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더 많은 ‘은혜씨’와 만나고 싶다

등록 2022-07-08 19:00수정 2022-07-08 19:06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니얼굴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은혜씨는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이다. 대학을 졸업했고 27살이 되었지만 친구도 별로 없고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다. 그런 은혜씨는 어머니가 가르치는 학생들 틈에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니얼굴>(서동일, 2022)은 미술 작가 은혜씨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은혜씨의 아버지이며, 프로듀서인 장차현실씨는 은혜씨의 어머니이다. 장차현실씨는 오랫동안 은혜씨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그렸다. 영화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갈등이나 고통의 서사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은혜씨의 작품 세계와 예술 노동자로서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오롯이 주목할 뿐이다.

이런 모습은 ‘문호리 리버마켓’이라는 지역 장터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순간을 통해서 주로 드러난다. 은혜씨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림체에 이끌린 사람들은 그림 주문을 한다. 은혜씨는 처음엔 빠르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기에 그림이 밀리기도 하고, 어머니의 그림 간섭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택배로 보낼지언정 끈기 있게 그림을 완성한다. 은혜씨만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물결을 일으킨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쉬지 않고 4천여명의 얼굴을 그렸다. 감독은 은혜씨의 그림과 그 그림을 함께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보여준다. 그리고 밀려드는 그림 주문에 “이놈의 인기가,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는 은혜씨의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통해 모두가 미소를 짓게 된다.

문호리 리버마켓의 장터 사람들, 활동보조인, 가족들은 그런 은혜씨의 성장을 함께해주는 동료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림을 부탁하기도 하고, 물건을 사고팔며,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가끔 숫자 계산을 헷갈려 하거나, 시간이 밀리는 은혜씨의 세계를 만나기도 하지만, 보채거나 닦달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은혜씨가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그리고 그릴 상대의 사진을 오롯이 바라보는 시간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런 은혜씨의 우주에 맞닿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없다. 동등한 파트너로서 은혜씨와 같이 장터를 즐기고 운영한다. 일을 의뢰하고, 작가로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한 작가의 성장에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은혜씨 주변의 공동체를 통해 감독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다운증후군이었던 그 친구를 처음 보고 당황했다. 친하게 지내라는 부모님의 말을 들었지만 어색했다. 부끄럽게도 내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들어야 하고, 다른 습관을 가진 그 친구의 시간을 이해해야 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그 친구에게나 나에게 그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장애인을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할 세상을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돌봄 안에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원권을 갖는 시스템을 만들 때, 더 많은 은혜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그려주는 거냐고 묻는 손님에게 “응, 니 얼굴”이라고 말하는 은혜씨의 얼굴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났으면 좋겠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강형욱 ‘직장 갑질’ 논란 확산…‘개는 훌륭하다’ 결방 1.

강형욱 ‘직장 갑질’ 논란 확산…‘개는 훌륭하다’ 결방

‘버닝썬’의 씁쓸한 진실, ‘영국 다큐’로 보게 된 더 씁쓸한 현실 2.

‘버닝썬’의 씁쓸한 진실, ‘영국 다큐’로 보게 된 더 씁쓸한 현실

군복 입은 BTS 제이홉 ‘3m 대형그림’, 5월 광주항쟁 현장에 3.

군복 입은 BTS 제이홉 ‘3m 대형그림’, 5월 광주항쟁 현장에

김호중 공연 강행 비판에 ‘티켓 취소 수수료’ 면제 4.

김호중 공연 강행 비판에 ‘티켓 취소 수수료’ 면제

“극락도 락이다” 뉴진스님, 조계종 방문…헤드셋 선물받아 5.

“극락도 락이다” 뉴진스님, 조계종 방문…헤드셋 선물받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