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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9월27일 8시 용산 CGV서 ‘미쓰백’ 보신 분 찾습니다

등록 2018-10-04 10:04수정 2018-10-04 16:51

유선희의 ‘놀람과 빡침’
아동학대 줄거리에 “개나리, 십장생, 조카 18색 크레파스”
떨리는 내 손 꼭 잡아준 옆좌석 눈물의 관객은 누구?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네, 그 곱고 사랑스러운 배우 한지민도 새벽에 시나리오를 읽다가 “X새끼, 쓰레기”라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처럼 입이 거칠기로 유명한 기자 나부랭이야 오죽했을까요?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 <미쓰백>을 보면서 세상 심한 욕이란 욕은 다 퍼부은 듯 합니다. 물론, 극장에서, 육성으로 말입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백>은 어린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고등학교 때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뒤 거칠고 막막한 삶을 살아온 여자 백상아(한지민)가, 계모와 친부의 육체적·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 지은이(김시아)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기사 마감을 하느라 언론시사를 놓친 저는 저녁 8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일반시사로 이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하루종일 마감을 하고, 저녁 시간까지 할애해 일반시사를 보는 일이 사실 영화담당 기자에겐 고된 일이죠. 솔직히 말해 짜증이 나는 일입니다.(올 초 장안의 화제였던 ‘엘지(LG) 빡치게 하는 노래’를 지은 반도의흔한애견샵알바생의 심정과 비슷할 겁니다) 게다가 헐레벌떡 시간에 맞추느라 ‘작은 사고’마저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를 사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가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머리와 옷에 그 끈적한 걸 뒤집어 써서 화장실에 가서 머리와 옷을 빨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고로, 빡침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단 거죠.

어찌 됐든,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상태에서 영화가 시작됐습니다. 게임질만 일삼는 애비란 작자와 반려견만 끌어안고 사는 애미란 작자가 아이를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욕실에 가두고, 샤워기로 때리고, 심지어 물을 끼얹어 추운 겨울 베란다에 방치하고….(걱정 마세요. 때리는 장면은 자세히 안 나옵니다. 그저 샤워기를 집어 드는 순간에 장면이 전환됩니다. 이럴 때만 미쳐 날뛰는 빌어먹을 상상력이 죄라면 죄겠죠. ㅠ.ㅠ)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저도 모르게 “이런 개나리, 십장생, 조카 18색 크레파스 같은 인간들아!!!”라는 욕설이 시리즈로 튀어나오더군요. 기자가 돼서 교양이 없다고요? 네, 변명하지 않겠어요. 전 그닥 교양있는 기자는 아닙니다. 평소 “입에 걸레를 물었냐”는 소리도 종종 들어요. 하지만 어디 저만 그런가요? 어두컴컴한 극장 여기저기서 저처럼 분노에 찬 관객들이 내뱉는,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이 난무했다고요. 이런 일에 공분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지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온갖 종류의 욕들은 점차 흐느낌으로 변해갔습니다. 여기저기서 ‘흑흑’하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코를 팽, 하고 푸는 여성분도 계셨습니다. 특히 제 옆에 앉으셨던 여성분,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슬픔보다,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그리고 부끄러움보단 분노가 더 먼저 끓어오르는 저는 사실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창문으로 탈출하려다 미끄러져 세면대에 머리를 박는 장면에서 저는 이성의 끈을 놓고야 말았습니다.

“으악~!!! 어떻게 해~!!!!”

저도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지르고야 말았던 겁니다. 창피함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중얼중얼댔어요.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때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축축한 손을 뻗어 제 손을 꼬옥 잡는 것이 아니겠어요? 헉! 낯선 사람의 손길에 흠칫 놀라 옆을 바라봤을 때, 옆자리에서 흐느끼던 여성분이 눈물 닦은 손으로 제 손을 잡고 있더라고요. 제 시선을 느꼈는지 옆자리 그녀도 스크린에서 시선을 돌려 저를 보더군요. 2초 동안 말 없는 시선이 엉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저도 당신 심정 다 알아요.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분노스럽고 부끄럽지요?’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심전심이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영화는 끝이 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옆자리 그 여성분은 서둘러 자리를 뜬 후였습니다.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미쓰백>에서 한지민의 연기는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내가 알던 그 ’방부제 미모’ 한지민이 이렇게 변신을 할 수 있구나, 놀랄 정도로요. 특히 여관에서 한지민이 오열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저리더군요. 6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아역 김시아도 ‘제2의 김새론, 김향기’라는 평가가 절대 과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어요. 물론 고구마 백개 먹은 답답한 전개와 구성·연출의 미진함에 아쉽기도 했지만, 그건 생략할게요. 왜냐면, 제게 <미쓰백>이란 영화는 연기의 훌륭함이나 연출의 장단점으로 기억될 영화는 아닐테니까요. ‘놀람과 빡침’에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던 제 손을 꼬옥 잡은 어둠 속의 그 손길로 기억되겠지요.

그 때 못 한 인사를 지금 해야겠네요. 지난달 27일 목요일, 저녁 8시, 씨지브이(CGV) 용산에서 제 옆자리에 앉았던 동생, 친구, 혹은 언니~!! 너무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훈훈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 기사 보면 메일로 연락 한 번 주세요. 제가 밥 한 끼 꼭 사고 싶네요. ^^

**뱀발: 물론 회사 단톡방에 “옆에 앉은 그 사람이 잘생긴 남자였다면, 로맨스가 시작될 타임인데”라는 농을 던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농이었을 뿐. 전 결혼 9년 차 유부녀라고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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