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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진짜 어른’ 대리체험, 그가 샌더스일지 트럼프일지 몰라도

등록 2016-05-27 21:13수정 2016-05-28 10:17

영화 <인턴>이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세대가 주변에서 겪지 못하는 ‘진짜 어른’을 대리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인턴>이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세대가 주변에서 겪지 못하는 ‘진짜 어른’을 대리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인턴’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공식적인 대선 후보가 됐다. 공화당 주류는 테드 크루즈를 믿었지만 헛된 믿음이었다. 아무리 주류 정치권이 특정 후보를 강력하게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를 업은 후보를 누를 수는 없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트럼프가 남부의 인종주의자 백인들에게만 인기가 많은 후보라는 착각이다. 그렇지 않다.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층 중 하나는 1980년 이후 태어나 2000년대에 성인이 된 젊은층이다. ‘밀레니얼’이라고 불리는 그 세대다.

<에이비시>(ABC) 방송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18~29살 유권자층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은 45 대 42다. 2개월 전 지지율은 64 대 25였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지금 트럼프의 가장 단단한 지지 기반 중 하나로, 그건 북부, 남부, 서부에 관계없이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체 왜?

트럼프가 밀레니얼 세대에서 인기가 급증하는 건 버니 샌더스가 그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가장 큰 이유는 보호무역 공약이다.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자유무역을 강력하게 불신하고, 미국의 경제적 국경을 폐쇄해 미국 내 일자리를 모두 미국인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샌더스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과의 무역관계 정상화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트럼프와 샌더스는 거울의 양면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트럼프와 샌더스를 동시에 지지하는 이유는 지금 세대가 가장 배고파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많은 것을 공유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대량해고를 사회 초년병 시절에 겪었다. 직장은 더 이상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고 학자금 빚이 미래를 삼키고 있다. 많은 밀레니얼은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되지 않는다면 클린턴이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억압적인 시스템 자체를 그냥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두 세대의 격돌을 다룬 가장 상징적인 영화는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인턴>이라고 믿는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비즈니스로 20대에 최고경영자(CEO)가 된 앤 해서웨이와 은퇴 후 인턴이 된 드니로는 사실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거의 다른 행성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드니로는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절대 자신의 경험을 예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나이 든 꼰대가 왜 인턴으로 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앤 해서웨이도 그의 지혜를 점점 수용한다. 이 영화가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세대가 주변에서 겪지 못하는 ‘진짜 어른’을 대리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포브스>의 한 기사에서 미국 기업 관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항상 왜냐고 묻는다. 반면 기성세대는 언제 싸움을 걸어야 하는지를 안다.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성세대, 즉 숙련된 일꾼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면 곤란하다. 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밀레니얼 세대 역시 지혜를 바란다. 어떤 밀레니얼은 샌더스를 지혜로운 노인으로 여기며 따르고, 어떤 밀레니얼은 트럼프를 보스로 여기고 따른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소셜미디어에서는 매일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싸운다. 새로운 세대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기성세대는 노동자 해방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대가 정치개혁을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정권 타도를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대가 미시의 정치를 발언할 때 기성세대는 거시의 정치로 대응한다. 한국의 밀레니얼들 역시 어른의 지혜를 밀어낼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의 언어로 지혜를 말하는 어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질문은 이거다. 한국의 밀레니얼들과 같은 언어로 말하는 노인은 누구인가? 만약 그 노인이 한국 정치계에 등장한다면 그는 분명히 아웃사이드에서 온 아웃사이더일 것이다. 그게 샌더스일지 트럼프일지가 문제일 뿐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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