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경내에 봄의 전령인 홍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양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춘래불사춘’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옛날 중국에는 4대 미녀가 있었는데 너무 예뻐서 나라가 망했다는 서시와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의 애인 초선, 너희가 익히 잘 아는 양귀비, 그리고 왕소금이 아닌 왕소군. 4대 미녀는 중국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왕소군은 다른 미녀들과는 달리 손에 비파를 들고 있다. 미술시험에 비파를 든 미인도를 보여주면서 이게 누구게? 하고 물으면 바로 그게 왕소군이라고 답하면 99.9%가 정답이다.” 그 다음 얘기는 대충 이렇다. 어느 날 한나라 황제가 자기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흉노족과 화친을 맺어 그 대가로 왕실의 여인 한 명을 흉노족 대장에게 시집보내기로 했고, 누굴 보낼까 하다가 왕실 여자들 중 가장 못생긴 여자를 보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화공들이 그린 궁의 여인들 그림 중에 제일 못생긴 여자를 골라 보내기로 했는데 왕소군은 화공들에게 평소 뇌물을 먹일 줄 몰라서 뇌물을 준 다른 여자들에 비해 훨씬 못생기게 그려져 있었다. 그림만 본 중국 황제는 제일 안 예쁜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시집 보내는 날 비로소 말을 타고 떠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데, 아뿔싸! 이제껏 본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나?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황제는 즉시 화공을 참형에 처하고 가는 여인을 안타깝게 바라만 봤다나. 그때 말을 타고 고향을 떠나는 왕소군의 심정을 어느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단다.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니로구나.’ 이게 바로 ‘춘래불사춘’이다. 그러면서 끝은 유머로 마무리하셨다. “기억 잘하라고 이렇게 설명하는데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은 ‘춘래불사춘’ 뜻은 까먹고 예쁜 여자만 기억한다.”
신문사에 들어와서 일을 해보니 온갖 칼럼과 기사에 등장하는 그 말의 빈도가 상당히 높아서 잊어버릴 틈이 없었다. 자연의 섭리가 한낱 인간의 마음을 따라가겠는가. 인간이 오라고 하든지 말든지 다 세월이 가고 때가 되면 얼었던 얼음이 녹고 숨죽였던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을. 그러나 인간의 감성이 또 어찌 그리 단순하기만 한가? 모든 만물이 다 봄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봄이 아니면 아닌 것 아닌가? ‘내가 우주’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니, 따뜻한 햇살 아래서 꾸벅거리며 봄을 만끽하고 있는 고양이가 인간보다 상팔자다 싶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350여년 된 홍매화 나뭇가지에 날아든 봄의 전령들이 저마다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옛날 왕소군이 저렇게 고왔을까? 봄날 빗줄기가 유리창에 흔적을 남겼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사한 햇살이 고개를 내밀지만 비 끝을 따라 꽃샘추위가 쫓아왔다. 어여쁜 꽃들이 추위를 피해 둥근 원 속으로 숨었다. 물방울 하나하나에 들어온 꽃을 햇살이 감싸줬다. 색깔과 구도가 아름답다. 누가 봐도 봄이란 걸 알려주는 사진이다. 그런데 산에 들에 꽃들이 피어나도 우리는 2017년 봄을 만끽하기 어려웠다. 호시탐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드가 들어오고 열을 받은 중국에서는 보복 행동을 대놓고 하지만 사드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딱히 특별한 대책도 없는 듯하다. 없어졌던 전술핵도 다시 들어오고 북한은 핵개발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고…. 여전히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그분과 추종자들은 분열과 대립을 충동질해 구차한 명줄 늘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길거리의 손팻말 글귀가 ‘딱’ 하고 들어왔다. “박○○ 없는 게 봄이다!” 그래서 ‘춘래불사춘’이었구나. 그런데 결국 정의와 상식이 이겼다. 무거운 마음 조금 덜어내고 봄꽃이 지기 전에 꽃구경하시고 힐링 한번 하시길.
사진에디터 y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