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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자백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등록 2016-10-28 19:31수정 2016-10-28 20:03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영화 <자백>의 최승호 감독과 스토리펀딩에 참여한 관객들.  최성열 <씨네21> 기자 youl@cine21.com
영화 <자백>의 최승호 감독과 스토리펀딩에 참여한 관객들. 최성열 <씨네21> 기자 youl@cine21.com
내가 최승호 피디를 텔레비전이 아닌 실제로 본 것은 10여년 전인 2005년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에서였다. 그때 그는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의 책임피디였는데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의 진실을 다뤄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촉발한 문제적(?) 방송의 책임프로듀서였다.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의 임직원을 인터뷰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당시 피디수첩이 방송한 ‘황우석 신화의 진실’ 편은 워낙 사회적으로 막강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켜서 그해 연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으로 전국을 강타했다. 단순하게 보자면 한 과학자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다룬 것일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비뚤어진 애국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피디수첩>이 방송한 몇몇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프로그램이었고 피디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정권이 바뀌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사람들이 마구 쫓겨나기 시작했다. 최고의 탐사저널리즘이라고 호평받던 프로그램도 그 후엔 알맹이가 빠지고 쭉정이만 나풀거리는 느낌? 누구에겐 좋은 프로그램이었지만 다른 누구에겐 눈엣가시였던가 보다. 몇 해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인터넷 매체인 <뉴스타파>에 등장해 여러 가지 뉴스를 전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씨네21> 1076호의 표지를 장식했다.

단언컨대 <씨네21> 1076호의 표지사진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연예·영화잡지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정말 최고의 사진이다. 영화 <자백>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해준 스토리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과 영화감독이 함께 나왔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해준 다수의 사람과 나란히, 그것도 영화의 성격상 확보하기 어려운 상영관에서 같이 등장하는 표지라니 정말 기발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총 35컷 내외에서 이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첫 표지 회의에서는 다른 때와 같이 인물 단독 컷으로 가려 했는데 ‘최승호’라는 인물을 일반인들이 모를까봐 영화 포스터로 표지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브이아이피 시사회가 있던 지난 5일 극장에는 350여명의 관객이 모였다. 앞의 영화가 끝나고 약 15분의 여유시간 동안 사진기자는 미리 조명 2개를 설치했다. 사진 왼쪽 상단 뒤쪽과 오른쪽 얼굴 쪽에 하나씩 대각선 방향으로. 그리고 관객들에게 얼굴이 나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는데 모든 관객이 기꺼이 응했고 심지어 재밌어하기까지 했다. 감독의 무대인사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최승호 피디, 아니 감독이 자릴 잡았고 미리 설치된 조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웃는 사람, 뒤돌아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눈 감은 사람 등 다양한 관객들 사이로 팔짱을 끼고 혼자 서 있는 최승호 감독이 보인다. <자백>의 감독이 ‘자뻑’ 포즈엔 익숙지 않은지 입가에 살짝 미소도 흐른다. 직접 맞지 않도록 사이드와 후면 위쪽에서 쳐준 조명이 입체감을 더해주면서 영화관 전체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사진을 본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 표지로 결정됐다.

최승호 감독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건으로 사과를 한 날,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현실이 영화를 압도한다,는 말을 내가 할 줄 몰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백’은 아직 부족하다.” 억지 자백을 잘도 받아내는 국가가 자신의 죄는 자백하지 않는다. 결국 그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국민의 몫이 아닐까?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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