를 감각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곳이다. 김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식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삶 전체에서 여러 측면을 변화시킨 사건이다. 인간의 탐욕이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었다는 것, (‘가만히 있으라’가 아닌)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등을 알려줬다. 이를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하려는 국가적, 시민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도 목포 안산/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