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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냉정과 열정사이

등록 2017-03-24 20:26수정 2017-03-24 20:40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지난 3월21일치 <한겨레> 5면에 실린 민주당 세 후보의 사진은 모두 통신사가 제공한 것으로, 당일 일정이 없던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는 19일 동정을 담은 사진이다.
지난 3월21일치 <한겨레> 5면에 실린 민주당 세 후보의 사진은 모두 통신사가 제공한 것으로, 당일 일정이 없던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는 19일 동정을 담은 사진이다.
지난 21일치 <한겨레> 5면은 민주당 당내 경선을 다룬 기사를 실었다. 민주당한테 호남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뤄낸 역사에서 보듯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날은 한 개 면 내용 전체가 민주당 호남경선이 주제였다. 이름하여 ‘대선 D-49 민주 불붙는 호남경선’.

세 후보 사진을 나란히 썼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순서대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 차례로 말이다.(사실 순서를 정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사진을 본 일부 누리꾼들이 문 후보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잘라(첫째 사진의 왼쪽 부분) 상대적으로 문 후보 사진을 작게 썼다고 주장하면서 인터넷이 와글와글했다. 문 후보가 20일 광주의 전일빌딩을 찾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진압군이 헬기에서 기총소사한 총탄 자국을 보는 장면이다. 벽면에 총탄 자국이 난 곳을 빨갛게 표시해 두었는데 스마트폰으로 보면 사진이 너무 작아서 하얀 벽면이 마치 아무것도 없는 백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으로 보거나 모바일에서도 사진 설명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듯한데, 스마트폰으로 사진만 본 독자들은 뜬금없이 잘려나갔다고 간주하고 분명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크기를 작게 쓰려고 했던 사진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두번째 문제 제기는 광주에 가서 다른 두 사람은 활짝 웃고 환영받는 인상인데 유독 문재인 후보만 심각한 표정이라는 내용이다. 일견 타당한 듯하지만 헬기 기총소사한 역사의 현장을 방문한 문 후보가 웃을 리 만무하다. 설사 웃었다 치자. 오히려 그 사진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진짜로 ‘죽이려고 달려드는구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날 문 후보의 사진은 기총소사한 그 현장을 방문한 사진밖에 없었을까? 당일 문 후보는 광주를 방문해 광주·전남 비전을 발표했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장면과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 행사장에서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모습이 있었고 전남대에서 선거 홍보물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을 만나 파이팅하면서 웃는 사진이 들어왔다. 그리고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도청 보존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5·18단체 회원들을 만나 이틀 전에 말한 이른바 ‘전두환 표창’ 발언에 대해 항의받고 해명하는 장면, 그리고 기총소사한 건물의 총탄 자국을 보는 장면 등이 있었다. 당일 일정상 사진기자가 현지 출장을 갈 수 없어 모두 통신사가 제공한 사진을 사용한 터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는데, 비전 발표 사진은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사진으로 주변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지 않았고 행사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은 세로인데다 다른 사진들과의 ‘알맹이’ 크기가 달라(후보자들의 크기도 비슷하게 맞춘다) 사용하기 힘들었다.

무엇을 선택할까의 문제는, 거창하게 얘기하면 결국 철학과 신념의 문제다. 문 후보는 이틀 전 느닷없는 ‘전두환 표창’ 발언으로 공격을 당했다. 그 발언을 들으면서 보수세력으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문 후보의 답답함이 느껴졌으나 또 다른 날 선 공격은 어쩌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억울함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문 후보는 광주에서 새롭게 개정되는 헌법조문에 5·18 정신을 기록하겠다고 했다. 그걸 사진으로 잘 나타낼 수 있는 그날의 사진은 무엇일까? 총탄 구멍이 숭숭 난 그곳을 찾아간 문 후보를 소개하는 것이 홍보 동영상을 찍으면서 웃고 있는 문 후보의 모습을 전달하는 것보다 못한 선택일까?

이 글을 쓰면 또 다른 메일이 쇄도하리라 예상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간극은 참으로 크다. 특히 정치의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사진을 선택하는 매 건마다 오해라고 해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웁스구라’를 쓰면서 이 정도는 설명해드리는 게 그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몇 자 적는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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