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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기주봉 “월세집 전전해도 연기는 내 운명”

등록 2018-09-08 10:00수정 2018-10-04 10:51

유선희의 ‘놀람과 빡침’
‘애증의 이름, 기주봉’ 인터뷰 전문 대공개

지난번 ‘애증의 이름 기주봉’ 칼럼 이후 많은 독자와 누리꾼이 배우 기주봉의 인터뷰를 읽고 싶다는 의견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왔다. 대부분은 “현행법 위반으로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은 비판 받을 일이지만, 그의 연기에 많은 사람이 감탄하고 공감한 것은 또 그것대로 평가받을 만 하니 인터뷰를 실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그간 <한겨레>는 ‘어떤 형태로든 현행법을 위반해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의 경우, 자숙의 기간에 되도록 인터뷰 등 관련 기사를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판단은 읽는 이에게 맡기기로 하고 배우 기주봉의 인터뷰를 한겨레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데뷔 40여년 만, 첫 국제 영화제 수상 “미안해요. 요새 소속사 없다 보니 혼자 스케줄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많이 늦은 건 아니죠?”

지난달 22일, 인터뷰 시간이 거의 다 돼 약속 장소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 헐레벌떡 들어선 배우 기주봉(63)은 연신 사과를 했다. 보통은 10분 남짓 일찍 도착해 담배 한 대 태우는 습관이 있다는 그는 ‘늦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했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대마초 사건) 이후 소속사를 나왔거든요. 스케줄을 제대로 체크 못 해 약속을 잊은 경우까지 있었어요. 내가 그간 얼마나 자신에 대해 무심했나, 얼마나 남에게 의지했나 싶어 요즘은 스스로를 챙기려 애쓰는 중입니다.”

데뷔한 지 40년이 훌쩍 넘은 올해 여름,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영화 <공작>에서 김정일 위원장으로 완벽히 변신해 흥행(490만 돌파)을 이끌었고, <강변호텔>(감독 홍상수)로 제71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1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기주봉이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그런지 담담한 평소 성격과 달리 “수상 소식에 덜덜 떨렸다”고 했다. 그만큼 기쁨이 컸던 게다.

홍상수 감독과는 <밤과 낮>, <하하하>, <북촌방향>,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풀잎들> 등 꾸준히 작업을 함께 해왔지만, <강변호텔> 때는 좀 달랐다고 했다. “홍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직접 집으로 찾아왔더라고요. 지금까지 홍 감독 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너무 중요한 역할이더라고요. 언제나 그렇듯 흔쾌히 합류했습니다.”

그는 다른 다작 배우들과 달리 언론 노출이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 4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들꽃영화상을 받았을 때도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제가 기질적으로 연기하며 다른 일도 하는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되는 편이에요. 그래서 특별한 취미조차 없어요. 뭔가에 빠지면 연기에 방해가 될까 봐 시작 자체를 안 한달까?” (산술적으로 따져도) 1년에 3편 이상 작품을 꾸준히 찍어온 그의 성실함은 바로 이런 ‘올인’에서 비롯된 것인 듯했다.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공작> 김정일 역, 흉내 대신 기주봉식 카리스마로 압도 <공작>은 그에게 ‘상업영화의 흥행 맛’을 보여준 작품이다. 황정민·이성민·주지훈 등 요즘 최고 스타 배우들 틈에서 단 두 번의 등장으로 그는 관객을 압도했다. 처음 김정일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 덥석 달려들었죠. 근데, 분장팀을 만나러 뉴욕에 갔던 날은 잠이 안 오더라고요. ‘김정일이라니, 그 살아온 스토리가 보통이 아닌데, 난 그런 세계를 살아 본 적이 없는데…’하는 걱정을 처음 했죠.” 동영상도 많이 보고 자료도 많이 읽었지만, 절대 똑같이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진 않았단다. “김정일이라는 인물이 북한에서 가진 절대적 파워와 권위를 떠올렸어요. 말투, 동작,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절제된 카리스마를 내 식대로 표현하면, 외모가 똑같든 아니든 사람들은 나를 김정일로 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공작>을 본 지인이 “김정일 분장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기주봉의 에너지를 느꼈다”는 평가를 해줬을 때 성취감을 느꼈단다.

난생처음 받아본 5시간 넘는 특수분장은 물리적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아침 8시부터 촬영이면, 새벽 3시까지 나와야 하는 거예요. 힘들었죠. 본을 뜬 다음 쉬는 시간이 5~10분밖에 없어요. 화장실도 그때 잠깐 가고, 얼른 담배도 한 대 피고. 허허허. 3일 동안 몰아서 촬영했는데, 하루는 제가 쓰러질 뻔도 했어요. 체력적으로 힘이 드니 아찔하게 정신이 없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땀 때문에 특수분장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고, 분장을 뗄 때도 피부 자극이 심해 고생을 좀 했단다. “사람들이 (특수분장하면) 피부가 많이 상한다고 해서 촬영 끝나고 피부 좋아지라고 지압과 마사지를 받으러 다녀요. 이 나이에. 허허허. 혈을 돌게 해준다나? 허허허. 좀 좋아진 것 같나요?”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배우 기주봉.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40년간 진지한 역할만, 유쾌한 연기도 해보고 싶어 그는 서라벌고와 서라벌예대를 거쳐 극단76 창립단원으로 데뷔를 했다. 연극으로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 앞에서 사회를 보는 걸 많이 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로 남들 앞에 서는 것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서라벌중학교에 연극반이 있다는 소릴 듣고 진학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거죠. 그때는 먹고 사는 게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았어요. 그냥 순댓국이나 설렁탕 한 그릇 먹을 돈만 주머니에 있으면 만족했으니까. 술은 누가 사주기도 많이 사줬고. 돈 벌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었고 가난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던 것 같아. 허허허.”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먹여 살릴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돈 버는 재주’ 따위는 없는 그였다. “한 번은 돈 벌려고 정수기 외판원을 했어요.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막막하죠. ‘이것도 연기다’라고 마음을 먹고 온종일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정수기 사달라고 했죠. 근데 나도 참 답답하지. 주변 사람들한테 좀 팔아야 하는데, 지인이라고는 연기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뿐인데, 무슨 이삼백만원짜리 정수기를 사겠어요? 한 대도 못 팔았죠. 허허허.” 그렇게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온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영화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연극보다야 수입이 나았지만, 영화판 역시 녹록지는 않았단다.

어린 시절 유쾌한 개구쟁이였다는 기주봉은 연기 생활 40여년 동안 비극적이거나 진지한 역할을 많이 맡아 아쉽다고 했다. “참 이상해요. 원래 내 성격과 정반대인 역할로 연기 필모를 쌓아온 게. 마음 한 편 항상 어린 시절의 유쾌함에 대한 욕망이 자리해서 그런지 재밌고 편안한 역할도 좀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규모가 매우 작은 독립영화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 흔쾌히 출연한 것도 ‘이발사 미스터 모’가 찰리 채플린을 꿈꾸기 때문이었다. “채플린은 내게 멘토 같은 느낌이에요. 특별한 롤모델이 있진 않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연기를 시작한 지 40여년이 흘렀고, 기주봉이란 이름이 이제 관객에게 낯설지 않을 만큼 인지도도 쌓았지만, 그는 아직도 집 한 채 없이 월셋집을 전전한다. 끊임없이 작품에 출연한 것도 현실적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영화 한 편이 흥행했다고 생활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터다.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몸 뉘일 작은 집 한 칸이 소망의 전부입니다. 연기는 제게 운명이니, 그 운명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 정도면 족해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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