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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도 달에 갈 수 있을까

등록 2015-09-18 19:26수정 2015-10-23 15:08

예술가, 공학자의 비전과 할리우드의 욕망의 접점을 <마션>이 잘 찾아냈듯이, 한국의 달 탐사도 ‘인류 문명의 확대’라는 온당한 목적과 정치·경제적 욕망의 접점을 찾아내길 바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예술가, 공학자의 비전과 할리우드의 욕망의 접점을 <마션>이 잘 찾아냈듯이, 한국의 달 탐사도 ‘인류 문명의 확대’라는 온당한 목적과 정치·경제적 욕망의 접점을 찾아내길 바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마션
2020년까지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선 3차 토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취지에 100% 공감한다. 정파를 초월해 함께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답했다. 그러자 에스엔에스(SNS)는 난리가 났다. 민생이 이 모양 이 지경인데 달 탐사는 무슨 얼어죽을 달 탐사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사실 맞는 소리다. 달은 추워서 그냥 가면 얼어죽는다. 그래서 반세기 전 나사(NASA)가 얼어죽지 않고 숨도 쉴 수 있는 우주복을 만든 것이다.

하여간, 나는 달 탐사 공약이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최고의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야당의 말처럼 “2017년 대선을 앞둔 우주쇼”든 말든 상관없었다. 왜냐면 정치라는 것은 바로 눈앞의 것만을 보듬고 챙기는 공무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보다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건 오로지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과 출신들이 더 많이 한국 정치권으로 진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문학과 사회학 책만 뚫어지게 쳐다본 사람들은 두뇌는 차갑고 심장은 지나치게 뜨거운데, 심장은 조금 차갑고 두뇌가 뜨거운 사람들을 국회에 투입해서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면 꽤 근사한 정치가 나올지도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을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인 아마추어 작가 앤디 위어가 블로그에 연재한 뒤 출간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블록버스터는 순진하고 이성적인 공학자의 머리와 늙고 숙련된 예술가의 가슴이 서로를 존중하며 손을 잡았을 때 얼마나 근사한 영화적 즐거움이 터져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상급의 기성품이다.

기본적인 이야기는 원작과 다를 바가 없다. 나사의 화성탐사대가 인류 최초로 유인 화성탐사를 벌이던 중 모래폭풍을 만난다. 재빨리 상승선을 타고 대피하는 와중에 팀원인 마크 와트니가 사망하고, 팀원들은 그를 남겨두고 지구로 떠난다. 그러나 마크 와트니는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식물학자로서의 재능을 살려 남은 감자로 농사를 지으며 다음 화성탐사선이 자신을 구조하러 올 때까지 몇년을 버텨야만 한다. 그러니까 이건 우주로 간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혹은 화성의 ‘캐스트 어웨이’ 같은 이야기다.

사실 나는 원작을 읽으며 ‘대체 이것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스크린에 옮기기 그리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일기’ 형식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리들리 스콧은 능숙한 노장의 솜씨로 원작을 영화로 변환해낸다. 그는 마크 와트니 외에도 그를 남겨두고 지구로 향하는 탐사선의 우주인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온갖 과학적, 정치적 수법을 쏟아붓는 나사 직원들 모두에게 근사한 캐릭터의 숨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소설에는 없던 온갖 트릭을 동원해서 <마션>을 고전적인 모험영화로 다듬는다.

나는 나사가 그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또다시 화성으로 사람을 쏘아 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게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긍정적인 기운으로 넘치는 2015년의 ‘새로운 우주개발 시대’를 온몸으로 상징하는 영화처럼 느껴진 덕이었다. 과학은 아름답고, 공학은 섹시하며, 그것이 인간을 한발짝 더 진보하게 만들 것이라는 프런티어 정신이 여기에는 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그래서 한국은 정말로 달에 갈까? 정부는 지난 9월8일 2016년 예산안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2018년까지 달 탐사 위성을 달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예산 100억원도 포함됐다. 20년 뒤 한국형 발사체를 달에 착륙시키기 위한 준비다.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한 카이스트 교수는 ‘왜 달 탐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중 하나로 ‘인류 문명의 확대’를 내놓았다. 많은 정치인들은 이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인류? 문명? 웃기고 있네. 민생이나 해결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저 카이스트 교수의 말보다 더 정치적으로 온당하고 근사한 달 탐사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달과 우주로부터 한국의 정치인들과 미디어는 경제적 효과와 대선의 전략을 본다. 과학자들은 달과 우주로부터 인류와 미래와 문명을 본다. 우리는 분명 둘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마션>이 공학자의 글과 예술가의 비전과 할리우드의 박스오피스 수익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태어났듯이 말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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