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더 무비>의 핀란드인 원작자 토베 얀손은 레즈비언이었다. 오랜 파트너와 함께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무민 더 무비
무민 더 무비
주말에 집에 앉아 아이피티브이(IPTV)를 틀었다.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나는 비교적 어린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이피티브이로 보는 편이다. 극장에서 누군가가 떠드는 것을 좀처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물론 아이들은 원래 떠들기 마련이다. 모든 자리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부모들의 예절교육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부모들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서맨사는 레스토랑에서 떠드는 아이를 주의시키려다 아이가 던진 스파게티에 맞는다. 레스토랑 직원은 서맨사에게 말한다. “어쩌겠어요. 애잖아요. 어쩌겠어요.” 나도 안다. 극장에서 아이를 윽박지르다가 콜라와 팝콘 세례를 맞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니 나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주요 대상인 영화는 집에서 편안하게 아이피티브이로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민 더 무비>를 아이피티브이로 보기로 했다. 무민은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이 1934년에 발표한 동화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무민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제품을 파는 가게의 접시나 머그컵에 그려진 몸이 둥글둥글한 귀여운 캐릭터로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나도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컵을 하나 갖고 있다. 지나치게 귀여운 척 아양 떨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귀여운 캐릭터는 그리 흔치 않은데, 무민은 그 드문 캐릭터 중 하나다. 무민이 그려진 노트를 지하철 바닥에 떨어뜨려도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적어도 <겨울왕국>의 엘사가 그려진 노트를 떨어뜨리는 것보다야 덜 부끄러울 건 분명하다.
원작자 토베 얀손의 탄생 100주년, 캐릭터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무민 더 무비>는 1955년도에 나온 원작 <무민, 리비에라 해변에 가다>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무민 가족이 리비에라의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겪는 모험을 다룬다. 그런데 이건 그저 아이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을 위한 영화들이 그저 아이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만 어쨌든). 제작진은 무민을 특별히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세대에게 프랜차이즈 제품을 팔아보겠다는 디즈니적 야욕 없이, 그저 오랜 캐릭터의 힘으로 영화를 끌어간다.
그런데 무민을 보면서 나는 당연히 토베 얀손에 얽힌 얼마 전의 소셜미디어 논쟁을 떠올렸다. 한국 출판사 ‘작가정신’은 무민의 그림동화 시리즈를 출간하며 이렇게 작가를 소개했다. “토베 얀손은 작고 외딴섬에 집 한 채를 짓고 홀로 살아가다 2001년 6월27일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소셜미디어는 폭발했다. 이 문장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곡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베 얀손은 홀로 외롭게 살다가 죽지 않았다. 그는 레즈비언 파트너인 툴리키 피에틸레(애칭 투티키)와 수십년을 함께 살다 죽었다. 많은 사람들의 항의에 작가정신은 해명했다. “‘홀로’ 살아갔다는 의미는 ‘결혼하지 않았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까지 두루 읽힐 만한 책으로서,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결혼을 하여 남편과 자식과 함께 살다 떠난 것이 아닌 정도로만 봐주세요^^*” 맙소사. 정말이지 잘못된 해명이었다. 사람들은 ‘무민’의 공식계정에 이를 재차 항의했고, 핀란드의 ‘무민’ 공식계정은 토베 얀손이 오랜 연인 투티키와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오랜 파트너가 어떻게 무민 시리즈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그것이 바로 핀란드의 “아이들까지 두루 읽힐 만한 책”에 대한 핀란드의 “일반적인 사회통념”이었으니까.
거기까지가 끝은 아니다. 작가정신은 이후 다른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저작권사와 논의를 통해 다음 판부터 내용을 바꿀 것이다, 다만 파트너라는 표현은 있었지만 레즈비언이라는 부분을 명시하지 않아 수위는 논의해야 한다.” 파트너라는 말은 넣을 수 있지만,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넣기가 여전히 껄끄럽다는 이야기다(그래야 책이 팔린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제 완벽하게 출판사가 숨기는 무민의 비밀을 알게 됐다. 그렇다. 토베 얀센은 동성애자였다. 성소수자였다. 레즈비언이었다. 그리고 오랜 파트너 투티키와 함께 행복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옷을 벗고 서로의 몸을 탐하며 불타는 사랑도 나누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게 부부나 파트너가 당연히 하는 일이니까.
만약 아이에게 무민 그림동화 시리즈를 사주거나, 아이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아이피티브이로 <무민 더 무비>를 볼 생각이라면, 아이들에게도 말해주시라. 이 위대한 귀여움을 창조한 사람은 레즈비언이었으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오랜 파트너와 함께 무민의 세계를 완성해나갔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나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만약 그게 마음에 안 든다면? 당신은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접시를 살 이유도, 무민 그림동화를 살 이유도, <무민 더 무비>를 볼 이유도 없다. 무민 없는 무미한 삶이 당신에게는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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