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
[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위플래쉬’
‘위플래쉬’
나도 <위플래쉬>를 좋아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심장이 지나치게 뛴 나머지 주차장에 드러누워 숨을 골라야 할 지경이었다. 플렛처 선생의 고함 소리와 앤드루의 피 묻은 스틱이 심벌즈를 때리는 소리가 도무지 귓가에서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진짜로 입 밖으로 꺼내어 외쳤다. “이런 제대로 미친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인간쓰레기들이 다 있나!”
아마도 당신은 이게 무슨 제대로 정신분열증 같은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왜냐면 당신은 이 영화를 ‘한계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위대한 뮤지션의 이야기’라거나, 혹은 ‘제자의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끝없이 채찍질하는 위대한 스승의 이야기’로 단단히 착각한 채 봤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영화평론가나 글쟁이들은 여기에 대해서 단호하게 지적한 바 있다. 그게 다 폭력적인 한국식 학교와 직장에서 배우고 자라난 사람들의 오독이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듀나는 많은 한국인이 <위플래쉬>를 세 가지 관점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첫째, 폭력적이고 위험한 선생과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정신상태의 학생이 벌이는 대결을 다룬 드라마틱한 영화. 둘째,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자의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스승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 셋째, 척 봐도 사이코인 놈을 스승이라고 추어올리는 나쁜 영화. 듀나에 따르면 둘째와 셋째 이야기로 이 영화를 해석한 사람들은 대단히 한국적인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틀’에 <위플래쉬>를 구겨넣어 오독한 것이고, 심지어 둘째의 이야기로 해석한 사람들은 꽤 위험한 사람들이다.
완벽하게 동의한다. 나에게 <위플래쉬>는 정신병적인 선생과 그만큼이나 정신병적인 제자가 완벽하게 미쳐버린 채 극단으로 달려가 대결을 벌이는 사이코 드라마다. 여기서 당신이 ‘최고의 스승과 제자란 이런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었다면, 나는 당신에게 일주일의 휴식과 적절한 정신과 상담을 권한다.
내가 한국인들의 <위플래쉬> 오독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에 입학했다는 거짓말로 지난 일주일간 한국을 들었다 놨던 미국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 3학년 소녀 때문이다. 결국 거짓말이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기업인인 그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건너가 확인을 한 뒤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며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 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썼다.
그렇다. 그 아이는 아프다. 정말 모든 게 거짓말이라면 그는 심각하게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아픈 아이다. 그런데 나는 소녀 관련 기사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이의 사소한 거짓말이니 덮어줘야 한다”거나,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회의 잘못”이라거나, “어쨌든 소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하버드에 가면 좋겠다”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나도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그게 ‘사소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지나친 거짓말이었다. 그게 사회의 잘못이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모든 것을 시스템의 잘못으로 돌리는 순간 개인의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내가 그를 동정하는 이유는 오로지 아버지의 말처럼 정말 정신적으로 아파서 전문적인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댓글을 단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소녀는 절대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 대학과는 달리 하버드와 스탠퍼드는 학생의 도덕적 성취에 민감하다. 그렇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멸종한 ‘학생의 성적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떤 나라(=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위플래쉬>의 감독은 “영화가 끝난 이후 주인공 앤드루는 어떻게 됐을까요?”라는 질문에 “마약중독자가 됐을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사이코 선생과 전쟁을 벌인 사이코다. 그에게는 어떠한 미래도 없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은 <위플래쉬>의 가히 운동권적인 열정의 폭죽놀이를 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인 부모들은 소녀의 기사들을 보며 “우리 아이도 이렇게 키울 수 있다!”고 잠시 환호한 뒤 “우리 아이도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낼걸 그랬나?”라고 후회하다가, 지금은 “아이가 좀 사소하게 실수했지만 어린아이니까 감싸주어야 한다. 이 모든 건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의 문제”라며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틀렸다. 여러분이 시스템이고 아이들이 시스템이다. 여러분이 바로 플렛처다. 여러분이 당신 자식들을 앤드루로 만들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 당신은 나와 수많은 평론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플래쉬>가 최고의 교육영화라고 계속해서 믿을 거라는 사실이다.
나도 <위플래쉬>를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최고의 사이코패스 호러-무협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따위 연주를 현실에서 듣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플렛처 같은 선생을 만난다면 제자 폭력과 학대로 경찰에 고소할 것이다. 앤드루 같은 아이를 만나면 ‘망상과 편집증으로 인한 허언증이 심려되오니 절대 합격을 시키면 곤란하다’고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투서를 보낼 것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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